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마트폰이 일깨운 개방의 새 의미
‘개방’은 인터넷 세상, 디지털 트렌드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특히 스마트폰의 확산과 모바일 인터넷 대중화, 태블릿PC/스마트TV 등 멀티플랫폼 시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경계가 무너진 IT세계에서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직접 해낼 수 있는 영역은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개방에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온 국내 기업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개방이 단지 좋은 것, 의미 있는 것, 차별화의 지점이었다면 앞으로의 개방은 필수적인 것, 전략적인 것, 핵심 경쟁력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IT시대 개방의 의미와 변화하는 흐름들, 개방을 위한 과제 등을 5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우리는 개방된 시스템이 더 많은 혁신과 가치, 그리고 소비자의 선택을 주도할 것이라고 믿는다.”-9월, 에릭 슈미트 구글 CEO
“개방된 시스템이 언제나 이기는 것은 아니다. 안드로이드폰은 다양한 버전의 OS에서 돌아가기 때문에 개발자들은 각기 다른 버전에 맞춰 일일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야 한다.”-10월, 스티브 잡스 애플 CEO
글로벌 IT기업의 수장이자 시대의 라이벌인 이 두 CEO의 신경전은 이제 개방으로 까지 확전됐다. 개방의 전도사임을 자랑하는 구글과 개방도 단지 하나의 전략일 뿐임을 주장하는 애플의 충돌은 ‘개방’이 현재 IT 생태계 구축의 주요한 화두가 됐음을 의미한다.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지난달 “‘개방’과 ‘확장’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점을 뼈저리게 반성한다”며 “지금까지 개발된 서비스뿐만 아니라 앞으로 개발된 서비스를 모두 개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SK텔레콤이 그간 ‘폐쇄’돼 있었음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NHN이나 다음커뮤니케이션 등 가두리 양식장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국내 주요 포털들도 API 공개 등 다양한 개방 정책을 잇달아 내놓으며 개발자와 협력사 우군 확보에 나섰다.
◇개방 열풍의 중심, 스마트폰=왜 이렇게 갑자기 개방에 호들갑을 떨까. 역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스마트폰이다. 폐쇄된 인터넷 환경에 갇혀 있던 이용자들은 스마트폰 이용 후 기존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던 차원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소비자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앱을 이리저리 써보고 추천하고 구매하면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데 큰 촉매제가 되고 있다. 액티브X 설치 문제나 공인인증서 의무화 등 스마트폰에서는 개선을 위한 이용자 요구가 끊이질 않는다. 지난 3월 제도를 개편을 통해 30만원 미만의 제품·서비스 구매에서는 공인인증서 설치의무가 사라진 것도 성과 중 하나다. 그러나 미래기술연구센터(ETRC) 조사 결과 여전히 개발자들의 74.7%가 이를 반대하고 있고, 스마트폰 이용자의 42%가 불편한 요소로 꼽고 있다. 적당히 참지 않겠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모바일 인터넷 환경이 열리고, 이용자들은 다양한 브라우저와 해외서비스를 경험하면서 이 외에도 글로벌 표준·접근성 등 개방성과 관련된 문제도 체감하기 시작했다.
개발자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기업에 소속돼 회사가 지시한 것만은 개발하던 과거의 개발자들이 스스로 직접 앱을 만들어 장터에 올리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1인 기업인으로, 3~4인의 소규모 벤처 창업자로 변모하고 있다. 앱스토어, 안드로이드 마켓 등 오픈마켓 플랫폼의 활성화와 공개 API 활성화 등 개방 흐름이 새로운 시장과 비즈니스에 대한 기회를 높여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떤 IT기업이라도 개방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글로벌 서비스의 역습=이 같은 변화는 소비의 주체인 이용자와 IT생산 기지인 개발자 구릅들을 글로벌 서비스로 눈을 돌리게 하고 있다. SK텔레콤이 제공하는 콘텐츠 서비스에 익숙해졌던 이용자는 이제 여러 온라인 앱장터를 돌아다니며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만을 구매한다. 네이버에 서비스 연동을 하려고 애쓰던 개발사는 이제 다양한 국내외 플랫폼과 서비스를 놓고 저울질을 시작한다.
전자신문 ETRC가 1000명의 인터넷 이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0 인터넷 메가트렌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의 66.5%가 글로벌 서비스를 이용해본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경계가 허물어진 상황에서 접근이 더욱 쉬워진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1년간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주요 글로벌 서비스의 트래픽도 급증했다. 정식 지사도 없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벌써 수백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며 지난 10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2.9배, 6.6배 트래픽이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직 국내 서비스들의 시장점유율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이런 지표들은 치열한 글로벌 경쟁이 국내에도 반영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서비스 개발과 관련, 향후 개발하고 싶은 플랫폼에 대한 조사에서 구글 안드로이드·애플 iOS 등을 선택한 비율이 80%에 가까웠던 것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개발자들이 해외 기업이 제공하는 오픈 소스 이용해 본 경험이 더 많고,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동호 안드로이드사이드 운영자는 “해외 기업의 플랫폼이 더 많이 개방돼 있고, 개발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며 “자신이 개발한 서비스를 더 넓은 시장에 내놓고 싶은 욕구도 해외 플랫폼을 선택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준비 덜 된 한국 인터넷, 속도 내야=국내 기업들의 행보가 빨라지고는 있지만 국내 서비스는 개방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조차 덜 된 상태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 인터넷 서비스의 개방을 위한 기본 조건을 △접근성 △웹표준 △유무선 연동 △규제 자유도로 나눠 평가했을 때 100점을 기준으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민간 인터넷 서비스는 평균 54.8점이었으며 공공 인터넷 서비스는 42.3점에 불과했다. 민간 영역은 4항목 중 규제 자유도가 49.16으로 가장 취약하며, 공공 인터넷 서비스는 유무선 연동이 35.28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자칫 국내 이용자와 개발자 그룹들이 해외 서비스로 몰려가고 외국 기업 서비스에 안착하는 흐름이 강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스타트업 지원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양석원 코업대표는 “시작점에서부터 개방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며 “이제 표준·접근성은 생존을 위해서도 필수 불가결하다”고 지적했다.
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장은 “국내 기업들이 폐쇄적이라고 비난받지만 어찌보면 이제까지는 국내 시장에 최적화한 형태로 진화해 온 것일 수 있다”며 “그러나 이제 혁신의 도구로 개방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때가 왔으며 외부의 힘에 의해 그것이 제기된 것인 만큼 적극적인 개방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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