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결론-골렘을 작동시키기(251~269쪽)’와 ‘후기-골렘과 과학자들(271~323쪽)’은 읽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낱낱으로는 알 만한데 여럿으로는 편안하게 흐르지 않고 토막토막 끊기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기자의 과학적 교양이 낮거나 물리학을 전공한 옮긴이의 서술(번역)이 ‘과학적으로 너무 충실했던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과학에서 무엇인가 잘못됐을 때 과학 공동체는 침입자를 물리치려는 개미굴처럼 반응한다(253쪽)”고 보았다. 과학계의 정치적 카르텔 같은 것을 말하는 듯한데 “인간의 오류가 과학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지기까지를 읽어 내기가 매우 버겁다.
눈여겨볼 토막은 많다. 전체를 한눈에 꿰어 내기가 어렵더라도 낱낱으로부터 이것저것 우려낼 게 있다. “과학의 공적 이해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합당한 이유 중 하나는 과학적 쟁점과 기술적 쟁점이 점점 더 정치 과정에 의해 전모가 가다듬어진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256쪽)”는 것. 또 “과학자와 기술자는 신(神)인가 아니면 협잡꾼인가(258쪽)” 하고 질문해야 하는 이유 등이다.
특히 “과학과 기술은 본질적으로 위험하다(266쪽)”는 지적으로부터 시민사회가 가다듬어야 할 ‘과학기술을 제대로 보는 눈’이 탁자에 오른다. 절대로 과학을 “신비스러운 것, 계시를 받은 것, 위계질서가 잡혀 있는 것, 모든 것을 망라한 것, 배타적인 것, 전지전능한 것, 오류가 절대 없는 것(272쪽)”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표현은 십자군이나 마녀사냥가(272쪽)”에게나 어울릴 것들이다.
‘결론’과 ‘후기’ 전으로 쪽을 되넘기면, 이 책은 매우 재미있다. 기억을 화학적으로 옮길 수 있는지(1장), 시험관 안에 태양을 가둘 수 있을지(3장), 우주로부터 지구에 날아오는 그 무엇(중력복사선)이 있기는 한 건지 등을 두고 과학자 사이에 오갔던 얘기들.
특히 채찍꼬리도마뱀(6장)은 매력적인 얘깃거리다. 활동적인 암놈이 수동적인 암놈 등에 올라타고는 이런저런 행동을 하는 게 ‘교미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이 친구들 혹시 레즈비언?’이라는 색안경을 끼는 과학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채찍꼬리도마뱀이 암수 성행위 없이 ‘암놈 한 마리의 난자만으로 생식’을 하는 동물이었으니 암놈끼리의 이상한(?) 행동이 과학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실험과 관찰 조건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견도 많았다. 과학자가 ‘골렘’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여러 상황이 채찍꼬리도마뱀 주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유대 신화에 나왔다는 ‘골렘’은 사람을 닮은 인형이다. 진흙과 물을 섞어 만든 뒤 마법으로 움직이게 했다니 로봇과 비슷할 것 같다. 사람의 명령에 따라 일하고 적과 싸우기도 하는데 다루기가 힘들어 때로는 주인을 죽이기도 한 모양이다. 지은이는 1994년 1월 “과학이라는 골렘을 설명하려(21쪽)”고 이 책을 썼다. 책이 한국에서 옮겨진 것은 2005년 12월, 황우석 거짓논문 사건이 뜨거웠을 때다. 우리가 조금 더 일찍 ‘과학의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던 ‘골렘’을 알아보고 경계했더라면….
해리 콜린스·트레버 핀치 지음. 이충형 옮김. 새물결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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