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거버넌스)에 대해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논란이 적지 않다. 한쪽에서는 극소수 지분을 보유한 총수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후진적이면서 불투명한 구조라고 맹렬히 비난하는가 하면 다른 편에서는 장기적인 회사 발전과 빠른 결정을 위해 총수체제가 효율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서구 언론들은 한국의 발전에 감탄하면서도 기업투명성, 지배구조 부문이 향후 성장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반면에 최근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추월당했거나 추월 위기에 사로잡힌 일본 언론들은 한국기업들의 성공은 ‘총수들의 과감하고도 빠른 의사 결정이 비결’이라고 결론짓는 모습이다.
최근 증권 및 투자은행인 크레디트리요네(CLSA)는 ‘아시아 기업지배구조협회’와 공동으로 ‘2010년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를 발간했다. 아시아 총 11개국 580개 아시아 기업을 평가한 이 보고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으로 하이닉스반도체를 올렸다. 의외였다. CLSA는 하이닉스가 투명성, 원칙준수, 독립성, 공정성,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의 평가를 통해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밝혔다. 반면에 하이닉스는 국내에서 ‘주인 없는 회사’ ‘주인 찾기 힘든 회사’ ‘채권단의 관리를 받는 회사’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변색돼 있다. 마치 주인이 없기 때문에 미래가 불투명한 기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이닉스는 역설적으로 주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3월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하고 독립된 감사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이사회 안건을 하루나 이틀 전에 알려주는 다른 이사회와 달리 일주일 전에 이사회 안건을 이사에게 제시하고 충분히 검토할 시간을 준다. 거수기 역할에 머무는 다른 이사회 운영과는 사뭇 다르다. CLSA는 이 보고서에서 국가 순위도 함께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중국·말레이시아에도 뒤처져 필리핀·인도네시아와 함께 가장 기업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나라군으로 꼽혔다. 미래 지향적이면서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그 결정과정이 투명하면서 견제받는 새로운 한국식 지배구조의 출현을 기대한다. 유형준 반도체디스플레이팀장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