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노키아·RIM 등 해외 휴대폰 업체를 신규 거래처로 잡으려는 국내 부품업체들이 늘면서 해외 업체들의 독특한 ‘구매 프로세스’가 주목을 끌고 있다. 글로벌 휴대폰 업체들은 국내 업체와는 상당히 다른 부품 성능 등 요구 조건을 제시하고 있어 신규 거래를 성사하기 위해서는 기술력 외에도 업체별 맞춤화 전략이 필요하다. 해외 업체와 신규거래를 성사시킨 국내 부품업체들에서 업체별 구매 프로세스 특징을 들어봤다.
◇끈기를 요구하는 ‘노키아’ ‘RIM’=세계 1위 휴대폰 업체인 노키아는 여유 있게 시간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 최근 노키아가 구조조정과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면서 많이 바뀌었지만, 우리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비해서 대응이 느린 편이다. 자본과 시간적 여유가 없는 부품업체들은 신규거래조차 힘들다.
부품업체가 새로운 협력사로 등록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3~5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삼성·LG 등 국내 업체가 보통 6개월 안에 개발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다. 1~2년 동안 진행한 개발 프로젝트가 중간에 중단되기 일쑤다. 이런 경우 그동안 투입한 개발비 및 인력 품삯은 매몰돼 버린다. 핀란드 등 유럽에 사무소를 개설해야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투자비가 들어간다.
블랙베리로 유명한 RIM도 마찬가지다. 이 업체에 부품을 공급하는 국내 업체 크루셜텍은 신규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2년 6개월의 시간과 상당한 개발비를 투입했다.
그러나 이들 업체와 거래가 성사되면 상당한 혜택이 제공된다. 국내 업체와 달리 협력사에 이익을 보장하기 때문에 판가인하 압력이 덜하고, 한 모델당 생산 규모가 커 상당한 부품물량도 확보할 수 있다. 크루셜텍·KH바텍·BSE 등 국내 부품업체는 노키아·RIM과 거래를 성사시켜 고성장을 기록했다.
◇깐깐하고, 성격 급한 ‘애플’=애플과 거래하기 위해서는 애플이 요구하는 까다로운 조건을 수용해야 한다. 우선 애플 협력사로 등록되면 ‘애플 전용라인’을 설치해야 한다. 또 전용라인은 철저한 보안이 요구된다. 협력사 직원이라도 담당자가 아니면 출입이 통제된다. 특히 터치스크린용 강화유리, 프레임 등 전략 부품 공급사는 더욱 심하다. 터치스크린 시장에서 강화유리 공급난이 심각하지만, 애플이 안정적으로 부품을 공급받을 수 있는 것도 중국 렌즈테크놀로지를 이런 식으로 관리하기 때문이다. 렌즈테크놀로지는 애플에 우선적으로 부품을 공급하고 나머지 물량을 다른 휴대폰 업체에 판매하고 있다. 이 업체는 초기 설비투자 시 애플에 개발비 명목으로 상당 금액을 지원받았다.
애플 협력사는 애플 전담 대응팀을 만들어 애플 담당자가 이메일, 전화 등으로 문의하는 내용을 24시간 내에 대응해야 한다. LG이노텍·인터플렉스·아모텍 등 국내 업체는 애플의 이런 협력사 요구사항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있다.
애플과 거래하는 부품업체 관계자는 “새벽 2시에 애플 담당자에게 문의가 와서 회사 측에서 바로 대응한 적도 있다”면서 “세계적인 스마트폰 업체와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