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한 달 앞두고 있는 예비신부 K씨는 요즘 혼수 장만에 하루가 너무 짧다. 특히 가전제품 고르는 게 여간 까다롭지 않다. 오늘도 냉장고 매장에서 한참을 구경하던 그는 결국 비슷한 디자인의 두 제품을 두고 어떤 걸 골라야 할 지 고민에 빠졌다.
한 제품은 가격이 약간 높은 반면 에너지소비효율등급이 1등급이었고, 다른 제품은 3등급이었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제품을 구입하자는 마음에 3등급 제품을 고르려던 K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장 직원에게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물었다.
매장 직원은 한 장의 서류를 보여줬고, 그는 바로 선택을 바꿨다. 서류에는 1등급 제품이 3등급보다 연간 2만원 이상 에너지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간 무심코 지나쳤던 ‘에너지 효율’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에너지 효율 향상, 왜 중요한가=개별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관련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지구 전체적인 관점에서는 자연보호를 위해 흔히 에너지 절약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계량적으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K씨의 경우처럼 에너지소비효율등급이 높은 제품을 구입하면 그만큼 전기요금을 덜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쉽게 차이를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이 행동이 실제로 ‘녹색 지구’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50년 기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정책수단에서 에너지절약은 무려 36%의 비중을 차지한다. 요즘 한창 활발하게 거론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21%)의 비중은 에너지절약보다 순위가 낮다.
신재생에너지 보급은 기술개발에 시간이 걸리고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지만, 에너지절약은 적은 비용으로 경제적 이익과 온실가스 배출을 방지할 수 있어 가장 비용 효과적인 정책이라는 분석이다.
IEA는 또한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 감축 잠재량에서 기기·설비(조명 포함) 부문의 비중이 45%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가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하면서도 핵심적인 에너지절약 정책으로 기기·설비의 에너지 효율 향상을 각국 정부에 권고하고 있다.
이미 지난 2006~2008년 G8 정상회의에서 25개의 에너지절약 정책을 긴급히 시행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으며, 이 중 기기·설비부문의 에너지 효율향상 정책 권고사항은 8개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에너지소비효율등급표시제도=우리나라 역시 이 부분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기·설비의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위해 에너지소비효율등급표시제도, 고효율에너지기자재인증제도, 대기전력저감프로그램 등 3개의 효율관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992년부터 시작된 에너지소비효율등급표시제도는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고 보급률이 높은 제품을 대상으로 1~5등급으로 에너지소비효율등급라벨을 부착토록 하고 최저소비효율기준 미달제품에 대해서는 생산·판매를 금지하는 제도다. 자동차·냉장고·에어컨 등 24개 제품에 적용한다.
이는 제조(수입)업체들이 생산(수입)단계에서부터 원천적으로 에너지절약형 제품을 생산·판매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로, 해당제품 제조(수입)업체들은 의무적으로 이를 지켜야 한다.
에너지소비효율등급표시제도는 소비자들이 효율이 높은 에너지절약형 제품을 손쉽게 판단해 구입 할 수 있도록 △에너지소비효율등급(1~5등급) 라벨 의무표시 △의무적 신고 △최저소비효율기준 적용이라는 3가지 의무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고효율에너지기자재인증제도·대기전력저감프로그램=고효율에너지기자재인증제도는 에너지 효율 및 품질시험 검사 결과 정부가 고시한 일정기준 이상 만족하는 제품을 고효율에너지기자재로 인증하는 제도다. 에너지관리공단에서 고효율에너지기자재 인증서를 발급하며, 이 중 LED 조명기기 등 일부 제품은 장려금도 지원된다.
대상 제품은 고조도 반사갓, 조도자동조절조명기구, 폐열회수형 환기장치, 고기밀성 단열창호, 산업건물용 가스보일러 등 총 41개다. 이 제도는 1996년 12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한편, 컴퓨터·TV 등 사무·가전기기는 실제로 사용하지 않는 대기상태에서도 많은 전력을 소비하며, 이를 대기전력이라고 한다. 이는 가구당 전력 사용량의 11%를 차지해 ‘전기먹는 흡혈귀’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대기전력저감프로그램은 사용하지 않는 대기시간에 절전모드로 바꾸거나 대기전력 최소화를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대기전력저감기준 만족제품에는 에너지절약마크를 임의표시하고 미달제품은 경고표지를 의무화한다.
이는 올해까지 대기전력을 1W 이하로 줄인다는 대기전력 1W 정책의 중심 프로그램이다. 지난 2004년 정부는 “대기전력 낭비를 막기 위해 2010년까지 모든 전자제품의 대기전력을 1W 이하로 할 수 있도록 대기전력 절약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정부 우선 구매와 보급 촉진 등 지원책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에서는 대기전력저감우수제품의 보급 확대를 위한 지원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에너지소비제품 구매운용기준’에 의한 조달청 우선구매와 ‘공공기관 에너지이용합리화 추진지침’에 의거한 대기전력저감우수제품의 대한 공공기관 사용 의무화 등이 있다.
◇그간의 성과=지난 1992년 에너지소비효율등급표시제도가 시행된 이후 1996년부터는 고효율에너지기자재인증제도가, 1999년부터는 대기전력저감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이를 통해 기기·설비부문의 효율 향상에서 많은 성과를 거뒀다. 특히 가전기기 분야의 에너지 효율수준은 세계 정상급이며, 냉장고·에어컨·세탁기의 에너지 효율향상은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IEA는 2008년 G8 정상회의에 제출한 한 보고서에서 “한국은 최근 비교적 단기간에 의무적인 효율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며 “보다 잘 개발된 국가 프로그램의 우수사례를 통합시켰고, 대기전력저감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제품의 경고라벨부착 의무화를 통해 경각심을 일으키는 등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수립했다”고 G8 정상회의에 보고하는 등 한국의 의무적 효율기준 및 에너지라벨링제도에 대해 높이 평가한 바 있다.
냉장고의 에너지 효율향상 성과는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냉장고의 유효내용적 1ℓ당 연간소비전력량(연간 ㎾h/ℓ)은 1996년 1.750에서 지난해 0.702로 13년 동안 60%나 감축됐다. 에어컨(전기냉방기)도 세계 정상급의 에너지 효율을 자랑한다. 에어컨의 냉방효율(EER:Energy Efficiency Ratio)은 1996년 2.974에서 2009년 3.597로 13년간 21%의 에너지 효율이 향상됐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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