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포커스]2010 융합문화 페스티벌

김현주 한독미디어대학원대학교 뉴미디어학부 교수의 작품 `혼재`. 증강인식 기술을 이용해 일정한 패턴을 컴퓨터가 인식, 디스플레이를 통해 분자의 구조를 보여준다.
김현주 한독미디어대학원대학교 뉴미디어학부 교수의 작품 `혼재`. 증강인식 기술을 이용해 일정한 패턴을 컴퓨터가 인식, 디스플레이를 통해 분자의 구조를 보여준다.

18일 ‘젊음의 거리’ 홍익대학교 앞. 흔히 ‘주차장 골목’이라고 불리는 KT&G 상상마당 부근 길에 빨간 색 컨테이너 박스들이 들어서 있다. 지난 16일부터 21일까지 설치되는 이 빨간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는 과학과 인문·예술의 만남이 한창 진행되는 중이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사장 정윤)이 주최하는 ‘2010 융합문화 페스티벌-과학과 인문·예술 5일간의 대화’ 현장이다.

과학과 인문·예술이 만나면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일들이 눈앞에 실제로 다가온다. 융합문화 페스티벌에서는 이러한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빨간색 컨테이너 박스 안에는 과학이 인문학과 예술 분야와 융합된 다양한 결과물이 전시됐다.

한독미디어대학원대학교 뉴미디어학부는 이번 페스티벌에 ‘나노과학과 앰비언트 컴퓨팅’이라는 주제로 전시관을 열었다. 여기에선 나노과학과 IT·예술이 만난 결과물을 볼 수 있다. 첫 번째 전시물은 증강현실 기술과 나노과학의 융합이다. 첫 번째는 나노과학과 IT가 합쳐진 것. 일정한 패턴이 인쇄된 주사위 모양의 정육면체를 카메라에 들이대면 컴퓨터가 그 패턴을 인식해 나노 분자 구조를 화면에 보여준다. 카페인 등 우리가 흔히 섭취하는 물질의 분자구조 형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또 나노 분자의 형태를 예술 조형물로 승화시킨 설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이 학부의 김현주 교수는 “나노 스케일의 미세한 차원이 육안으로 분별하고 체험할 수 있는 매크로한 세상과 통하는 차원과 섞이는 상황을 만들어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가노트에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에서 기존의 예술매체에 뉴미디어와 혼성을 통해 디지털이 가지는 공허함을 벗어나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승화하는 실험”이라고 적혀 있다.

장재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테크니컬 예술가 ‘가재발(본명 이진원)’이 뭉친 ‘태싯 그룹’은 ‘컨벡스 컴포저(convex composer)’라는 작품을 내놨다. 이는 ‘컨벡스 헐’이라는 좌표인식 소프트웨어 기술과 음악이 만난 것이다. 터치스크린 위 일정한 위치에 압력을 가하면, 그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음을 내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터치 포인트의 거리를 조정해 하나의 음정그룹이나 두 개 이상의 그룹도 생성될 수 있다. 관객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IT를 통해 만들어낸 ‘관객참여 예술’이다.

의과학과 예술의 만남도 있다. 인체의 내부를 관찰하는 데 널리 사용되는 엑스레이가 예술로 승화됐다. 정태섭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인체의 엑스레이 사진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처리해 감춰진 본질을 보여주는 ‘방사선 아트’ 개척자다. 3D로 만들어진 정 교수의 작품에선 뼈만 나오는, 조금은 흉물스러운 일반 엑스레이에는 없었던 생명감이 느껴진다. 의과학에서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아름다움의 영역이다.

이외에도 융합카페 전시부스에는 세계 민속 악기를 연주해 보며 관련된 기초 물리학의 원리를 터득할 수 있도록 한 대전대학교의 ‘다양한 세계악기에서 찾는 과학’, 3D 영상의 발전사를 볼 수 있는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의 ‘입체, 공간으로의 초대’ 등 이색적인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마련됐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안새미 씨(22)는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인문학과 과학의 만남은 김영식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의 강연으로 이뤄졌다. 김 교수는 17일 ‘역사상의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전통 사회를 지배해온 인문학인 유학과 과학이 어떻게 결합돼왔는지 설명했다.

그는 “오늘날 인문학과 과학은 흔히 상반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 역사상 또 본질상, 이같이 분리돼 있지 않았다”며 “우리나라 유학자들이 외우다시피 했던 유학 경전이나 주자학의 창시자인 주희에게서도 자세하고 전문적인 과학 지식에 대한 경귀와 발언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시경(詩經)’에는 동식물의 이름을 파악하고 종을 구분하는 것이 주제가 됐다. 또 흔히 중국의 역사만을 기술한 것으로 알려진 ‘정사(正史)’는 천문, 역법, 지리 등 분야가 포함해 해당 분야의 전문 과학지식 출전의 역할을 해왔다.

김 교수는 “과학기술 분야를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제외시킬 이유가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학은 예술, 그리고 인문학과 별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

정태섭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의 방사선 아트 작품.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인체의 모습을 X-레이 기술을 통해 새롭게 묘사했다.
정태섭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의 방사선 아트 작품.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인체의 모습을 X-레이 기술을 통해 새롭게 묘사했다.
정태섭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의 방사선 아트 작품을 한 관람객이 입체 안경을 통해 감상하고 있다.
정태섭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의 방사선 아트 작품을 한 관람객이 입체 안경을 통해 감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