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이슈]몸으로 통(通)한다:신체 간 네트워크(BBN)

모두 들떠 있는 크리스마스 이브. 이동통신사 네트워크 담당자들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네트워크 상황실에서 전 직원이 비상근무를 하며 화면 속 지도에서 점멸하는 불빛을 주시한다. 인파가 몰리는 명동·강남·홍대 등에서는 간헐적으로 네트워크에 과부하가 걸리기도 한다. 보통 때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이동기지국을 설치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첫눈이 오는 날,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새해 첫 새벽 상황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종각 등이 중점관리 지역이다.

이통사 관계자는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 확산으로 모바일 인터넷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통신 두절 사태가 우려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인간이 통신 기지국=이와 같은 이통사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오랜 기간 지속돼 왔다. 대부분 주파수 폭을 늘리거나 기지국을 증설하는 등 물리적 방법과 함께 다중입력 다중출력(MIMO60) 등 기술적 방법을 이용해왔다.

하지만 이들 역시 분명한 한계가 있어 완벽한 대안이 되지 못했다. 주파수는 한정된 자원이고 기지국 역시 환경 문제 등으로 무한대로 늘릴 수만은 없다. 또 주파수를 효율화하는 기술이 확장하는 네트워크 용량도 그리 큰 수준은 아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신체 간 네트워크(BBN:Body-to-Body Network)’라는 아이디어가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BBN은 사람이 입거나 신체 안에 장착한 센서로 ‘인간 대 인간’이 무선통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네트워크다. 즉 인간 자체가 새로운 모바일 네트워크의 대규모 전송회선이 된다는 것이다. 블루투스·NFC와 유사한 근거리 무선통신26 기술을 이용해 인간과 인간 사이에 데이터가 전송된다.

BBN은 그간 활발하게 연구돼 온 ‘무선신체영역네트워크(WBAN)’, 일명 보디넷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다. WBAN의 경우 인체 내부에서 작동하는 이식형 장치나 인체 외부에서 작동하는 웨어러블 센서가 생체 신호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몸 상태를 분석해 원격 의료진단 및 치료 등을 수행할 수 있는 네트워크다. 신체에서 다른 기기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개념이 신체에서 신체로 보내는 범위로까지 확대된 것이 BBN이다.

실제로 영국 퀸스대학 전자통신정보기술연구소(ECIT)에서는 BBN 프로젝트를 심도있게 연구하고 있다.

사이먼 코톤 ECIT 무선커뮤니케이션 리서치그룹 박사는 “지난 몇 년간 인간 신체 관련 네트워크의 연구가 많이 진행됐지만 신체 사이의 효율적인 정보 전달 방법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BBN이 상용화될 경우 언제 어디서나 데이터에 접속할 수 있는 강력하고 새로운 모바일 인터넷 네트워크 시대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BBN과 비슷한 아이디어는 과거에도 있었다. ECIT 엔지니어가 연구하고 있는 시스템은 호주에서 개발된 그물형 네트워크인 ‘배트폰(batphones)’이나 와이파이연합이 선보인 새로운 ‘기기 간 무선기술(M2M159)과 비슷한 면이 있다. 기기에 부착된 센서 자체가 네트워크 백본이 돼 데이터를 전송한다는 것이 인간에 부착된 센서로 바뀐 것뿐이다.

또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이미 지난 2004년 6월 미국에서 ‘인간 신체를 이용한 전력과 데이터 전송에 관한 방법’ 특허를 출원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입을 수 있는 시계·키보드·디스플레이·스피커 등 휴대형 기기를 매개로 한 네트워크를 제안했다.

◇진정한 유비쿼터스 사회로 가는 지름길=연구자들은 BBN 기술이 가져오는 사회적 효익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모바일 브로드밴드 사용량 증가로 발생하는 여러 비용 및 기술적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비쿼터스 사회 진입의 가장 큰 장벽으로 여겨지는 네트워크 연결 문제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에 u시티, 지능형 빌딩 시스템, 스마트워크 등 각종 융합서비스를 무선 기반으로 원활하게 제공할 수 있게 된다.

BBN이 현실화된다면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 네트워크 용량 부족으로 통신 서비스가 중단되는 일도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

사람이 많을수록 센서가 더 많아져 통신이 원활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을 활용한다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연장, 스포츠 경기장에서 콘서트나 경기를 BBN으로 중계할 수도 있다. 앞에 앉은 사람에게서 뒷사람으로 데이터가 전달돼 방송국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통신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전장에서 군사용으로 활용된다면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코톤 박사는 “BBN 아이디어가 실현된다면 휴대폰 서비스 이용자에게 필요한 기지국 수를 크게 줄이면서 데이터 전송량은 늘릴 수 있다”면서 “이와 함께 BBN은 각국이 추진하고 있는 u헬스케어 비전을 적은 예산으로 현실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통신장비가 줄면서 사용 전력도 감소하는 등 보다 환경 친화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도 BBN의 장점이다. 통신 기지국과 관련한 건강·환경 등 규제도 더 이상 필요 없어진다.

물론 BBN의 실현에는 극복해야 하는 여러 과제가 있다. 먼저 네트워크 센서의 크기나 전력 소모량 문제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안테나, 배터리 등 전송 장비는 충분히 작게 만들 수 있고 1와트(W) 이하 저전력으로 제작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신체의 움직임만으로 충전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 BBN의 시나리오는 사용자가 한적한 교외지역에 있을 경우에는 실현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데이터를 전송할 기지국이 없는 셈이기 때문이다.

보안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민감한 데이터가 인간 사이에 흘러다닌다고 생각하면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철저한 보안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BBN의 확산을 기대할 수 없다. 또 통신, 데이터 전송 등이 인체에 미칠 영향 등도 밝혀내야 할 문제다.

황지혜기자 goti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