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제계 최대 화두는 단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이다. 단순히 상생 수준이 아니라 함께 공동 발전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대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하게 중소벤처가 있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중소벤처도 대기업의 방향에 맞춰 함께 성장해 나가자는 것이다. 이들 둘의 매개체로 언급되는 것이 ‘기술’이다. 기술이 복잡하게 융복합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이 모든 기술을 직접 개발할 수는 없다. 중소기업도 동일하다. 한두개 핵심 기술만 갖고 있다고 제품이 나올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다른 기업이 보유한 기술과 함께 융·복합해야 시너지가 나고 상용화가 가능해진다. ‘오픈 이노베이션’이 산업계에서 화두인 이유다. 이처럼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 간 기술교류가 활기를 띠면서 기술 유출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전자신문은 중소기업청·대중소기업협력재단과 공동으로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이 서로 믿고 기술을 공유하기 위해 정부가 마련한 기술임치제에 대해 2회에 걸쳐 소개한다.
#기술벤처회사 A사는 지난해 실적이 전년 대비 50% 급락했다. 이는 2008년 A사 소속 연구소장을 포함 직원 몇명이 동종업계 B회사로 옮겨가면서 나타났다. 이들은 단순히 이직을 한 것이 아니라 A사의 기술을 B회사로 유출했다. 당시 A사는 인터넷 관리 기술을 대기업과 공동으로 개발해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 시점. 그 상황에 A사가 개발한 기술과 동일한 서비스가 시중에 나타났다. A사는 부랴부랴 이를 막기 위해 소송에 들어갔지만 이를 입증할 수가 없었다. 직원들이 이직 직전 개발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내용을 이미 삭제한 것이다. A사는 소송에서 패소하고 말았다.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이 공개한 사례로 이는 기술이 사실상 회사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기술벤처기업 모두에서 발생할 수 있다. 상당수 벤처기업들은 유사한 기술 유출 위험에 노출돼 있다. 적지 않은 기술벤처기업이 핵심 기술개발자의 이직을 언제나 우려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들이 이직하고 기술을 빼갔을 경우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CEO 입장에서는 언제나 노심초사하면서 때론 핵심 기술자에 끌려다니는 형국인 경우도 허다하다.
◇증가하는 기술 유출=기술 유출 사례는 실제로 상당히 많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국가정보원이 적발한 전체 기술 유출 건수는 106건, 253조원에 달한다. 이중 중소기업에 의해 발생한 것이 전체의 3분의 2에 육박하는 102건. 2004년 17건에서 2005년과 2006년에는 각각 20건으로 늘었으며 이후에도 2007년 21건, 2008년 24건 등 소폭이나마 꾸준히 증가 추세다.
기업이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는 사건 자체를 막아야 하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보유 기술을 소유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지난 2002년 모 IT부품업체 임원은 회사에 불만을 품고 경쟁회사로 옮겨가면서 기술 자료를 함께 가져갔다. 이에 회사는 소송을 걸었고, 오랜 시간이 소요됐지만 개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 승소했다.
◇기술 보호 지원책, 기술임치제=대부분이 영세한 중소벤처기업은 기술 보유를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정부가 추천하는 지원책이 바로 ‘기술임치제’다. 중소기업청과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이 공동으로 펼치고 있는 사업이다. 골자는 기업의 영업비밀인 ‘핵심 기술’을 정부가 공인한 특정 장소인 대·중소기업협력재단에 보관해 보호와 동시에 유출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막는다. 2008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제도는 영업비밀의 보호, 대·중소기업 기술거래 시 발생할 수 있는 기술 유출 방지 그리고 대기업 입장에서는 협력 중소벤처기업의 파산·폐업 등으로 인해 유지보수 불가 시 대체 등 여러가지 목적으로 활용된다. 상당수 기업들이 회사의 사활이 걸려 있는 기술에 대해 특허 출원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영업비밀이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임치제는 유출을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비록 특허 등록을 하지 않았지만, 영업비밀이 유출됐을 경우 보관된 기술자료(임치물)를 통해 해당 기술의 개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협력관계로 우월적 지위를 악용하려는 대기업으로부터 회사 기술의 유출을 막는 효과도 있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 상당수는 납품거래 시 핵심기술 유출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으며 실제로 유출 경험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기술임치제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납품과정에서 기술정보가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를 막을 수 있다.
기술을 이전받거나 사용권을 얻은 기업도 이 기술임치제 이용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원 소유권자가 파산·폐업·부도 등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 경우 이전 받은 기업은 기술자료를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기술의 지속적 사용을 막는다. 양측이 서로 협의해 기술을 임치하면 이 같은 불가피한 경우에도 사용업체는 기술자료를 확보해 지속적으로 사업을 펼칠 수 있다. 현재 재단에서는 시설 및 제품의 설계도, 물품의 생산·제조방법, 물질의 배합방법, 연구개발보고서 및 데이터, SW 소스코드 및 디지털콘텐츠 등 기술정보와 함께 회사의 전략 등 중요 계획, 관리정보, 고객 데이터, 매뉴얼 등 경영상 정보도 임치대상물로 두고 있다.
◇기술임치 계약 신청=제도 활용은 두 가지 방식이 가능하다.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 핵심 영업비밀을 재단에 임치하고 향후 여러 기업과 계약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다자간 임치계약과 수·위탁거래 간 라이선스 계약 시 개발기업과 사용 기업이 협의해 이용하는 삼자간 임치계약이다.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다자간 임치계약이 적합하고 사용기업이 한 곳인 기술의 경우 삼자간 임치계약이 적합하다.
이용절차는 임치계약 신청 시 사업을 담당하는 대·중소기업협력재단측에서 동일성 등 임치물에 대한 검증작업과 함께 신청업체가 보는 가운데 임치물을 봉인해 각각 독립된 임치금고에 보관한다. 만약 폐업 등으로 공동으로 자료 임치를 요청한 곳에서 임치물을 보고자 할 경우 열람 등 사용할 수가 있다.
현재 기술임치제 이용 건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시범운영한 2008년 26건에 불과했으나 지난해는 누적기준으로 146건으로 급증했고, 올해 11월22일 현재 430건에 달했다. 연말에는 500건 돌파가 예상되며 내년에는 1500건에 다다를 것으로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측은 기대하고 있다.
안병화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사무총장은 “기술자료 임치제도는 기업의 핵심 기술인 영업비밀을 보호할 수 있는 장캇라며 “내부 직원 또는 산업스파이 등에 의해 자료가 유출돼도 임치물을 통해 기술 보유 여부를 입증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박스> 법제화로 기술임치제 실효성 강화
기술임치제는 25일 통과 예정인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 개정안으로 실효성이 더욱 강화된다. 개정안에는 임치제의 한계와 미비점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대표적으로 추정력 부여를 꼽을 수 있다. 임치된 기술자료에 대해 추정력을 부여함으로써 기술 소유권 및 개발 시기 등에 대해 법적 효력을 명백히 하고, 제도를 부당하게 이용하는 자 등에 대해 처벌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추정력이란 반대증거가 없는 한 법률상 사실을 정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 권리로, 기술임치 제도 이용기업은 임치 기술에 대한 분쟁발생시 추정효과를 통해 해당 기술에 대한 충분한 권한과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 제도를 이용하는 기업들이 법률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단독임치 근거도 마련됐다. 중소기업이 대기업 납품 직전단계에서 단독으로 기술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다자간 임치계약에 대한 법적근거를 확보했다.
담당자의 관리 강화 및 벌칙 강화 내용도 주목된다. 제도의 신뢰성을 높이는 것으로 임치제 운영자에 의한 기술유출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담당자의 선관주의 의무를 부여했다. 또한 타인의 기술자료를 자기 소유로 만들기 위해 허위로 임치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벌칙조항을 마련했으며, 담당자 비밀유지 의무를 이반했을 경우 징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 임치물 교부근거를 둬, 조건이 발생시 임치기관이 교부조건 부합여부를 확인하고 사용기업에 임치물을 교부할 수 있는 법적근거를 확보했다.
기술자료임치제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권성동 의원은 제안 이유에서 “현재의 기술자료 임치제도가 단순히 수·위탁 거래만을 전제함으로써 다자간 거래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는 수·위탁거래의 현실에 부합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수·위탁거래 관계에 있지 않은 중소기업의 핵심기술에 대하여도 법적보호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임치된 기술자료에 대한 법적 효력을 명백히 하고 이 제도를 부당하게 이용하는 자 등에 대한 처벌규정을 도입함으로서, 신뢰성을 높이고 중소기업 경쟁력의 핵심인 기술을 실효성 있게 보호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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