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을 만날 때 빠지지 않는 화두는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제품이었다. 최근에도 여전히 스티브 잡스는 화제에서 잊혀지는 법이 없다. 회의를 위해 아이패드를 꺼내놓으면 마치 기자회견처럼 여기저기서 질문이 쇄도한다.
하지만 요즘 스티브 잡스 혁명 말고도 반드시 빠지지 않는 단골 질문이 있다. 만나는 지식인들의 분야는 모두 다양하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교양교육의 획기적 강화 시도에 대해서 반드시 묻곤 한다. 최근 경희대가 후마니타스 칼리지라는 교양교육 전담 기관을 만들고 나아가 사이버대와의 연계, 융합을 통해 미래 대학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은 대학이 인간과 문명과 좋은 삶의 의미에 대해 본격적으로 가르치고자 한다는 신문 기사들을 접하고 나서 다소 놀라웠던 모양이다. 세상에, 한국에서는 큰 배움이란 뜻을 가진 `대학`이 당연히 큰 배움을 시도하겠다는 상식이 오히려 충격적인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의 공통된 질문을 자주 접하면서 내가 체감하는 느낌은 마치 김예슬이란 학생이 대학 거부 선언을 했을 때와 유사하다. 그 당시 일개 학생의 대자보가 당일 주요 뉴스의 이슈로 등장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단순한 직업교육기관을 넘어 큰 배움을 지향하는 대학다운 대학에 대한 본질적 요구에 목이 말라한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스티브 잡스의 혁명, 김예슬 대학 거부 선언, 경희대의 교양 교육 운동은 한국 사회의 대전환기가 시작되었음을 시사한다. 요즘 만나보는 경제 전문가들은 이제 드디어 그간 한국 경제의 양적 성장과 선진국 추격 모델이 완전한 한계에 봉착했다고 입을 모아 경고하고 있다. 새로운 창조산업의 상징인 스티브 잡스 혁명은 그런 점에서 우리 어깨에 떨어지는 죽비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의 발명이 아니라 보다 인간다운 사회에 대한 창조적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김예슬 선언이 상징하듯이 한국의 많은 온오프라인 대학들은 기업들의 단기적 요구나 표피적 평가 지표에는 민감하지만 큰 배움, 큰 상상력의 기관으로서의 화두에는 너무도 둔감하다. 최근 경희대와 사이버대의 새로운 운동에 지식인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런 점에서 반가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스티브 잡스 혁명, 김예슬 대학 거부 선언, 경희대 교양운동은 하나의 현상인 것이다.
전 국민이 가슴 졸이고 하늘의 비행기 이륙마저 협조하는 한국 대학 입시 날이면 당일 저녁에는 시험 문제 해설 시간이 등장한다. 언제나 문제 해설을 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그 중에는 단순히 누가 더 많이 외우는 가의 기계적 경쟁에 불과한 문제들도 많기 때문이다. 마치 프랑스처럼 우리도 좋은 삶과 행복의 의미에 대해 철학적 화두를 내고 그 문제를 전 시민이 누구나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자기 의견을 내는 문화를 가질 수는 없을까? 그러려면 시민들은 저마다 고등학교나 대학시절, 혹은 지금 대학 재직 중에 인간과 삶의 체취가 배인 교양교육의 즐거움을 만끽해야 할 것이다. 큰 배움이 없는 곳에서는 결코 선진국의 국격을 갖출 수 없는 법이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학교 입학관리처장 nsfsr@khc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