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이나 현장 인력 ‘조로(早老) 현상’이 국내 부품·소재 산업 경쟁력을 가로막고 있다.
부품·소재 연구는 세트에 비해 오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한 연구인력이나 숙련공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 업체들은 지나치게 빠른 ‘라이프 사이클’로 전문 인력을 운용하고 있어 전문 인력난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이 부품·소재 인력 부족을 한탄하기에 앞서 기존 전문 인력을 장기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8일 전자신무니 삼성, LG 등 대기업 계열 부품·소재 기업 7곳에 직접 확인한 결과, 40대 이상 연구원이 행정·인력관리를 겸직하지 않고 실질적 연구개발에만 투입된다고 답변한 회사는 한 곳도 없었다. 대다수 연구원들이 30대 후반에 접어들면 관리직으로 전환되거나, 전혀 다른 일을 하는 부서로 이전했다. 아예 타업체로 전직하는 경우가 있었다.
대기업 부품 전문 연구위원 A씨는 “30대 중반에 접어들면 승진을 위해 관리 업무에 신경쓰기 시작하면서 연구를 조금씩 멀리하게 된다”면서 “일본에서는 나이든 연구원 및 엔지니어를 장인으로 대접하며 전문성을 강화하는데 우리는 역주행하고 있다는 느낌이다”라고 토로했다.
기업들이 부품·소재 전문가가 부족하다고 한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연구원 및 현장 인력을 ‘조로(早老)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문인력 조로 현상은 정부의 부품·소재 인력양성 지원책 효과성도 저하시킨다. 최근 지식경제부는 화학, 재료, 금속 등 소재 관련 학과를 중심으로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지원책을 마련했다. 기업과 대학이 협력해 ‘맞춤형 계약학과’를 설치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제도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석·박사급 인력을 양성해 기업에 투입하는 연령은 빨라야 30대 초반이다. 그런데 40살 이전에 연구 및 현장에서 손을 떼야 한다. 10여년 교육에 투자해 양성한 인력을 채 10년도 활용할 수 없는 구조다.
중소기업도 전문인력 부족이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대기업 전문인력이 중소기업으로도 잘 유입되지 않으면서, 국내 부품·소재 산업 선순환 고리가 깨졌기 때문이다. 대기업 출신 연구원이 중소기업으로 영입돼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해야 산업 선순환이 이어지는데,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정부에서 대기업 퇴직자를 활용하는 정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 반응은 냉담하다. 중소기업이 전문인력을 영입하기 위해 신청해도 전문가 풀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채용자와 고용자를 연결해주는 중간 매개체 역할이 활성화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경녕 LS엠트론 상무는 “국내에서는 구조적으로 부품·소재 전문인력들의 출구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면서 “숙련된 전문인력들의 연구 경험과 노하우가 전수되지 못하고 그냥 폐기되는 것은 국가 경제에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