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모 사립대학 산학협력단은 지난달 A기업과 150억원 규모의 산학협력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학교 측은 A사로부터 2억원 안팎의 돈만을 받았다. 기술가치 평가 상 150억원에 달하지만, 나머지 액수에 대해서는 상용 성공시 지불하는 일종의 러닝로열티 계약을 하자고 A사에서 요청했기 때문. 이 경우 상용화에 실패했을 경우뿐만 아니라 성공했다고 해도 A사에서 막대한 매출을 일으키지 않는 한 추가자금을 기대하기 힘들다. 사실상 2억원짜리 기술이전 계약을 한 셈이다. 학교 관계자도 “150억원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제로”라고 말했다.
21일 전자신문이 단독 입수한 한국공학한림원(회장 윤종용)의 ‘산학협력 활성화를 위한 지식재산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과 기업 간 산학협력 시 기업 측은 여전히 특허 소유권이나 이전 가격에 있어 ‘제 값’을 쳐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대학에 불리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대학들은 산업기술을 이전하기 위해 앞 다퉈 기술이전회사를 만들고 있으나, 이런 제 값을 인정하지 않는 관행 때문에 연구자나 기술지주회사가 수익을 올리기는 사실상 어려운 형편이다.
정부는 대학-기업 간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만든 ‘산학협력 공동계약 표준 가이드라인’은 대학 측의 요구는 묵살한 채 기업의 입장만 반영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대학 산학협력단장은 “표준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보이콧 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명문 사립 K대가 최근 한 기업과 맺은 산학협력 공동연구 계약서를 보면 이러한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계약서상에는 ‘모든 지식재산권은 갑(기업)과 을(대학)이 50대50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그 아래의 조항을 보면 기업과는 달리 대학이 자신의 지재권 지분을 타인에게 양도하고자 할 때는 ‘갑’이 우선 양수권을 가지게 되고 기업이 공동연구를 통해 개발한 결과를 사용하면서 필요할 때는 해당 산학협력 이전부터 대학이 보유했던 지식재산권의 사용권도 가질 수 있다는 내용의 ‘선행기술 사용’ 조항도 버젓이 포함돼 있다. 이 조항은 대학가에서 대표적인 산학협력 독소조항으로 지적돼 온 내용이다.
대학의 연구 성과로 기업이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서도 ‘갑’의 입장인 기업의 입맛대로다. K대의 계약서 경우에도 ‘갑이 을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할 수 있다’고 돼 있을 뿐, 수익의 일정 비율 지급 등의 의무조항은 전혀 없다. 기업의 의지에 따라 돈은 줄 수도 안줄 수도 있는 상황으로, 대부분이 어려운 여건을 들며 무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대 연구처장을 지냈던 한 교수는 “다른 학교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며 서울 소재 주요 대학보다 협상력이 낮은 대학들은 연구비 수주에 급급해 제대로 된 기술가치 평가도 없이 헐값에 이전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혁기 지식경제부 산업기술시장과장은 “정부로선 최선을 다한 중재안이고 협상력이 부족한 일부 대학들에선 환영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공학한림원은 보고서를 통해 “기업이 사내 연구소에서 만든 특허와 용역비를 제공한 대학에서 만든 특허에 대한 소유권을 동일하게 인식하는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특허 소유권은 기술개발자가 가지도록 해 대학의 R&D 동기부여를 높이는 동시에 사용권과 우선 구매권을 기업이 가지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