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단행된 삼성그룹의 정기 임원인사는 내용과 형식에서 파격 그 자체다.
역대 최대인 490명 승진이라는 인사의 규모에서부터 승진연한을 고려하지 않은 대규모 발탁, 여성과 연구개발(R&D) 인력 중용 등 그 동안의 삼성 인사에서 찾을 수 없었던 선택이 이뤄졌다. 또 차녀인 이서현 전무와 이 전무의 남편인 김재열 제일모직 전무를 나란히 부사장에 기용하면서 젊은 삼성을 향한 이건희 회장의 강력한 의지도 피력했다.
◇히트상품 있는 곳에 승진 있다=‘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삼성의 인사원칙은 이번에도 적용됐다. 이번 인사에서 승진자 490명 중 발탁 승진은 79명으로, 2006년 인사 이후 가장 높은 발탁률(16.1%)을 보였다. 사상 최고의 실적 덕분인지, 2년 이상 승진을 당긴 대규모 발탁인사도 지난해 4명에서 올해 12명으로 늘었다.
특히 사상 최고 실적 경신이 기대되는 삼성전자의 경우, 갤럭시S의 글로벌 상품화에 관여했던 상당수 임직원들이 대거 승진했다. 지난해 LED TV 부문에서 승진자가 다수 배출됐던 것처럼, 올해에는 갤럭시S가 승진으로 가는 문이었다. 소위 ‘히트상품 있는 곳에 승진 있다’는 공식을 재확인시킨 셈이다.
실제로 전무로 승진한 노태문 삼성전자 상무는 스마트폰 갤럭시S 개발로 모바일 시장의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한 공을 인정받았다. 상무로 승진한 이성식 삼성전자 부장 역시 갤럭시S 디자인을 주도한 인물이다.
◇파격 인사의 영광은, 누구=삼성은 이번에 30대 임원을 과감히 발탁했다. 오너 일가인 이서현 전무를 제외하고, 양준호 삼성전자 수석과 문성우 부장, 이민혁 수석 등 3명은 초고속 승진의 영광을 누렸다. 올해 승진자 중 최연소 기록을 세운 이민혁 수석은 갤럭시S 등 스마트폰 디자인 부문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점을 인정받아 무려 4년을 앞당긴 발탁 인사의 주인공이 됐다.
부사장 1명, 전무 1명, 상무 5명 등 총 7명의 여성 임원도 배출됐다. 삼성SDI 김유미 상무가 전무로, 삼성전자 송영란·박희선 부장과 삼성SDI 이지원 부장, 삼성SDS 김영주 부장, 삼성증권 이재경 부장은 상무로 승진했다. 삼성은 또한 이날 해외 현지법인의 외국인 영업책임자들을 대거 승진시키면서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도 천명했다. 삼성전자 미국법인에서 휴대폰 매출 확대에 기여한 오마르 칸씨와 중국법인에서 GSM 휴대폰 영업을 담당한 러지아밍씨가 상무로 승진했다. 메모리반도체 주요 거래선을 대상으로 매출 성장을 이끌어 낸 미국 반도체법인 존 세라토씨와 백색가전 제품의 판매 성장을 주도한 미국 세트법인 폴리테스키씨도 상무 직함을 달게 됐다.
◇3세 경영체제 초석 마련=지난 3일 이재용 사장과 이부진 사장이 나란히 사장에 오른 데 이어 이날 인사에서는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그룹은 3세 경영체제를 위한 준비작업을 마쳤다. 삼성은 이번 인사를 계기로 계열분리 등 향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변화를 염두에 준비작업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전자·금융(이재용 사장), 호텔·레저(이부진 사장), 패션·광고(이서현 부사장) 등 3각편대로 이들 3세들의 계열분리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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