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포럼]숱한 잃음 속의 결과

[콘텐츠포럼]숱한 잃음 속의 결과

괜찮은 다큐멘터리 영화 속엔 제작진의 엄청난 인내력과 투지가 담겨져 있다. 지난 해 관객 동원 300만에 육박했던 ‘워낭소리’는, 연출자인 이충렬 독립PD의 인간승리라 할 수 있다. 3년에 걸친 촬영, 1년이 넘게 진행된 편집, 만드는 이의 집념과 용기가 없인 불가능한 영화였다. 그런 면에서 다큐멘터리는 산업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콘텐츠다.

필자는 독립PD다. 또 다큐멘터리 제작자면서 동시에 연출자다. 방송용 다큐멘터리 작업이 주류를 이루고, 가끔은 극장용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한다. 2000년 제작한 ‘보이지 않는 전쟁’, 2008년에 제작해 전주국제영화제 및 마드리드 국제 영화제, 암스테르담 히말라야 영화제 등에서 수상을 한 ‘신의 아이들’이 그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리고 지난 2년 동안은 인도 인력거꾼의 삶을 다룬 ‘오래된 인력거’의 연출자로서 보냈다. 앞서의 두 편은 제작 지원이라든가 민간 투자가 사실상 없이 필자의 주머니를 털어 제작된 영화였지만, ‘오래된 인력거’는 2009년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제작지원을 하고 시공테크가 민간투자 함으로써 2010년 9월 제작이 완료된 극장용 다큐멘터리다. 인력거꾼의 삶을 10년 동안 기록한 영화로, 지난해 인도 현지에서 6명의 한국인 제작진이 100일 동안 촬영한 대하 다큐멘터리다. 본격적인 촬영과 편집에 들인 기간이 오롯이 2년이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를 세계 곳곳에 보냈다. 사실 어떤 반응이 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첫번째 회답은 다큐멘터리의 성지 암스테르담으로부터 왔다. IDFA로 불리는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는 ‘다큐멘터리의 칸느’란 찬사를 받는 세계 최대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이자 마켓이다. 그 영화제에서 꽃이라 하는 장편 경쟁 부문에 대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됐다고 연락이 왔다. 그 소식은 세계 곳곳에 알려졌고, 유수의 채널과 세계적인 배급사로부터 구매 문의가 왔다. 그 가운데 프랑스의 캣엔독스란 세계적인 명품 다큐 전문 배급사와 파격적인 계약을 맺었다. 11월 17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IDFA에서는 대상 수상과 관계없이 최소한 10여개의 세계적인 방송사와 콘텐츠 구매 계약을 맺게 된다.

모든 영상 제작자는 기획단계에서 자신의 영화가 시장에서 성공하길 기원하며 또한 그렇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 평가를 받게 되는 작품은 1%도 안 된다. 투자사들도 확신을 가지고 제작비를 투입하지만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게 영상 산업 투자다. ‘워낭소리’의 성공을 예측한 전문가는 단 한사람도 없었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비효율적인 집념과 인내력의 산물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다큐멘터리스트는 황무지와 같은 곳에서 자라는 잡초와 같은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그 잡초에 거름과 물이 된 것이 방송콘텐츠 제작지원이며 그 결과가 ‘오래된 인력거’의 암스테르담 쾌거다.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막강한 힘이다.

‘오래된 인력거’가 세계 최대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암스테르담에서 사상 최초로 장편 부문 대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고, BBC, ARTE, NHK, HBO 같은 세계 유수의 채널이 구매의사를 적극적으로 타진하는 것은 필자도 예측하지 못했던 쾌거다. 그런 점에서 제작진을 믿고 온갖 풍파 속에서 결과를 기다려 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필자와 같은 다큐멘터리스트에겐 구세주와 같은 존재가 된다. 이제 새롭게 싹을 틔우고 있는 또 다른 잡초에 거름을 줘야한다.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닌 잡초에게


이성규 독립프로듀서 report2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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