“특이점으로 우리는 생물학적 몸과 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스스로 운명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죽음도 넘어설 수 있다.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는 시대가 온다. 지금 세기가 끝날 즈음에는 인공 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면서 걷잡을 수 없는 변화에 휩싸인다.”
사이비 광신도의 어설픈 예언이 아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레즈 커즈와일 박사가 2005년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라는 책에서 언급한 미래 인류의 모습이다.
커즈와일 박사는 1976년 컴퓨터로 인쇄 문자를 읽는 커즈와일 기계, 1984년 그랜드피아노 음색을 완벽하게 모방한 신시사이저 등을 개발해 2002년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발명가다. 이 후 미래를 예측하는 기준점과 같은 ‘특이점 이론’을 내놓으며 미래학자로 더 유명세를 탔다. 출간 당시 1000쪽에 달하는 책으로 주목을 받았던 그가 최근 다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바로 커즈와일이 설립한 ‘싱귤래리티 대학’ 때문이다. 최근 세미나 참석 목적으로 한국을 찾은 호세 코르데이로 싱귤래리티 대학 교수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비슷한 과정을 설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싱귤래리티 대학은 10주 과정으로 미래 인력을 양성하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설립해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구글·NASA·오토데스크와 같은 순수한 외부 펀드로 운영하며 ‘다음 세대 인류가 맞을 중대한 도전에 대비하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로 인공지능·첨단과학·미래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올해 초 전 세계에서 1기 수강생을 뽑을 당시 경쟁률은 수백 대 일에 달했다. 우리나라 1기 졸업생 중에는 우주인 고산 씨와 런던대에서 금융경제학 석사를 마치고 유엔 우주사무국에 근무했던 유영석 씨가 있다. 유영석 씨는 “프로그램 자체는 학문의 경계를 넘은 컨버전스, 미래를 두루 섭려하는 통찰력, 기업가과 창업 정신 등을 기르는 쪽에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특이젼 이론, 종착점은 ‘영생’=비록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자극하고 창업 도전 정신에 프로그램이 주로 맞춰져 있지만 ‘싱귤래리티’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커즈와일 사상이 깊숙이 배어 있다. 우리말로 ‘특이젼으로 번역되는 싱귤래리티는 실현 가능성을 떠나 미래를 연구하는 데 빼 놓을 수 없는 이론이다. 특이점은 임계점과 비슷한 의미로 첨단 기술의 발전 속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는 시점을 말한다. 천지개벽이 이뤄지고 우주의 신비가 벗겨지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미래 기술의 변화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져 그 영향력이 비즈니스 모델에서 인간 수명까지 우리 삶과 관련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고 예측했다. 기술이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진화해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 수 없어진다는 설명이다. 한마디로 기술이 발전해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 수준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특이점에 도달하면 인간을 초월하는 인공지능이 활용되고 나노 기술이 깊숙이 스며들면서 죽지 않는 ‘영생’도 가능하다고 낙관하고 있다. 특히 유전공학·나노기술·로봇공학(G-N-R) 발달이 가속도로 진행되며 가장 큰 변화는 사람에서 시작한다고 내다 봤다.
◇2010년 ‘인체 버전 2.0’ 도래=특이점 이론에서는 지금과 같은 기술 진화 속도라면 2030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2029년에서 2045년 사이에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다고 예측한다.
생명이 3개월마다 1년 정도씩 연장돼 물리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를 ‘인체 버전 2.0’의 해로 낙관했다. 생물학적 인체가 ‘버전 1.0’이라면 이 후에는 과학과 기술에 인체가 의존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고 확신했다. 인체 버전 2.0시대에는 수십억개의 ‘나노봇’이 몸속 혈관을 타고 흐르며 병원체를 물리친다. 질병에 관여하는 DNA 오류를 고치고 질병 유발 요인을 찾아 이를 제거한다.
이뿐이 아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영양소를 인체 각 요소에 전달해 질병을 막아낸다. 나노봇은 육체뿐만 아니라 뇌에도 관여, 생물학적 뉴런과 상호작용해 오감으로 완전 몰입형 가상현실을 만들어 주며 신경계 내부 작업으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시대를 거쳐 단계적으로 우리 몸은 생물학적 부분보다 인공적인 부분에 더 의존하게 되며 결국 인체 버전 3.0에는 완전한 신체 개량 작업으로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듯 육체를 개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실은 아직, 그러나 여전히 진행 중=사실 특이점 이론은 곳곳에 허점이 있다. 당장 인체 버전 2.0을 예측한 올해를 기준으로 봐도 그렇다. 그러나 조목조목 따져 보면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정확한 시점은 다를지 모르지만 우리가 예측하는 큰 흐름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가령 나노 시대가 열리면서 나노 로봇 존재가 이미 현실화됐다. 아직 인체에서 상용화가 안 됐을 뿐이다. 특정 부위를 찾아 집중 공략하는 ‘표적 약물’도 실험실 수준에서는 검증이 끝난 상황이다. 지방 축적을 유발하는 DNA인자와 이를 제거하는 인슐린 수용체, 암을 유발하는 종양 지점에 약물을 투여하는 추진체 모두 활발하게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학계에서도 첨예하게 맞붙어 있는 뇌와 과학기술의 결합도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아직 지금 기술로는 결코 인공 컴퓨터가 사람을 따라올 수 없다고 하지만 인공 뇌 개발은 여전히 뜨거운 연구 과제의 하나다. 스위스 로잔, 미국 폴알랜 뇌과학 연구소, IBM 알마단 연구소 등에서 인공뇌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IBM 알마단 연구소는 쥐의 뇌에 상응하는 수준의 인공뇌를 만들었다고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인간세포에 대한 연구로 노화와 죽음을 극복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인간 한계를 넘어서고 인간이 과학 기술의 힘을 얻어 인간 자체를 뛰어 넘는 ‘트랜스휴먼’은 확실히 진행형인 셈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