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中企 기술유출 / 전문가 좌담회<끝>

‘중소기업 기술 유출, 해법을 찾아라.’

힘겹게 개발한 첨단 기술을 도둑맞으면서 우리나라 경쟁력의 원천이 돼야 할 중소기업이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대기업이 대·중소 협력을 미끼로 접근한 뒤 유사한 기술로 특허를 내는가 하면, 내부 인력이 이직하며 사내 기밀을 유출해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기술유출 사고가 빈발하면서 정부는 물론이고 국회도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 기술유출 지원을 위한 정부 예산은 여전히 후순위로 밀려 있다. 중소기업의 피부에 와 닿는 정책 개발과 제도 개선도 시급하다.

전자신문은 그간 3회에 걸쳐 긴급 점검해온 중소기업 기술유출 시리즈를 결산하며 전문가 좌담회를 마련했다. 정부와 학계, 업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댄 이번 좌담회에서는 중소기업 기술 유출의 심각성을 재차 확인했다. 또 열악한 중소기업의 정보보호 인프라를 보강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내실 있는 지원이 지속돼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즉석에서 심도 깊은 정책 제안이 펼치기도 했다. 좌담회 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참석자

△김태일 중소기업청 기술혁신국장

△안병화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사무총장

△조성봉 산업기술보호협회 부회장

△김정덕 중앙대학교 교수

△권형석 율목 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정진환 진일패키지뱅크 대표이사

사회 장지영 전자신문 컨버전스팀장

◇사회(장지영 차장)=최근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기술 경쟁력은 급상승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표적이 되고 있다. 기술유출 기법도 갈수록 지능화하는 양상이다. 먼저 심각한 중소기업의 기술유출 현황과 정부의 지원책을 짚어보자.

◇김태일 국장=국가정보원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전체 기술 유출건수 160건이다. 피해 금액으로 따지면 253조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102건이 중소기업의 피해 사례였다. 또 다른 조사결과를 보면 최근 3년간 기술정보 유출 경험이 있다고 한 중소기업은 14.7%나 됐다. 이 중 48%가 2회 이상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한 건당 평균 10억2500만여원이었으며 이는 매출액의 9% 수준이다. 반면에 중기청이 진행한 보안역량평가를 보면, 중소기업의 보안 수준은 대기업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의 산업보안 역량 수준은 47점으로 대기업 80.1점의 58.7% 수준에 불과했다.

중소기업청은 이 때문에 그동안 기술유출방지사업과 기술보호상담센터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기술보호를 위한 대책을 펼쳐왔다. 또 기술자료 임치센터도 운영해왔다. 특히 올해에는 1억7800만원에 불과한 예산에도 기술료 20억원을 배정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또 경찰청과의 양해각서(MOU) 교환을 시작으로 유관부처와의 정책 연계를 통해 중소기업 기술보호 정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사회=중소기업 기술유출 지원사업 가운데 기술 임치제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안병화 사무총장=맞다. 2007년에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 4곳 중 1곳은 대기업으로부터 기술 탈취를 경험한 사례가 있었다. 응답자들은 대기업에서 기술을 달라고 요구하면 안 줄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를 해결할 방안을 찾기 위해 해외 사례를 조사한 결과 기술 임치제(에스크로)가 미국, 영국에서 활성화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미국 아이언마운틴의 경우 1970년대 초반 이후 제도를 시작한 이후 5만건가량을 유치했다. 우리도 이를 벤치마킹한 제도를 지난해 1월 본격 도입했고 올해 도입 2년차를 맞아 총 500건 정도를 임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아직 중소기업에 홍보가 잘 안 돼 있어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향후에는 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특히 중기청에서 지원하는 연구개발과제를 수주한 기업들은 의무적으로 기술임치를 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적은 비용으로 지식재산권을 보장받을 수 있어 참여가 늘 것으로 본다. 기술임치제는 기술유출 분쟁 시 기술을 임치해놓으면 선행기술을 개발한 근거가 될 수 있어 특허를 등록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김정덕 교수=선진국에서 기술임치제가 활성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를 민간 자율에만 맡긴 게 아니라 정부기관에서도 이를 유도한 측면도 있다. 우리도 민간 부문에서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거래할 때 금전적인 혜택 등 인센티브를 적극 제공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른바 ‘푸시 앤드 풀(Push & Pull)’로 정부 조달에 등록할 때 임치조건을 강제화하는 게 푸시전략이라면 인센티브로 풀하는 전략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제도 활성화를 위해 홍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점에도 공감한다.

◇김태일=특허에 비해 기술 임치가 유용하다는 것을 중소기업들이 잘 모르는 게 안타깝다. 특허는 자기 기술을 노출해야 하지만, 임치제를 활용하면 기업의 노하우를 노출 하지 않아도 된다. 지재권을 보호하면서도 기업 비밀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사회=내년부터 중소기업을 위한 보안관제 사업이 처음 시행된다. 이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조성봉 부회장=정보보호 예산을 따로 수립할 수 없는 중소기업을 위한 보안관제시스템 사업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협회는 중기청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향후 4년간 전국 5000여개 중소기업에 보안관제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보안클리닉, 방화벽, DDoS 관제 서비스 등 침해사고 예방과 모니터링 관제서비스, IDS 관제, 웹해킹 관제 등 탐지 및 전파 업무와 현장 대응팀을 운영해 입체적인 정보보호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미 관제센터 구축을 위한 200평가량의 공간도 마련했고, 국정원 등 유관기관과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또 산업보안학회 소속 교수진 70명과 전문인력 양성사업을 통해 배출 중인 산업보안관리사 인력 풀도 확보했고, 보안 전문 회원사 등을 활용해 유사시 신속한 대응체계도 이미 구축한 상황이다. 미국산업보안협회(ASIS)와도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정진환 대표=정부에서 중소기업을 위해 이 같은 정책을 실행하는 것을 참 고맙게 생각한다. 오늘 처음 알게 된 임치제를 미리 알았으면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우리는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4건가량 실제로 기술 유출 피해를 봤다. 어렵게 기술 개발하면, 기술을 빼앗으려 하는데 그 방식이 놀랍다. 기술을 주지 않으면 단가를 후려치는 곳도 있고 어떤 기업은 우리가 낸 특허와 유사한 특허를 내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우리가 못 쓰게 된 상황이 온 것이다. 사실 중소기업들은 기술개발에 여력을 쏟기에도 빠듯하다. 그 외 법률적 문제는 신경 쓸 여지가 없다. 정부에서 중소기업들의 기술 유출을 막아주면, 보다 안정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이사한 뒤 전입신고해서 확정일자를 받는 것처럼 우리 기술에 대한 공인이 절실히 필요하다.

◇권형석 변리사=실제로 현장에서 기업인들을 만나보면, 안타까운 사례가 적지 않다. 영업비밀을 지키기 위한 법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영업비밀이라고 입증하는 데 중소기업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관련법이 규정한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되었느냐’다. 판례를 보면 피해자는 얼마나 객관적으로 비밀 유지·관리 의무를 다했는지를 따진다. 따라서 향후 분쟁 시 이를 입증할 객관적인 근거를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 중소기업들은 정보에 접근한 자에게 비밀준수 의무를 부과하는 계약서(납품계약서, 기술개발 계약서 등)를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 물론 실제 발주 기업들은 원청 또는 하도급기업과 거래할 때 이 같은 계약서 작성 자체를 회피하거나,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정부 차원에서 표준계약서 같은 것을 만들어 이를 이용하도록 권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한편 기업 특허를 유지하는 데 기술임치제를 활용하는 방법도 생각해봐야 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편취해서 자기가 특허를 등록하는 경우가 있다. 기술임치제로 이 기술이 내가 만든 것이라는 것을 증명한 이후 특허심판에서 대기업의 기술과 내 기술이 동일하다는 것을 밝혀낸다면 승소할 확률이 월등히 높아진다. 현재 특허무효심판의 원고 승소율은 25% 수준에 불과하다.

◇사회=표준계약서 같은 것은 약자인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방안은 없는가.

◇김정덕=내부자에 의한 정보유출이 많은데 이는 일종의 관리의 문제다. 기술유출방지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시스템 운용하려면 역량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보안은 사람에 대한 이슈다. 중소기업에 보안전담 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게 쉽지 않다면 중소기업을 위한 표준 보안관리 지침이라도 개발해야 한다. 영국은 실제 중소기업을 위한 보안관리 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국제 표준화작업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아는데 우리도 한국형 기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안병화=권형석 변리사의 의견에 적극 동의한다. 특허로 기술이 공개되기 이전에 대기업이 기술을 탈취해 특허까지 내는 황당한 상황을 없애야 한다. 특허 취득 이전에 기술임치를 통해 출연력을 인정받으면 지재권을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성봉=기술임치제와 마찬가지로 내년 처음 시작되는 중소기업 보안관제 사업도 홍보가 중요하다. 좋은 제도도 이용하지 않으면 효과가 적을 수밖에 없다.

◇권형석=장기적으로는 기술임치제 이용 금액을 낮추는 방법도 정부에서 고민해봐야 한다. 임치건수가 많아지면, 정부에서도 규모의 경제효과를 실현해 보다 이용 금액을 낮출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김태일=표준계약서 문제와 중기 보안관리지침 만드는 것은 아주 좋은 방안이다. 내년에 영국 사례 등을 참조해 정책화하겠다.

현재 기술보호 상담센터를 운영 중인데, 센터의 기능을 확대하는 방안도 기술보호 상담센터 운영 중인데, 기능을 좀 더 확대해 중소기업들의 고민해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게 하겠다. 중기 기술 혁신 촉진법 내에 기술임치와 기술보안 조항을 신설하는 등 제도적인 부분도 개선하겠다.

다만 예산 문제에 대해 애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재부와 적극적으로 협의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는 내년에 30억원 예산으로 60개 기업에 보안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안을 올렸는데, 이에 대해 전체 4만개 기업 중 60개에 지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이 때문에 클라우드 컴퓨팅 방식 등을 활용해 여러명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 등도 다각적으로 고민 중이다.

◇사회=전자신문도 중소기업 기술 유출 문제를 항상 관심 깊게 다루겠다. 오늘 좌담회에서 나온 좋은 방안들이 정부 정책에 적극 반영돼 많은 중소기업들이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다. 장시간 감사하다.

정리=

정진욱기자 coolj@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