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대학동에 위치한 서울대 연구공원 본관. 이 건물 지하에는 열 평 남짓한 방이 하나 있다. 보기에는 여느 동아리방이나 학과 학생회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곳에서 시작한 벤처기업이 35개다. 프로야구 게임으로 유명한 ‘게임빌’이 여기서 출발했고, 이러닝 업계 강자인 ‘이투스’도 배출했다. 창업동아리 ‘서울대 학생벤처네트워크’에는 매년 20여명의 학생이 회원으로 가입해 스타트업(Start-Up)을 꿈꾼다.
많은 대학생이 창업을 꿈꾸지만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대학 내 벤처창업동아리는 일반 동아리 수준을 넘어 스타트업 기업 요람 역할을 톡톡히 하며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해 준다.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창업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벤처창업 경진대회, 기업가정신 고취를 위한 행사를 연다. 또 창투사 자문, 정부 과제 지원 등 개인으로는 힘겨운 일들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며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스타트업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서울대 학생벤처네트워크는 국내에서 가장 활성화된 창업동아리 중 하나다. 모바일게임업체 게임빌 창업자인 송병준 대표는 이 동아리의 초대 회장을 지냈다. 이투스 역시 김문수 대표를 비롯한 동아리 회원 3명이 지난 2000년 학생 시절 만든 회사다. 이투스는 이후 SK커뮤니케이션즈에 인수되며 업계 1위인 메가스터디와 견줄 정도로 커졌다.
이러한 OB(졸업생) 벤처 창업자들의 활약은 재학생들에게 창업의 꿈을 잃지 않으면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계기가 된다. 양영석 서울대 학생벤처네트워크 회장은 “선배들이 종종 동아리를 방문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노하우를 전수해준다”며 “실무는 물론이고 척박한 국내 스타트업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준다”고 말했다.
이투스 창업 멤버인 이비호 스픽케어 부사장은 “벤처 버블이 꺼진 이후로 창업을 꿈꾸는 대학생은 많지만 기회는 훨씬 줄었다”며 “동아리는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라고 말했다.
연세대 ‘VERY’, 한양대 ‘HVC’, 중앙대 ‘비전’ 등 각 대학 창업동아리의 활동도 활발하다. 이들이 뭉쳐 만든 서울 소재 대학 창업동아리연합회 ‘PEUM(Passional Entrepreneurship University Membership)’은 서울시청·서울산업통상진흥원·중소기업청 등 각종 기관과 연계해 창업캠프·기업탐방·워크숍 등을 시행하며 창업 마인드를 확산하고 창업동아리의 내실화를 꾀하고 있다.
송미경 PEUM 회장(서울여대 경영학과 4학년)은 “창업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채 막연히 관심만 가지고 있던 대학생도 동아리에 들어오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며 “창업이 재미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게끔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들 창업동아리 지원에 발벗고 나섰다. 중기청은 ‘예비 기술자 창업 육성사업’ ‘우수 창업 아이템 개발 지원사업’을 통해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는 창업동아리 등에 종잣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중기청 관계자는 “대학 동아리에서 나오는 창업 아이템의 수준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조만간 정부 지원을 통한 가시적인 성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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