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8개월여 만에 반토막 나자 일본ㆍ대만 업체들이 수익성 저하를 견디지 못하고 감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는 일본ㆍ대만보다 40~60% 낮은 원가를 바탕으로 현재 가격대에서도 수익을 충분히 낼 수 있다며 생산량을 유지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61%까지 높아진 한국 업체들의 D램 시장 점유율이 내년에는 70%에 육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까지 강세를 보이던 D램 반도체 가격은 4월부터 공급과잉 논란이 일어나며 8개월째 내리막을 걷고 있다. 특히 일부 품목 값은 고점 대비 반토막이 나기도 했다.
시장조사기관인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주요 상품인 DDR3 1Gb의 경우 현물가 기준으로 지난 3월 말 개당 3.08달러까지 치솟아 올 최고가를 기록했으나 △5월 2.76달러 △7월 2.48달러 △9월 2.08달러 △11월 1.41달러로 떨어졌다.
한국의 경쟁사인 대만ㆍ일본 업체들은 D램 가격이 반토막으로 떨어져 수익을 낼 수 없게 되자 감산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세계 3위 D램 반도체 업체인 일본 엘피다는 가격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PC용 D램 생산량을 4분의 1 정도 줄이고 신규 공장 설립도 미루기로 했다.
엘피다는 2008년에도 메모리 가격이 손익분기점 이하로 떨어지자 생산량의 10%를 감산한 바 있다. 엘피다와 함께 대만의 파워칩도 감산대열에 합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워칩도 PC용 D램 반도체 생산을 줄이기로 했다.
대만ㆍ일본 업체들과 달리 한국 기업들은 감산계획이 없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15일 "현재로서는 전혀 생산량을 줄일 계획이 없으며 예정돼 있는 투자도 계속 진행할 것"이라며 "현재의 생산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이닉스 관계자도 이날 "가격이 많이 떨어졌지만 지금 가격에서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감산계획은 전혀 세우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ㆍ대만 업체와 한국 기업의 시장 대응이 다른 것은 미세공정화를 바탕으로 한 원가경쟁력에서 비롯된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현재 업계 최고 수준의 미세공정인 40나노급 공정으로 D램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30나노급에서의 생산도 시작했다. 이에 비해 미국ㆍ일본ㆍ대만 업체들은 50ㆍ60나노급에서 제품을 양산하고 있다. 50나노급에서 40나노급으로 미세공정화를 진행하면 원가를 40% 이상 낮출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KB투자증권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D램 개당 생산원가를 각각 0.78달러, 1.09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이 정도 원가면 현재 가격 수준인 1.41달러에서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 이에 비해 미국 마이크론의 생산 원가는 1.42달러, 일본 엘피다 1.6~1.8달러, 대만 파워칩 1.8~2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이 원가대로라면 일본ㆍ대만 업체들은 현재 가격대에서는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려워 감산이 불가피해 보인다.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D램 가격은 좀 더 하락할 것으로 보이며 일본ㆍ대만 업체들의 추가 감산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감산에 나서지 않고 있는 한국 업체들의 시장지배력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서주일 KB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D램 가격은 내년 초 1.2~1.3달러까지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따라 수익성을 맞추지 못하는 일본ㆍ대만 업체들의 감산 발표가 더 나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 연구원은 또 "한국 업체들은 원가경쟁력이 좋아 당분간 감산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에 따라 현재 61% 수준인 한국 업체들의 D램 시장 점유율이 내년에는 70%에 육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 업체들의 시장지배력 확대는 이미 지난 3분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3분기 세계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40.7%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으며, 하이닉스가 20.9%로 2위를 기록했다.
두 업체를 합친 점유율은 61.6%에 달하며 한국의 점유율이 60%를 넘어서기는 처음이다.
[매일경제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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