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롤스로이스를 타고 가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어딜까? 연미복을 입고 오페라 하우스에 가거나, 주말을 맞아 시외에 있는 (반드시 대 저택인) 별장에 가거나, 아니면 여왕의 초대를 받아 궁중 연회에 갈 때면 어떨까?
그 만큼 우리가 롤스로이스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귀족적이거나 혹은 경외로움이 담겨 있다. BMW 산하로 들어간 롤스로이스가 처음으로 선보인 자동차가 팬텀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지난 1월, 팬텀보다는 조금 더 접근 가능성을 높인 고스트가 한국에 상륙했다. 고스트의 가격은 팬텀보다 최소한 2억5000만원 이상 싼 4억3000만원부터 시작한다. 기대했던 대로 고스트는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순항 중이다.
몇 주 전, W호텔에서 고스트를 만나 대 저택 별장만큼 멋질 뿐 아니라, 고스트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가평의 아난티 클럽까지 시승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만난 고스트는 첫눈에 팬텀과의 구분이 쉽지 않았다. 고스트는 5.8m가 넘는 팬텀보다 43㎝정도 짧지만 그래도 길이가 5.4m보다 불과 1㎜ 짧은 5399㎜나 된다.
생긴 모습도 팬텀과 판박이다. 그래서 팬텀 시리즈들과 고스트를 쉽게 구분하려면 사각형의 헤드램프 아래 원형 램프가 있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팬텀 시리즈들도 앞모습이 서로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모두 원형 램프를 갖고 있는데, 고스트에는 없다.
어쨌든 고스트는 팬텀보다 작지만 대형 럭셔리 세단들보다 여전히 한 치수 더 크다. 누가 봐도 롤스로이스임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스타일에서 롤스로이스의 독보적인 위상은 여전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번쩍이는 크롬으로 만든 두툼한 도어 손잡이는 앞뒤 것이 한곳에 모여 있어, 캐비닛을 열 듯 앞문은 앞으로, 뒷문은 뒤로 열면, 넓고도 화려한 고스트의 실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곳은 가죽이거나, 크롬이거나 혹은 나무다. 스타일은 너무나 고급스럽고 또 고풍스럽지만 그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기능들은 지극히 현대적이다.
대형 모니터에는 톱뷰 카메라가 차의 주변 모습을 보여주고, 승객이 타는 네 자리는 별도로 완벽하게 온도 조절이 된다. 10채널 앰프와 서브우퍼 2개를 포함한 16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600W 오디오 시스템은 CD는 물론 USB와 하드 디스크에서도 음악을 가져와 최상의 오페라 하우스를 구현한다.
나이트 비전 카메라, 헤드업 디스플레이,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능들을 나열하는 것은 역시 고스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그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아서 제 할 일을 다해주면 그만이다.
달리기 성능에서도 부족함은 허용되지 않는다. 팬텀의 6.75엔진과 달리 새롭게 개발한 V12 6.6리터 트윈터보 엔진은 팬텀보다 더 강력한 563마력을 뿜어내고, 최대토크는 780Nm에 이른다. 이처럼 강력한 힘으로 300㎞/h까지 달리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롤스로이스는 이를 ‘Effortless Dynamism’이라고 이야기한다. 힘들이지 않고 최상의 주행이 가능하도록 하려면 이 정도의 파워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고스트에는 파워 버튼도, 수동변속 모드도 없다. 다만 필요에 따라 엑셀만 원하는 만큼 밟아주면, 이 거대한 덩치가 완벽하게 따라와 주었다. 4개의 정교한 에어 서스펜션은 모든 상황을 파악하여 최상의 승차감을 구현했다. 물론 0~100㎞/h 가속에 걸리는 시간이 4.9초에 불과하니 필요할 땐 스포츠카처럼 빠르게 달릴 수도 있다.
고스트는 팬텀 보다는 좀더 운전하기 편하고, 좀 더 다이나믹하지만, 여전히 ‘최고’란 어떤 것인지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지금’ 고스트는 정상에 서 있으며, 그 지금은 ‘오랫동안’이 될 것이다.
글, 사진 / 박기돈 기자 nodikar@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