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대항해시대]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

[벤처대항해시대]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

경제 성장률을 높이고, 질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세계 각국 정부들이 ‘스핀오프 스타트업(Start-Up)’ 기업 활성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은 공공기관 출신 연구원이 연구 성과의 사업화를 위해 회사를 창업하거나 대기업에서 특정 사업부를 떼서 분사한 기업 등을 지칭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IT의 폭발적 성장과 벤처붐의 확산으로 대기업 및 중소기업 창업, 연구소 창업, 대학 실험실 창업 등 다양한 형태의 스핀오프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은 오래전부터 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 활성화가 경제의 질적 성장을 촉진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오바마 정부는 공공연구소가 보유한 지식의 사업화를 관련 정책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우리 정부도 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 육성이 IT산업은 물론이고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준다는 인식을 가지고 최근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 기업 출신 스핀오프 창업 많아=중소기업청·중소기업연구원 등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선진국에서는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스핀오프 창업한 경우가 많은 반면에 국내는 대기업 및 중소기업에서 스핀오프한 사례가 많았다. 국내 벤처의 역사가 비교적 짧고,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개발 사업화 추진 노력이 비교적 최근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또 IT 분야의 대기업 및 중소기업, 연구소 등에서 스핀오프한 기업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IT 분야의 창업은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이전 조직에서의 지속적인 연구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개발 결과를 사업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향후 연구소 스핀오프 기업 비중도 서서히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출발에서 유리한 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은 일반 벤처기업보다 여러 면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우선 제품 및 서비스를 가지고 쉽게 시장에 진입하는 편이다. 창업 멤버 대부분이 제품 및 서비스 개발에 참여한 경험이 있고, 기술·정보·자금 등도 이전 조직에서 쉽게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설 및 장비를 이전 조직에서 조달할 수 있고, 제품 판로도 어느 정도 안정돼 있는 점은 엄청난 강점이다.

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은 특히 일반 벤처기업에 비해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에 따라 초기 단계에서 전략 수립 및 성과를 내는 데도 비교적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를 들어 삼성전기에서 분사한 아이엠, 파트론, 에스맥 등 부품업체는 빠른 시간 안에 시장에 안착했다. 특히 아이엠은 스핀오프 2년 만에 DVD용 광픽업 모듈 부문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또 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은 내부자원 동원, 독점적인 지식, 마케팅 능력 등에서 강점을 보인다. 이전 조직과 기술을 활용한 전략적 제휴를 맺을 수 있고, 공동으로 기술개발 프로젝트 등을 추진할 수도 있다.

◇경험 많은 노련한 경영자가 이끄는 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일반적으로 벤처기업 최고 경영자들은 젊은 층이 많다. 특히 2000년 초반 인터넷 관련 닷컴기업은 20·30대 창업자가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은 40대 이상의 연령층이 높은 최고 경영자가 많다. 이전 조직에서 연구개발 및 영업 부문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최고 경영자들은 성공 가능성이 크다.

부품업계에서는 김종구 파트론 사장, 손을재 아이엠 사장, 이성철 에스맥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김종구 사장은 삼성전자, 삼성전기를 거치며 연구개발 및 관리 지식을 익혔다. 카메라모듈, 휴대폰 안테나 등 사업에 의존했던 파트론이 업계에서 신속하고 과감한 인수합병(M&A)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김종구 사장의 역량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손을재 아이엠 사장은 삼성물산, 삼성전기 등을 거치면서 해외 영업은 물론이고 관리 업무에 정통한 인물이다. 특히 삼성전기에서 꼴등 사업부를 2년 만에 1등 사업부로 변신시킨 업적은 전설로 전해진다. 아이엠이 빠른 시간 안에 대표적인 강소기업으로 성장한 것도 손 사장의 뚝심 있는 경영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성철 에스맥 사장은 싱가포르 해외 법인장 등을 역임하면서 자신만의 경영 스타일을 확고히 해 왔다. 에스맥이 사양 산업에 접어든 키패드 사업을 축소하고, 신사업인 터치스크린을 성공적으로 육성한 것도 이성철 사장의 직관이 큰 작용을 했다.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원으로 창업하는 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2006년 과학기술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의 평균 연구개발 인력 수는 개인창업 벤처기업보다 49%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반 벤처기업이 기술력을 중심으로 창업하는 것에 비해 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은 비즈니스 모델을 통한 수익창출을 기반으로 창업하기 때문이다.

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의 자체 연구개발 비중은 51.4%로 개인창업 벤처기업 42.1%보다 높게 나타났다. 산업재산권 부문도 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이 일반 벤처기업보다 훨씬 더 많은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다. 특허권은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 및 비용이 투자되기 때문에 규모, 기술개발 활동 등에서 앞선 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이 유리한 셈이다. 또 스핀오프 기업은 창업 전부터 이전 조직에서 기술과 관련된 권리를 미리 준비하기 때문에 일반 벤처기업보다 능동적이다.

재무 및 조직 부문에서는 자본금·매출·당기순이익 규모에서 스핀오프 기업이 일반 벤처기업보다 두 배 이상 규모가 크다. 스핀오프 기업은 이전 조직을 통한 자금조달, 확실한 매출처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 단순한 하도급업체로 전락할 수도 있어=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이 지나치게 이전 조직에 의존하면, 단순한 하도급업체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전 조직의 도움으로 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고, 인력 확보도 유리한 조건에서 시작하지만 이런 장점들이 어느 순간 ‘독’이 될 수가 있다. 실제로 스핀오프 이후 스스로 판로 개척을 하지 못하고 자생력을 확보하지 못해 도산하는 벤처기업도 많다. 또 시간이 지나면 이전 조직과의 관계가 약해지고, 경쟁자의 입장에서 시장에서 부딪힐 수도 있기 때문에 자생력 확보는 필수다.

스핀오프한 스타트업 기업은 초기 단계를 벗어나게 되면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시장 개척에 나서야 한다. 또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각종 자원을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도록 업계 내에서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인터뷰> 손을재 아이엠 사장

“대기업에서 스핀오프한 기업은 스스로 ‘스타트업 기업’이라는 자의식이 굉장히 약합니다. 핵심 인력들이 이전 조직에서 오기 때문에 기업 문화도 이전 대기업 조직의 성향이 많이 남아 있죠. 이것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게 최고경영자의 역할입니다.”

손을재 아이엠 사장(58)은 스핀오프 스타트업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수용하고 창의적인 기업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죽을 벗겨내고 새롭게 하는 고통스러운 ‘혁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자율적으로 일하는 분위기에 익숙지 않아요. 물론 나도 처음 일을 배울 때 철저한 ‘상명하복’을 요구받았습니다. 그래서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죠. 이제는 과거와 같은 방법으로 성공할 수 없어요. 스타트업 기업은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인재가 만들어 가는 회사입니다.”

아이엠은 삼성전기에서 분사한 지 2년 만에 DVD용 광 픽업 모듈 세계시장을 석권한 기업이다. 일부 사람들은 아이엠의 이런 성과를 평가절하하기도 하지만, 한 분야에서 세계 1등으로 올라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손 사장은 아이엠 창업 이후 몇 년 동안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삼성에서 임원으로 있을 때는 많은 부하 직원이 그를 대신해 경쟁사들의 전략 및 동향, 신제품 흐름을 분석해 보고했다. 그러나 중소기업에서는 그 스스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정보를 분석하고, 사업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살얼음판에 발을 내디디는 심정으로 빠른 의사결정을 내렸다.

“대기업 임원으로 있을 때 대접받던 부분들은 전부 잊었어요. 고객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경쟁업체를 분석했지요. 대기업과 비교하면 부족한 자원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직원들과 한마음으로 뛰어다니고 있어요. 오늘도 나 스스로의 자만심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 용어설명 : 스핀오프(spin off)

회사 분할의 한 방법이다. 스핀오프란 분할회사가 현물 출자 등의 방법을 통해 자회사를 신설하고, 취득한 주식을 모회사의 주주에게 배분하는 것을 말한다. 유사한 용어로 스플릿 오프(split-off)와 스플릿 업(split-up) 등이 있는데, 스핀 오프를 약간 변형한 것이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원이 자신이 참여한 연구결과로 창업을 할 때 정부보유의 기술을 사용한 데 따른 사용료를 면제하고, 성공 후 신기술연구기금 출연을 의무화하는 제도 등으로 정부는 스핀오프를 장려하고 있다. 기업체 연구원이 내부기술을 바탕으로 사내 창업을 하게 되면 모기업에 출자를 완화해주고 세제 혜택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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