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PC 몇 대와 파일서버 1대. 국순당 최고정보책임자(CIO)인 김춘섭 전략지원실장은 10년 전 처음 국순당에 합류했을 때 국순당의 정보화 수준을 이렇게 설명했다. IT인프라가 웬만큼 구비된 곳에서 근무하다가 기초부터 새로 IT기반을 갖춰야 하는 곳으로 이직한 김 실장으로서는 커다란 도전이었다.
수기로 문서를 작성하던 수준에서 IT조직을 갖추고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과 도매점 경영지원시스템 등 핵심 인프라를 갖추기까지 김 실장은 꼬박 10년을 정보화 혁신에 매진해 왔다. 그의 발자취가 곧 국순당 정보화의 발자취인 셈이다.
◇기초부터 하나씩 IT기반 갖춰=김 실장은 합류 후 가장 먼저 IT조직을 새로 구성했다. 제대로 된 IT조직 없이는 제대로 된 정보화 추진도 힘들기 때문이다. 동시에 신규 웹사이트 개설로 국순당 홍보 활동을 시작했다.
회사 규모에 걸맞은 업무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시급했다. 기간 업무시스템 개발을 위해 서버와 네트워크 등 기반 인프라 시설이 필요했다. 김 실장은 이렇게 구비된 인프라와 회사 전체 업무분석을 기반으로 2001년 경영정보시스템(MIS)과 도매점 영업관리시스템(PRM)을 구축했다. 이듬해 도매점 영업사원을 위한 모바일 시스템도 만들어 실시간으로 매출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주류 업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국순당은 업종 특성상 전체 매출 가운데 도매점에으로부터 발생하는 매출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도매점 영업정보 관리가 매우 중요하지만 개인 사업자인 도매점주들은 기존 관행 때문에 업무정보를 시스템에 입력하는 것을 아주 꺼린다. 무상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이었지만 영업사원이 종이 서류를 작성하고 다음 날 회의에서 이를 관리하던 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김 실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일이 도매점을 찾아다니며 마인드 변화를 위한 설득 작업을 벌였다. 2년이 넘는 각고의 노력 끝에 도매점 스스로 과학적인 영업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고의 전환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ERP 통해 정보화 본궤도 진입=2000년 코스닥 등록 이후 국순당은 국내 전통주 시장에서 승승장구해 왔다. 하지만 외형적 성장에 비해 조직 내부의 프로세스는 효율적이지 못했다. 장사는 잘됐지만 물건 팔기에만 바빴고 업무 관리는 주먹구구식이었다. 여기에 전통주 시장에 다양한 업체들이 뛰어들어 경쟁이 심화하면서 생존과 성장을 위한 경영혁신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김 실장은 “이런 상황에서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경영혁신을 이루려면 ERP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4년부터 국순당은 경영이 악화되기 시작했고,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IT 투자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정보화 계획을 논의하는 중역회의에서 경영진 대부분은 ERP 도입 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실장은 이런 경영진을 설득하기 위해 근 2년의 시간을 들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장기적인 비전 실현을 위해서는 시급하게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2006년 3월 ERP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그해 12월 시스템을 개통했다. ERP시스템은 국순당과 자회사인 국순당L&B의 기존 정보시스템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구축됐으며, 재무·구매·인사·총무 부문을 포괄하고 있다.
◇IT 통한 비즈니스 의사결정에 일조=김 실장은 “ERP 시스템을 도입하기 전에는 내부에서 직접 시스템을 개발했기 때문에 업무를 진행할 때마다 데이터가 달라졌고 신뢰성도 떨어졌다”고 말했다. 프로그래머 출신인 김 실장으로서도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고, 검증된 프로세스가 절실하게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ERP 구축으로 글로벌 프로세스를 정착시킴으로써 그동안 지적돼 온 각종 문제점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비용절감도 ERP 구축의 효과 가운데 하나지만 가장 큰 성과는 실시간 판매실적 확인 등 국순당 전체의 업무 프로세스가 물 흐르듯 진행되는 점이라고 김 실장은 강조했다.
국순당은 ERP시스템 구축과 동시에 도매점용 ERP 격인 도매점 경영지원시스템도 구축했다. 애플리케이션임대서비스(ASP) 형태로 무상 제공되며, 도매점에서 전체 판매량과 재고 정보를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다.
국순당은 현재 연말을 목표로 국제회계기준(IFRS)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물류시스템의 통합 개선 작업과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 구축, 모바일 오피스 도입도 계획하고 있다.
김 실장은 “IT가 비즈니스 의사결정의 도구로서 자리 매김하기 위해 정보시스템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계획”이라며 “이와 함께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걸맞은 새로운 IT 기술과 솔루션을 발굴해 비즈니스에 접목하는 작업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약력
김춘섭 전략지원실장=1984년 프로그래머로 화승에 입사해 1998년 한미약품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0년 국순당에 합류한 이후 경영정보시스템과 ERP시스템 등 국순당의 핵심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며 정보화를 이끌어 왔다. 현재 국순당 전략지원실장(상무)으로 IT뿐만 아니라 인사, 총무, 구매, 전략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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