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랜드에 위치한 미국국립보건원(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입구에서 가장 먼저 일행을 맞은 것은 삼엄한 검문이다. 정문 경비원들이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타고 온 차량에서 일행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했다. 타고 온 차량까지 들춰가며 수색을 하는 모습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의학·바이오 연구센터의 긴장감이 엿보였다.
하지만 정문을 통과하자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마치 대학 캠퍼스와 같은 분위기다. 규모만큼은 언뜻 보기에도 거대했다. 무려 75개 빌딩으로 이뤄진 NIH는 27개 독립연구소를 거느린다. 이곳에 근무하는 연구자만 1만8000여명에 달한다.
◇세계 바이오 기초기술 선도=NIH가 사용하는 예산은 막대하다. 연간 31조원의 예산을 바이오 기초기술 개발에 투입한다. 이 가운데 83% 이상이 연구소 밖의 대학교, 의대, 연구소 등에 종사하는 32만명의 연구자에게 지원된다. NIH가 미국은 물론 세계 바이오 분야 기초연구를 선도한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연구소의 바이오실험과 채용, 심지어 대학의 커리큘럼까지 NIH가 모델이 된다.
최근 한국의 차바이오앤디오스텍의 미국 현지 자회사 스템인터내셔널이 인공혈액 개발 관련 연구비로 약 23억원을 지원받은 곳도 바로 NIH다.
자체 바이오 기초기술 분야 개발에도 독보적이다.
NIH내 국립인간게놈연구소에 근무하는 명경재 박사는 “실제로 미국 국민이 원하는 것은 임상실험까지 가능한 연구였음에도 불구하고 NIH는 이 같은 외부압력에도 굴하지 않았다”며 “이것이 NIH의 바이오 기초기술 수준을 여기까지 끌어올린 원동력”라고 말했다.
이를 대변하듯 지금까지 NIH의 지원을 받은 130명 이상의 연구자가 노벨 과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NIH에서 연구 중인 한인 과학자는 약 300명이다. 이 가운데 강창수 박사는 말더듬이가 유전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발견, 세계 과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기초기술 연구의 두 축=국립암연구소(NCI)와 국립인간게놈연구소(NHGRI)는 NIH의 27개 연구소 가운데 기초기술 연구를 주도하는 대표주자다.
1937년 설립된 NCI는 연구소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각종 암치료 연구에 연인원 5000여명이 참여하며 세계 650개 대학, 병원, 연구소 등과 공동연구도 진행 중이다. NCI소속 박정현 박사는 “암연구소는 국회 발의로 만들어졌는데 이곳 소장은 대통령이 임명할 정도로 조직의 중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NCI는 암을 정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구소로 단순히 연구에 그치지 말고 치료용으로 연구결과를 확대하라는 압박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 치료용 보다는 기초기술과 고위험 연구를 진행하라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고 박 박사는 설명했다.
국립인간게놈연구소는 지난 1998년부터 국제 공동프로젝트로 시작된 ‘인간게놈프로젝트’로 잘 알려진 연구소다. 지난 2001년 인간유전자지도를 완성시킨 게놈프로젝트에는 세계 15개국, 350여개 연구기관이 참여하기도 했다.
◇엄격한 윤리 요구=“상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15000원짜리 음반을 주려했는데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NIH 내부기준으로 1100원(10달러) 이상의 물건은 주고받아서는 안된다는 조항 때문이다.
심지어 학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서 제공되는 음료나 주류의 가격이 20달러 이상이면 참석을 하더라도 음료를 마시지 말거나 아예 참석을 포기하라고 할 정도다. 연구자가 다른 기관에 편지를 쓰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명경재 박사는 “NIH가 보건정책이나 예산과 관련된 결정권을 가졌기 때문에 산업체나 기업 연구원이 연루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동시에 순수하게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메릴랜드(미국)=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