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터넷산업이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생적인 개방과 상생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9월 9일 인터넷상생협의체 발족식에서)
그동안 독자적인 발전모델을 만들어 온 국내 인터넷 산업도 유무선 통합, 글로벌 무한 경쟁체제 속으로 편입되면서 개방의 필요성이 점차 높아졌다. 정부도 이런 추세를 눈감기 어렵게 됐다. 2007~2008년 사이버모욕죄 발의 등 최고조에 달했던 정부의 인터넷 규제 강도는 점점 완화되는 추세다. 최근에는 일련의 개방과 상생 흐름에 맞지 않는 기존 법제도를 보완 수정하는 노력이 가시화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보다 법제도가 늦게 움직이는 속성을 감안하더라도 이미 불합리성이 드러난 규제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속도를 내야한다는 지적도 많다. 물론 정부 규제가 개방을 가로막는 직접적인 요인은 아니지만 규제 프레임워크에 갇히다보면 기업들의 혁신성이 저하되고 비즈니스 전략으로서의 개방이라는 카드를 원활하게 구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사전 규제는 대기업보다는 중소 벤처기업이나 창업 기업의 운신을 좁게 해 IT생태계 구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자신문 미래기술연구센터(ETRC)가 업계 및 학계 전문가들과 기업 인터뷰를 통해 ‘현행 인터넷 관련 규제 중 여전히 부작용이 있거나 개선이 필요한 규제’를 파악한 결과 △게임물 사전 심의 △저작권 규제 △공인인증 제도 의무화 △불법 유해 정보 모니터링 △제한적 본인확인제 등 5개가 꼽혔다. 특히 이 규제가 실제 서비스 개발이나 콘텐츠 개발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지 알아보기 위해 개발자들 249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불법 유해 정보 모니터링’을 제외한 모든 규제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이 나왔다. 이 가운데서도 게임물 사전 심의 규제에 대한 불만이 가장 높았다.
◇게임물 사전 심의, 최우선 해결 과제=현재 앱·웹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개발, 생산되고 있는 분야가 게임이다. 특히 애플 앱스토어, 안드로이드 마켓 등 글로벌 앱스토어가 대세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규제에 순응하다보면 글로벌 산업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우려가 강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모바일 오픈 마켓에서 국내만 게임 서비스가 제한됨으로 인해 개발에 제약이 있거나 법을 우회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자각이 반영된 것이다.
응답 개발자들의 68.6%는 사전 심의가 창의적 콘텐츠 생산에 역영향을 미친다고 대답했으며, 66.2%는 시장 활성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개발자들은 일종의 자율규제인 ‘고지 시 삭제(notice and takedown)’ 방식을 지지하고 있으며 그 이유로 △창의적 사고에 도움 △애써 만든 콘텐츠가 사장 되지 않을 것 등을 꼽고 있다. 마냥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창의성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규제가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원하고 있는 것이다.
◇공인인증제도, 글로별 표준이 대안=공인인증제도 의무화로 인한 ‘액티브X(ActiveX)` 설치는 개발자들이 게임물 사전 심의 다음으로 개발 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꼽은 항목이다. 앱과 모바일 웹에서 결제를 통한 다양한 수익 모델을 구사할 수 있는데, 액티브X를 기반으로 한 현행 공인인증제도는 적용하기 어렵고 사용절차도 복잡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 3월 다른 공인인증서 외에 대안도 인정하고, 30만원 미만의 결제에 대해서는 공인인증서 없이도 거래가 가능하게 했지만 개발자들은 글로벌 서비스를 설계하는 데는 여전히 제약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해외 이용자들이 많이 쓰는 크롬·사파리 같은 멀티 브라우징 환경이나 스마트폰·태블릿PC 등 N스크린 환경에서는 한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개발자들은 액티브X 외에 SSL, HTML5와 같은 현실적이고 기술적 대안을 제시하면서 제도 개선을 적극 촉구했다.
제도 개선을 주도한 류한석 기업호민관 IT담당도 “다소 완화되긴 했지만 더 많은 개선이 필요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한적 본인확인제, 곧 없어질 것=‘제한적 본인 확인제’ 역시 글로벌 경쟁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 제도는 역기능을 제어하는 실효성이 거의 없고, 해외 서비스에는 적용할 수 없어 국내 기업과의 역차별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무엇보다 최근 방통위가 소셜 댓글이 ‘제한적 본인 확인제’의 대상인지 검토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법을 앞세우다 보면 글로벌 트렌드에 맞춘 서비스나 창발적인 아이디어가 제한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국가주의 규제는 인터넷 기업에게 국가별 커스터마이즈 비용을 낳고, 서비스의 연결성을 깨트린다”며 “이는 해외 기업의 국내 시장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보면 국내 규제체제에 적합하게 생산된 서비스가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문제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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