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기술유출]<2> 나는 범죄, 기는 예산

지난달 초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모처럼 여야 의원이 한목소리를 냈다. 중소기업 기술유출 문제가 심각하지만 정부 지원 사업의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성회 의원(한나라당)은 “연간 7000만~8000만원의 예산으로 400~500명의 기술 유출교육에 투자하는 것으로 국제 산업 스파이 같은 지능형 범죄를 당해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조경태 의원(민주당)도 “중소기업 기술보호 상담센터 설치 등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지만 지난해 관련 예산이 10억원에서 올해에는 오히려 1억7800만원으로 82%나 급감했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김동선 중소기업청장은 의원들의 추궁에 “핵심기술 유출 방지에 내년부터 3년간 3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1000개 중소기업에 기술유출방지시스템 구축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회에 제출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는 이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 예산 당국과 협의과정에서 다른 사업에 밀려 후순위로 밀렸기 때문이다.

국회 지경위가 내년도 예산 심의에서 이 문제를 거론할 태세지만 반영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회는 예산 삭감권은 있지만 증액권은 없기 때문이다. 증액 요구의견을 내더라도 예산당국이 최종적으로 판단한다.

지금까지 중소기업청이 펼친 중소기업 기술유출방지 사업은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중기청이 지난해 8월 발족한 중소기업기술보호상담센터에는 1년 2개월간 상담 건수가 무려 355건에 달했다. 그간 대기업이나 협력사에 의한 기술탈취, 특허침해 등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던 수요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기술탈취를 막기 위한 기술자료임치제도 이용 금고도 지난해 210개에서 올해에는 400개로 늘어나는 등 중소업체의 호응이 뜨겁다. 보안시스템 구축 지원사업은 중소기업이 가장 필요한 사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늘어나는 수요에 비해 중소기업 기술유출방지 사업 예산은 오히려 줄어드는 등 역주행했다. 지난해 10억원에서 올해는 1억7800만원으로 거의 자취를 감췄다.

중소기업 안팎의 비판이 거세지자 예산당국은 내년도에는 26억6000만원으로 크게 증액했다. 그러나 실상은 요청 예산 118억원의 20%가량만 반영된 것이다.

이에 따라 중기청이 중소기업의 수요를 반영해 계획한 기술유출상담, 기술임치제도 운용 등이 당초 계획보다 절반 또는 4분의 1 규모로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만큼 기술유출 위험에 노출되는 중소기업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중소기업 수요조사에서 가장 필요한 사업으로 꼽힌 보안시스템 구축사업에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예산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올해 1억7800만원의 예산 전액이 반영된 현장설명회 및 보안진단도 내년에는 한 푼도 반영되지 못했다.

이처럼 중기 기술유출방지사업 예산이 번번이 삭감되는 것은 예산당국이 여전히 중기 기술유출 문제의 심각성을 체감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지식경제부와 중기청의 기술유출방지 사업이 명확하게 교통 정리되지 않아 중복 우려로 아예 예산이 반영되지 못하는 난맥상도 나타났다. 결국 국무총리실 업무 조정으로 보안시스템 지원사업을 중기청에서 맡기로 했지만 예산 대응이 늦어져 내년도 예산에 반영되지 못했다.

중기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술유출 피해를 본 기업은 무려 14.7%에 달했다. 기업부설연구소를 보유한 중소기업이 최근 3년간 산업기밀 유출로 입은 피해금은 무려 4조2158억원으로 추정됐다.

중소기업 한 사장은 “예산당국이 마련한 내년도 기술유출방지 예산 26억여원은 3년간 중소기업의 기술유출 피해액 4조2158억원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인 셈”이라며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2011년 중기 기술유출사업 예산안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