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연구내용과 성과들은 ‘연인’과 같습니다.”
수년간 온종일 한 분야에만 매달려 있으면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사업 생체기능조절물질개발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는 김은희 충남대학교 교수는 자신의 연구 성과에 대한 특히 남다른 애정을 내비쳤다.
김 교수의 주 연구 분야는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등 피가 모자라서 생기는 ‘허혈성 질환’이다. 혈관이 막혀서 피가 원활히 공급되지 않을 때 주로 발생하는 허혈성 질환은 신체 영구 마비는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선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심각한 병이다. 하지만 아직 특별한 치료약이 나와있지는 않은 분야다.
김 교수는 “상당히 많은 사람이 앓는 질병임에도 치료제가 나와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며 이 분야 연구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따라서 그는 치료제 후보물질 발굴에 연구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아직 확실한 치료약이 나와 있지 않은 만큼 허혈성 질환은 세계 각국에서 활발한 기초·원천기술 연구가 이뤄지는 분야이기도 하다. 신약 후보물질 개발 방법이나 기술에 대한 특허도 다수 출원돼있다.
김 교수는 “기존에 이뤄졌던 것과 유사하지 않은 신규성이 강조되는 연구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세포에 대해 일정 효과를 주는 신약을 개발한다고 할 때, 이미 신약이 개발된 세포를 대상으로 더 성능이 좋은 약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김 교수는 이러한 연구는 과감히 버린다. 대신 신약이 개발돼있지 않은 세포를 찾아나선다.
이 때문에 김 교수의 연구가 쉽지는 않았다. 그는 “21세기 프론티어와 같이 장기적인 지원을 해주는 사업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연구를 토대로 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세포에 대한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가 가지는 ‘리스크 테이킹’을 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쉽지 않은 연구 끝에 김 교수가 내놓은 성과가 ‘죽음 단백질(FAF1)’ 발견과 이에 대한 신약 후보물질 개발이다. 혈액이 세포에 원활히 공급되지 않은 허혈성 질환 상태에서는 이 죽음단백질이 활성화돼 세포가 죽게 된다. 만일 이 때 죽는 세포가 뉴런일 경우 반신불수에 이르게 된다. 죽음 단백질의 활성화를 억제하면 신체 손상을 막을 수 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개발된 신약 물질이 뇌졸중 치료제로 널리 쓰일 수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최근 열린 ‘21세기 프론티어 연구성과 대전’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그는 “이제 후보물질이 임상시험을 거쳐 실제로 사용되기까지의 과정이 남아있다”며 “수년간에 걸친 연구가 실제로 유용한 치료제로 쓰이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