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섹션] `우리가 말하는 융합이란 무엇인가` 특별 좌담회

전자신문은 매주 목요일 연재하는 ‘퓨처면’ 기획 2주년을 맞아 한국과학창의재단과 공동으로 특별 좌담회를 열었다. 16일 서울 서교동 KT&G 상상마당에서 ‘우리가 말하는 융합이란 무엇인갗를 주제로 열린 좌담회에는 융합을 화두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참석해 열띤 논의를 벌였다. 융합의 시대, 현재를 진단하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이 시대 석학의 목소리를 모아 봤다.

◇좌담회 참석자

박종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최양희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학부장

신경호 KIST 국제교육협력본부 본부장

김동원 KAIST 문화기술대학장

이영철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박방주 한국과학기자협회 회장

주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실장

*사회=정윤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사회(정윤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융합이 화두다. 그동안 과학기술 방면에서 학문 간 융합이 많이 회자됐다면, 이제 인문·사회·예술까지 아우르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전화기를 예로 들어보자. 과거에는 효용이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디자인이 중요하다.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은 지식 만으로 나오지 않는다. 지식과 감성의 융합으로 가능하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과 함께 융합에 대한 생각을 가감 없이 들어보고자 한다.

◇박방주 한국과학기자협회 회장=한 행사장에서 LCD로 8폭짜리 병풍을 전시한 것을 봤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단지 패널에 영상을 틀어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고 백남준씨 작품도 그렇다. 1960년대만 해도 누가 그의 작품을 예술이라고 생각했나. 하지만, 이런 작품이 예술이 된다. 남이 하지 않았던 것을 융합시켜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깨달았다. 융합이나 창조는 다른 곳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인간의 DNA에는 융합이나 창조가 처음부터 각인돼 있다고 판단하게 됐다. 물론 이것이 세상에 드러나려면 접촉이 필요하다. 과거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극단적인 실험을 진행했다. 어린 아이가 인간과 접촉하지 않은 채로 십 대까지 홀로 자라도록 둔 것이다. 프리드리히 2세는 인간이 따로 떨어져 자라도 충분히 언어를 습득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인간의 유전자에 자리한 융합·창조라는 아이콘은 접촉과 경험을 통해 비로소 발휘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실장=학위논문 발표 경험을 떠올려봤다. 사전 준비를 충분히 마쳤는데도, 정작 중요한 상황에서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를 보면서 과학기술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기(氣)’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사람은 네 가지 요소로 둘러싸여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장 바깥이 몸(body), 몸 안에는 마음(mind), 그 안에는 영혼(soul), 가장 안쪽에는 정신(spirit)이 인간을 구성한다고 했다. 이를 우리 사회에 적용해보자. 과학기술이 ‘몸’이라면 인문사회는 ‘마음’, 예술이 ‘영혼’, 종교가 ‘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사람 자체가 우리가 몸담은 과학·인문·예술·종교와 유사하다. 한 몸인 만큼 안과 밖으로 잘 넘나들며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자주 접하고 즐길수록 가능해진다. 엑스포과학공원 같은 공간의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융합적인 사고로 접근했으면 한다. 첨단 미래 기술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박종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융합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산업혁명 이후 혹은 르네상스 이후, 각 학문이 발전을 위해 벽을 쌓고 자신에게 집중해왔다. 후기산업사회에 들어서자 사회가 풍요로워지면서 자연스레 학문 간 융합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영화 등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대학에서도 간 학문적 연구는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누군가 선언하고 선점하려 들면 외려 번거롭고 부담스러울 수 있다. 융합은 인위적인 작업으로 이루려고 해선 안 된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사례를 소개하겠다. 학생들에게 스스로 원하는 프로젝트를 만들어보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한 지역을 선정해 지역민과 교류하고, 놀도록 하는 프로젝트다. 어떤 것으로 즐길 것인지 내용을 만들어 찾아가도록 했다. 처음엔 학생들이 봉사 개념으로 접근할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학생들이 새로운 학습의 형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자기는 비우고 그곳에서 다른 것을 채우는 진짜 융복합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엄밀한 의미에서 과학과 예술이 항상 융합적으로 발전해왔다고 볼 수 없다. 과학 내부의 융복합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인문학과 과학기술을 연결짓는 건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요즘 ‘통섭’이 파도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데, 우리나라는 항상 화두만 던져진 채로 풀리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학문이 융합하면 고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맞는 말이다. 이때 고부가가치란 시장에서의 개념이다. 인문학적 관점으로 보면 인간다움 창출로 봐야 한다. 인간다움을 향한 끊임없는 성찰이 융복합을 필연적으로 만든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다움의 성찰을 간과하지는 않았나 싶다. 결국, 오늘날 융합이 계속 거론되는 이유는 과학기술은 발전했지만 인간다움도 그에 버금가게 발전했느냐에 대한 문제 제기다.

실질적인 융합을 이루려면 ‘3C’가 필요하다. 대화(Conversation)·소통(Communication)·수렴(Convergence)이 그것이다. 예전에 한 외국 업체의 연구소를 방문했다. 이곳에는 철학자·심리학자·문학자가 함께 일한다. 철학자가 새로운 의미를 정립하고, 제품 접근성은 심리학자가 담당한다. 또 제품의 창조성은 문학자의 몫이다. 이들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제품 하나를 완성한다. 우리도 이처럼 학문 종사자 간 실질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김동원 KAIST 문화과학대학장=지난해 문화과학대학장으로 부임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실패의 경험’이다.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학문 간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둘째, 리더십의 부재다. 셋째, 실천이 어렵다. ‘아름다움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갗를 주제로 연구를 해봤다. 얼마 못 가서 정리됐다. 자신의 방식이 가장 익숙하다 보니 각자 자신의 방법을 토대로 일을 진행하게 되고, 한곳에 힘이 실리면 다른 쪽에서는 부담스러워 한다. 그렇다보니 이렇다 할 연구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

따라서 융합은 오히려 젊은이들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더 실질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행동도 젊은이들이 더 적극적이다. 융합은 실천에 무게를 둬야 한다. 젊은이들이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도록 관심을 보이고 지원한다면 융합을 실재화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신경호 KIST 국제교육협력본부장=융합은 나뉨을 전제로 생긴 것이다. 언제부턴가 전공이 나뉘고, 편이 갈렸다. 하지만, 인간은 원래 융합적이었다.

왜 오늘날 융합이 화두가 됐나? 우리는 인지를 통해 융합하면 무언가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을 목격했다. 또 마구 나누다보니, 새로운 성질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를 반대로 뒤집어, 융합해도 뭔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융합이 지닌 힘을 목격했다.

사람은 기술만으로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 인터넷 발달 자체는 기술 발달에 근거한 것이지만 이를 즐기는 데는 각종 문화적 요소가 개입됐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융합은 예컨대 청국장같은 것이다. 잘 발효되면 좋은 맛을 내지만, 잘못되면 부패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융합을 잘 발효시키는 일이다.

◇최양희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한국에서 융합은 ‘거품’이다. 2년 전만 해도 융합이란 말이 흔하지 않았다. 지금은 융합 타이틀을 단 대학 학과나 기구가 100곳을 넘는다. 이들이 융합 타이틀을 달고 무엇을 하나 보면, ‘융합이란 무엇인갗에 머물러 있다. 이는 더는 고민할 주제가 아니라고 본다.

주목할 내용은 ‘무엇을 해야 하는갗이다. 융합을 잘 실천하는 곳을 보면 ‘융합’ 타이틀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분야 전문가들도 “내가 융합 전문갚라고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융합을 통해 잘 이룩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인간·인류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지난주 서울대 내 융합 관련 기구들이 모여 ‘국제 융합 심포지엄’을 열었다. 여기서 ‘어떻게 하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라는 주제를 다뤘다. 차별을 줄이는 방법으로 융합이 제시됐다. 차별이 많은 세상에서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의 격차를 좁히는 데 융합이 큰 이바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융합이 잘된 결과물에는 외려 융합이 잘 드러나지 말아야 한다. 어설픈 융합은 속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구분할 수 있다. 이것이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영철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융합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뭔가 채워져 있다. 채우면 딱딱해진다. 새로운 내용을 수용하려면 속을 비워야 한다. 하지만, 딱딱해진 속은 쉽게 깰 수 없다. 결국,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예술은 예술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런 사고에도 전환이 필요하다. 기존 사고를 따라가려다 보면 2인자에 그친다. 고 백남준 선생은 이런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그는 애초 존재하지 않은 사각지대를 바라봐야 1인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예술의 죽음을 가져오는 관점에서 예술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회=최근 20~30년 동안 이뤄진 발전은 과거 2000~3000년의 그것에 버금간다고 본다. 이 발전에는 융합이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인류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 과학기술 발전이 많은 부분을 해결할테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필수조건은 되겠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사회규범·제도·인식 등과 함께 가야 하는 문제다.

따라서 학문에서 일상까지 모든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융합이 이뤄져야 한다. 융합이 대화의 장에서 화두로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만큼 융합이 대세가 아닌가 생각된다.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사회에서는 다양성 속의 전문성과 융합이 경쟁력이 될 것이다. 이제 가치 창조를 위해서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들 사이에 대화와 소통이 더욱 필요하다.

정리=

박창규기자 k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