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가 부활했다. 혁신 제품으로 글로벌 가전 시장을 휘어잡던 옛 명성만큼은 아니지만 확실히 달라졌다. 주요 제품이 다시 선두권에 오르고 매출과 순이익 등 실적도 ‘청신호’가 켜졌다. 최근 부임한 이토키 기미히로 소니코리아 신임 사장(53)은 “강력한 구조조정과 소니 특유의 혁신 정신이 결합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경기 불황의 직격탄을 맞았던 소니는 엔화 강세에도 지난 3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소니는 회계 기준 2분기(7~9월) 매출 1조7330억엔(24조19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 늘었다. 영업이익 680억엔(9500억원), 순이익도 310억엔(4300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올해 전체 전망치도 영업이익은 11% 늘어난 2000억엔으로 상향 조정했다. 이토키 사장은 “바이오 노트북과 게임이 실적을 이끌고 TV·디지털카메라 등도 150% 이상 성장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소니코리아도 완연한 ‘해빙’ 분위기다. 회사 측은 “세트는 다소 부진했지만 디바이스와 방송장비가 크게 선전했다”며 “아직 결산 중이지만 역대 소니코리아 매출 중 최고 기록일 듯하다”고 밝혔다. 소니코리아는 지난 2008년 1조2000억원대를 기록한 이후 지난해 주춤했다가 내년 3월(회계연도 기준) 다시 이를 뒤집는 최고 실적을 앞두고 있다.
소니코리아는 크게 부품(ADMK)·방송(B&P)·소비재(CP)사업부로 나눠져 있다. 이 가운데 이미지 센서·모바일용 LCD·케미컬 분야 등 부품 사업이 최고 실적을 냈다. 이에 대해 이토키 사장은 “국내 주요 휴대폰 업체가 사용하는 제품이 소니 이미지 센서입니다. 감도가 높아 선명하고 노이즈가 적으며 어두운 곳에서도 잘 찍히는 게 장점입니다. 방송도 소니가 전통적으로 강한 시장입니다. HD 제품군뿐 아니라 네트워크 기반 테이프리스 솔루션, 3D 솔루션, 4K 관련 장비가 크게 선전하고 있습니다. 3D와 함께 4K 전용 프로젝터를 지난해 메가박스 영화관에 이어 올해 시너스까지 납품해 시장 선점에 성공했습니다”고 밝혔다.
소비재 제품군도 ‘소니 부활’을 예고했다. 6월 출시한 미러리스 제품 ‘알파 넥스’는 이미 히트상품 대열에 진입했다.
“출시 이후 미러리스 시장에서 50% 이상 점유율로 압도적인 1위에 올랐습니다. 전체 렌즈 교환식(DSLR) 시장에서도 2위로 진입했습니다. 10월 출시한 반투명 미러 기술의 DSLT 카메라 ‘알파55’와 ‘알파33’도 카메라 사업에 효자 품목입니다. 소니 핸디캠도 여전히 1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토키 사장은 “‘CEO노트북’으로 불리는 바이오 노트북도 프리미엄 제품을 중심으로 인기를 끄는 등 소비재 제품도 소니 브랜드 파워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토키 사장은 7월 소니코리아 대표로 정식 부임했다. 1990년 도시바에서 소니로 회사를 옮겨 주로 해외 현지법인을 맡은 전형적인 ‘해외통’이다. 한국을 제외하고 그가 개척한 지역만 인도·터키·루마니아·베트남 등 8개 나라에 달한다. 다양한 해외 경험 탓인지 실적에 연연하기 보다는 시장을 먼저 이해하고 내부 조직역량을 갖추는 게 결국 경쟁력이라는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이토키식 파이프 경영 이론’이다.
지난 4개월 동안 그가 주력한 부분도 직원 스스로 할 수 있는 기업 문화를 만드는 일이었다.
“흔히 글로벌 법인은 숫자를 먼저 따집니다. 저는 매출은 두 번째라고 봅니다. 조직을 튼튼하게 만드는 게 우선입니다. 얇은 파이프에 많은 물을 억지로 부으면 순간적으로 실적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엔 파이프는 고장납니다. 먼저 파이프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고 물이 흐를 수 있도록 두께를 넓히는 게 중요합니다. 임직원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딜러와 파트너와도 좋은 관계를 구축하면 자연스럽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합니다.”
이토키 사장은 부임 후 ‘소니코리아(SOK) 2.0’을 선언했다. 이전과 다른 ‘뉴 소니코리아’를 함께 만들어 고객에게 보여주자는 대표 슬로건인 셈이다. SOK 2.0으로 소니코리아는 확실히 변했다. 소니 특유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기업 문화가 살아나고 직원들의 각오도 대단하다.
이토키 사장은 우수 직원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다른 나라 순환 근무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CEO 블로그’를 운영하고 맥주 파티도 여는 등 소통에도 앞장서고 있다. 한국에 진출한 소니 모든 계열사가 한 자리에 모이는 ‘소니 유나이티드 크리스마스 파티’도 준비 중이다.
올해는 소니가 한국 진출 20년을 맞는 뜻 깊은 해다. 비록 연말이지만 ‘새로운 20년’을 준비하는 첫 해인 내년은 소니 입장에서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 고객은 세계에서 가장 수준이 높은 고객입니다. 제품과 서비스에서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룹에서도 코리아에서 성공하면 세계에서 성공한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코리아에서 우수 사례를 자꾸 발굴해서 본사와 계속 공유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토키 사장은 “소니는 한국 시장에서 제품에 있어서는 독창적이고 선도적이며 자유로운 이미지를, 회사는 자유롭고 고객만족을 추구하고 책임 있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로 영원히 남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