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이 멀티미디어기기 시장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소비자들은 제품 기본사양만 비교하던 것에서 직접 만져보고 난 후 구매를 결정하기 시작했다. 이에 도심 곳곳에 체험을 강조한 정보기술(IT)기기 매장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이른바 ‘멀티미디어기기 체험매장’이다. 인기를 반영하듯 기존 IT기기 유통 전문업체는 물론이고 대기업도 관련 시장에 뛰어드는 추세다.
◇멀티미디어기기, 이제 만져보고 산다=삼성전자는 지난해 서울 영풍문고 종로점에 ‘삼성 모바일샵’ 1호점을 열었다. 기존 전자제품 매장인 ‘디지털프라자’와는 다른 컨셉트로 매장을 구성했다. 이곳에서는 냉장고·TV 등 전통적인 대형 가전제품은 찾아볼 수 없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카메라·노트북·MP3플레이어 등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제품이 대다수다. 선반마다 유사한 기종의 제품을 모아놓았다. 소비자가 직접 만져보고 비교해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현재 삼성 모바일샵은 전국에 9곳이 들어섰다.
올해 4월에 문을 연 ‘라츠(Lots)’ 역시 이 같은 형태의 체험매장이다. 서울 강남·노원, 경기도 수원·안양 4곳의 매장이 성업 중이다. 지난달에는 인터넷쇼핑몰도 개설했다. 오프라인 매장과 연동해 제품 구매·교환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11월 서울역점에 ‘디지털파크’ 1호점을 연 뒤 서울 구로점과 청량리점에 연달아 신규 매장을 개설했다.
통신사업자도 합세했다. SK텔레콤은 올 초 서울 명동에 ‘T월드 멀티미디어센터’를 열었다. 3층 규모의 매장을 방문하면 SK텔레콤의 각종 유무선 서비스를 체험해 보고 휴대폰·스마트폰 구매와 사후서비스(AS)까지 받을 수 있다.
KT도 서울 광화문사옥 1층에 복합 IT 문화공간을 표방한 ‘올레스퀘어’를 운영한다. 이곳에서는 직접 제품 판매를 하진 않는다. 다만, KT가 공급하는 스마트폰·스마트패드를 직접 시연해볼 수 있다.
이 같은 체험매장이 갑작스레 등장한 것은 아니다. 2004년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 ‘애플체험센터’라는 이름의 매장을 열며 사업에 뛰어든 맥게이트는 11월 현재 매장 21곳을 운영한다. 단일 브랜드로는 최다 매장을 보유했다. 이곳은 젊은이에게 ‘에이샵(a#)’이라는 브랜드로 더 잘 알려졌다.
금강제화 계열의 갈라인터내셔널에서 운영하는 ‘프리스비(Frisbee)’도 지난해 1월 서울 명동에 첫 매장을 연 뒤 현재까지 8곳으로 매장을 늘렸다. 이 밖에 ‘어노인팅’ ‘대화’ 등 소규모 업체도 애플 제품 취급을 무기로 시선 끌기에 나서고 있다.
◇체험매장, 왜 인기일까=기업들이 앞다퉈 체험매장 개설에 나서는 이유는 체험 마케팅 효과가 기대 이상으로 쏠쏠하기 때문이다. 손원범 팬택 차장은 “전시대 안에 진열된 기기를 구경하고 사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원하는 기기를 마음껏 만져보고 즐기면서 나에게 최적화된 기기를 찾는 소비자의 기호에 맞추는 것이 새로운 흐름”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일찍 체험매장이 대중화됐다. 대표적인 디지털가전 매장인 ‘빅카메라’는 제품을 손수 만져보고 꼼꼼히 살펴본 뒤 구매로 이어지는 비율이 더 높다는 점에 착안, 체험 후 구매라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했다. 결과는 성공, 빅카메라는 기존 매장을 단번에 제압했다.
성영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체험 마케팅은 오감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으로 인식되며 오래전부터 사용된 마케팅 방식”이라며 “대형마트의 시식코너처럼 아주 기초적인 체험 마케팅에서 시작해 최근에는 전 분야로 확산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에는 직접 입어보고 구입을 결정할 수 있는 여성 속옷매장이 등장해 인기를 얻고 있다. 매장 내 자갈을 깔아 등산화의 착용감을 직접 느끼도록 배려한 아웃도어 스포츠매장도 마찬가지다.
특히 IT기기는 그 성격이 변화하면서 체험이 더욱 중요한 구매요소로 떠올랐다. 과거 반응속도·기능 등 하드웨어 사양이 중요한 경쟁력이었다면 현재는 디자인이나 사용자환경(UI)·사용자경험(UX) 등이 구매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성 교수는 “사람이 스킨십을 통해 친밀감을 느끼듯, 개인용 IT기기를 손으로 다루다보면 촉각적 즐거움을 느끼면서 구매로 이어질 확률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열풍도 인기에 한몫=일부는 지난해부터 불어온 스마트폰 열풍이 체험매장 인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스마트폰 액세서리도 체험매장의 주력상품이기 때문이다.
지난달을 기준으로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는 500만명을 넘었다. 이들은 일반 휴대폰에 비해 고가인 스마트폰을 충격과 고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보호 케이스와 같은 액세서리를 찾는 일이 많다고 말한다. 한 체험매장의 운영자는 “보호 케이스를 구매하기 위해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이 부쩍 늘어났다”며 “이들을 위해 매장에 액세서리 종류와 물량을 대폭 늘렸다”고 말했다.
SK텔레콤·KT 등 통신업체가 체험매장을 여는 이유도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통신망을 이용한 IT기기 홍보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애플 효과는 국내 대다수의 체험매장이 애플 제품을 활용한 마케팅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스마트폰 열풍을 불러일으킨 주역 중 하나로 애플의 아이폰이 꼽히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 모바일샵이나 SK텔레콤의 T월드 멀티미디어센터 정도를 제외한 체험매장 대부분은 아이팟·아이폰·맥북 등 애플의 IT기기를 판매한다. 이들과 호환되는 이른바 ‘서드파티’에서 생산된 제품도 마찬가지다. 고객이 이들 매장에 몰리면서 체험매장 사업 진출을 준비 중인 업체들도 애플 제품을 주력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올해 말에서 내년 초 신규 매장을 열 예정인 SK네트웍스나 신세계아이앤씨가 대표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애플이라는 브랜드에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더한다면 쉽게 체험매장 시장에 안착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어떻게든 애플 제품을 취급하려는 게 최근 추세”라고 말했다.
멀티미디어기기 체험매장 현황
용어설명
멀티미디어기기 체험매장=카메라·PMP·MP3플레이어 등 젊은이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 정보기술(IT)기기를 판매하는 매장이다. 스마트폰·스마트패드도 취급하며 관련 액세서리도 함께 판매한다. 일반 매장과 달리 직접 제품을 시연해보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해 최근 인기를 얻고 있다. 인테리어에 젊은이들의 취향을 반영했다는 점도 인기를 끄는 요인이다.
박창규기자 kyu@etnews.co.kr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멀티미디어기기 체험매장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