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주목할 만한 사건 두 건이 발생했다. 첫째는 한 지상파 방송사의 내부 통신망 정보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S사로 유출됐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민간인 사찰 파문’으로 청와대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에 광범위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들 사건을 ‘조직’ 차원에서 은밀하게 진행했는지, 한 개인이 저지른 것인지 사실관계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 의도는 짐작해 볼 수 있다. 바로 ‘감시’다. 나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협을 사전에 감지하고 이에 대응하겠다는 욕망이 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자크 아탈리는 “감시자는 몇몇 상상력 넘치고 엉뚱한 연구가의 계시를 받은 기술자 머리에서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다. 감시자라는 개념은 상업적 체계가 추구하는 경제적 필요, 즉 기존 물체를 생산하는 데 드는 시간을 줄이고 네트워크의 역량을 최대화하며 집단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최소화하고 시간의 활용을 극대화하며 욕망과 요구를 사업적 부로 환원시킨다는 긴박한 필요에 부응하는 개념”이라고 했다.
감시를 보다 용이하게 만든 것이 바로 ‘네트워크’며 현대사회의 네트워크는 다름 아닌 정보기술(IT)이다. 렉 휘태커 캐나다 요크대학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만인에 의한 만인의 감시’라고 정의했다. 전문가들은 휘태커 교수의 주장을 ‘음모론’으로 치부할 단계는 지났으며 감시로 인한 편리함과 프라이버시 등 윤리적 문제 간의 충돌을 해결하려는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당신을’ 알고 있다=미국 국가안보국 NSA가 평화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에셜론’ 프로젝트를 가동해 매일 전 세계의 전화통화를 엿듣고 이메일 내용을 엿본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에 속한다. NSA는 전화와 이메일을 하루에만 17억건 이상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7월 2년간 미국의 정보기관을 취재해 ‘Top Secret America’라는 탐사보도로 이 같은 실태를 파헤쳤다.
보도에 따르면 NSA는 국가 간 중요한 무역협상이 있을 때면 무차별적으로 정보를 빼내 미국에 제공한다. 적국은 물론이고 우방국가의 정보도 수집한다. 최근에는 미국 교통안전청(TSA)이 ‘알몸투시기’를 도입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범죄자를 감시하기 위해 골목골목 CCTV를 설치했다. 정부는 CCTV의 기술표준을 통일해 서로 연동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인권 단체 등의 극렬한 반대에도 생체정보를 수록한 전자주민증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원격 감옥이 등장한다=문제는 감시 범위가 합법의 경계를 넘어설 때 발생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러더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하려는 시도가 속속 이어진다는 데 있다.
지난해 10월 영국에는 인터넷을 활용한 원격 감시가 논란이 됐다. 영국의 일간 텔레그래프 인터넷판은 유럽연합(EU)의 새로운 계획에 따라 영장 없이도 경찰이 개인 컴퓨터를 정기적으로 해킹할 수 있게 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원격 감시’라고 명명한 이 기술은 어떤 웹 사이트를 사용했는지 혹은 이메일을 추적하기 위해 가정이나 사무실의 컴퓨터에 특정 프로그램을 심어 놓는 것을 뜻한다. 당시 EU 각료이사회가 이 같은 제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보호업계의 한 전문가는 “만약 일반인이 이러한 프로그램을 다른 이들의 컴퓨터에 설치한다면 당장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면서 “공공의 이익이라는 미명 하에 공권력이 사생활을 침해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스마트폰이 활성화돼 개인의 위치정보(LBS)를 활용하는 시도가 원격감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방통위는 지난 30일 LBS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LBS를 사용한 애플리케이션에 개인 정보만 담지 않으면 허가나 신고 없이도 서비스를 할 수 있게 했다. 이용자가 동의한다는 전제하에 이용자가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서비스를 합법화했다. 특히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우려돼 수차례 연기됐던 경찰의 위치정보 활용을 전격 허용했다. 경찰이 이용자의 스마트폰으로 위치정보를 확인해 긴급사고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래에는 별도의 감옥이 사라진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자크 아탈리는 이를 ‘원격 감옥’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미래의 물결’이라는 저작에서 “구치소는 점차 사라지고 그 대신 가택연금 상태에서 원격 감시를 받는 체제로 바뀔 것”이라고 예언했다.
현재 기술로도 원격 감옥을 만들 수 있다. 대표적인 컨버전스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u(유비쿼터스)시티와 홈네트워크를 통해서다. u시티는 도심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IT로 통제하는 것이며, 홈 네트워크는 가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트래픽을 제어할 수 있다.
IT서비스 관계자는 “결국은 IT를 활용해 발생하는 수많은 개인정보를 한곳에서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갈수록 인구가 증가하며 교도소를 지을 공간조차 없는 상황이 되면 무기징역형을 언도받은 죄수를 가택연금하려는 시도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이 상습적인 성범자들에게 채우는 ‘전자발찌’는 그 초기적인 단계로 해석할 수 있다. 전자발찌로 범죄자의 동선을 원격에서 파악해 통제하기 때문이다.
◇감시 산업이 뜬다=문제는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도 감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사생활 침해문제가 발생한다는 데 있다.
경찰청은 지난 8월 개인의 통신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한 혐의로 구글코리아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구글은 인터넷 지도로 특정위치의 영상정보를 제공하는 ‘스트리트 뷰(Street View)’를 서비스하기 위해 거리 풍경을 촬영했다. 당시 무선기기에 대한 위치정보 서비스 기능을 개선할 목적으로 무선랜망에 설치된 무선기기(AP)의 시리얼 번호를 수집했는데 이때 공개되지 않은 개인 간 통신 내용까지 수집하고 저장한 것이다. 이미 구글은 이 서비스로 미국, 독일, 뉴질랜드, 호주 등 다른 나라에서도 문제가 된 바 있다.
아예 감시를 상품화한 감시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CCTV, 얼굴인식기술 등 물리적 보안 산업이 대표적 사례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지식경제부는 오는 2013년까지 국내 전체 보안시장은 18조4000억원 규모에 달하며 이 중 물리보안 분야가 전체 시장의 62%를 차지하며 11조3500억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휘태커 교수는 “오늘날의 감시는 더 이상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것을 사유화, 상품화하는 신자유주의시기에 나날이 발전한 감시기술은 국가가 아닌 ‘작은 독재자’, 즉 민간영역의 감시 기구들의 성장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자체 감시 열풍=사생활 침해가 감시에 대한 비관론자들의 예측이라면 감시가 사회적인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리라는 낙관론도 있다.
휘태커 교수는 “오늘날 감시의 강점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참여해서 얻는 긍정적 혜택 때문에 불리한 점이나 위험을 깨달을 가능성이 적다”고 했다.
기업은 원료수급→제품생산→판매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유통·물류산업이다. 최근 스마트폰으로 물류의 흐름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박정천 케이엘넷 사장은 “스마트폰 열풍을 타고 물류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다양한 대안이 속속 모색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정보통신망에 접속해 다양한 정보통신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환경이 보편화됨에 따라 스마트폰을 물류에 접목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상품에 전자태그(RFID)를 코드화한 뒤 이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통제하며 위성측위시스템과 위치기반서비스를 연계해 물류정보를 한눈에 확인하고 화물차량의 위치는 물론이고 운전자 위치까지 파악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감시의 이점은 결국 개인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감시하는 ‘자가 감시기’의 출현을 앞당기리라는 예측도 나온다. 가령 기업이 특정 시스템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 등 환경 규제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지를 자동 진단하는 시스템, 저축 정도와 자산 증식정도를 감시하는 소프트웨어, 건강상태를 측정하는 시스템 등이다. 미래학자들은 피부 속에 전자칩을 넣어 지속적으로 심장 박동과 혈압상태를 측정하는 제품도 미래에는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 집단이 사라진다=자가 감시기가 보편화되는 경우 감시 결과를 바탕으로 개인이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리라는 예측도 있다.
대표 사례가 u헬스 서비스다. 개인이 자신의 건강상태를 PC로 측정하는 데 이어, PC가 제시하는 해결책에 따라 자신을 치료하는 이른바 DIY닥터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초기 단계의 서비스는 국내에서도 이미 상용화됐다.
u헬스케어 전문업체인 영에버는 지난 9월 미국 헬스케어 전문 솔루션업체인 AWS(Advanced Wellness Solution)와 손잡고 원격 건강관리 서비스를 시작했다. 의료계에서 쓰이는 심박변이율(HRV) 분석기술을 대중화한 것으로 PC에 설치한 센서에 손가락을 접촉하면 HRV가 인터넷망을 타고 미국 서버로 전송된다. 해당 서버에 저장된 정상인의 생체 DB와 비교해 이용자의 생체 나이, 체력 등급, 운동 후 회복력, 스트레스 모니터 등의 정보를 보여주며 이상이 있으면 개선할 방법을 제시해준다.
자크 아탈리는 “자가 감시기구는 점점 소형화되고 사용법도 간소화된다. 저가로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일반인과의 경쟁을 우려한 일부 전문기업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욱기자 coolj@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