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무소를 경영하는 A씨. 모든 건축 설계에 CAD 소프트웨어를 활용한다. 어느 날 SW불법복제 단속을 받았다. 불법복제 CAD 소프트웨어가 대량으로 적발됐지만 범죄를 저질러 창피한 마음보다는 단속만 야속하고 운이 나빴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사로부터 위임받은 법무법인에서 민사합의안내장을 받았지만 합의하지 않고 건축사무소를 폐업해버렸다. CAD 솔루션 정품구매 비용과 합의금인 손해배상청구액을 내느니 사무소를 폐업하고 다시 다른 이름으로 사무소를 차리는 게 저렴하기 때문이다.
SW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낮은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 같은 사회풍토는 한글과컴퓨터, 티맥스소프트, 핸디소프트 등 국내 대표 SW기업의 성장 기반을 무너뜨렸다. SW 산업의 약화는 결국 국내 IT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다.
◇성장 멈춘 한국 SW산업=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최근 발표한 ‘해외 SW업체의 글로벌 전략 사례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SW산업 성장률이 1%까지 추락했다.
2005년 10%씩 성장했던 국내 SW산업 성장률은 2007년 7%로 하락했으며 2008년 5.6%로 내려왔다. 글로벌 금융 위기였던 2009년에 3% 성장했던 국내 SW산업은 경기가 회복된 올 상반기에도 개선되지 않고 1%에 머물렀다.
2004년 2380개에 달했던 국내 패키지 SW기업은 2008년 2143개로 오히려 -2.6%를 기록하는 등 다른 IT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SW산업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국가 경제 손실로 이어져=국내 SW 산업의 위축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불법복제도 무시할 수 없다.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회(BSA)가 최근 IDC에 의뢰해 조사한 ‘2010 SW 경제 영향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SW 불법복제율이 10% 감소할 경우 약 1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년 내 SW 불법복제율이 10% 감소하면 약 20억달러의 추가 GDP와 약 9억달러의 추가 조세 수입 창출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IT제조업 경쟁력도 흔들=전 세계 스마트폰 열풍을 일으킨 애플의 2분기 매출액은 약 18조원으로 삼성전자 37조원에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애플의 영업이익은 약 5조892억원으로 삼성전자의 5조원을 능가했다.
이 두 회사의 차이는 바로 SW에서 비롯된다. 애플은 SW를 중심으로 수평적 생태계를 구성하며 성장했고 이는 높은 영업이익으로 실현됐다. SW저작권 보호가 철저한 미국의 건강한 SW생태계가 애플과 같은 회사의 성장을 촉진한 것이다. 이와 달리 SW저작권 보호에 소홀해 생태계 존립이 위협받은 국내는 뒤늦게 SW 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애플과 구글 충격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김진형 KAIST 교수는 “휴대폰 제조업만이 아니라 자동차, 비행기, 의료기기 등 모든 산업이 SW의존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미국 GDP 성장에서 SW산업의 공헌은 1984년 이후 통신, 전자산업을 추월했고 최근 이 비율은 스마트폰 확산으로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표>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성장률
<출처>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해외 SW 업체의 글로벌 전략 사례 분석 보고서’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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