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 CEO]안건준 크루셜텍 사장(11월 지경부장관상)

[글로벌 IT CEO]안건준 크루셜텍 사장(11월 지경부장관상)

 그림과 디자인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 2명과 함께 그린 ‘로봇 태권V’ 만화책은 전교생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주인공을 그리고 싶어하는 친구들과 달리 악당 로봇 그리기를 좋아하는 그는 약간 괴짜였다. 디자인 대회에 나가도 항상 상위권에 입상했다.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 꿨지만, 국내에 산업 디자인이 유명무실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게 됐다. 그가 만든 도면은 항상 과 전체의 바이블로 통했다. 삼성전자에서 기계설계를 하면서 그의 손재주는 더욱 빛을 발했다.

 사업가적 기질이 뛰어난 사람이란 자각은 없었다. 항상 스스로 최고의 스태프가 되겠다고 다짐했을 뿐이다. 그러나 타고난 끼와 재능을 주체할 수 없었다. 기획을 하고, 그것을 전개하는 추진력에는 다른 사람들 모두 혀를 내둘렀다.

 첫 직장인 삼성전자에서 신사업 및 기획을 담당하면서 해외를 돌아다녔다. 거기서 경험을 쌓고 기술을 축적했다. 다른 입사동기들은 조직 생활에 익숙해져 일반 샐러리맨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그는 신사업을 담당하며 제조라인을 구축하고, 생산·마케팅 업무까지 챙겨야 했다.

 인생의 전환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광통신 벤처기업인 럭스텍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이직했다. 사실상 그는 오너를 대신해 CEO의 일을 해야 했다. 비록 중소기업이었지만, 회사 전반의 실무를 꿰뚫게 됐다. 핵심 기술력을 가진 회사였고, IT 버블이 한창인 때여서 회사는 고성장을 기록했다. 그는 이미 광학기술자로 업계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일찍이 세계 시장의 방대함을 깨달았고, 젊은 안건준(46)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슴 속에서 솟아났다. ‘안건준’이라는 인물은 너무 커버렸고, 그를 온전히 담아 줄 큰 그릇이 어디에도 없었다. 벤처기업 창업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연 매출 2000억원의 모바일 입력장치 전문기업 크루셜텍은 그렇게 탄생했다.

 “삼성전자라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럭스텍이라는 벤처기업으로 옮길 때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어요.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도전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크루셜텍이라는 회사도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중소기업을 운영하면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마음 속에서 커져갔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광통신 분야로 창업하기를 결심했다. 외국 투자기관이 엄청난 조건을 내걸며 해외에서 창업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안 사장은 달콤한 제안을 뿌리치고 국내에서 사업하기로 결심했다.

 “비록 인프라는 미흡하지만, 그동안 그를 지지해준 사람들이 있고 고국에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크루셜텍’이라는 벤처기업이 2001년 4월에 등장했다. 호서대 교수로 있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학내 벤처를 시작했다. 장비와 저렴한 임대료 등 학교 측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모든 역량을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다.

 크루셜텍이 창업하자마자 사업은 호조를 보였다. 크루셜텍이 보유한 광통신 모듈 기술은 세계 시장에 통용되는 기술이었고, 시장 상황도 좋았다. 창업 후 불과 8개월 만에 1400억원 규모의 수주를 확보했다.

 그러나 IT 버블이 붕괴되면서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기 시작했고, 불과 몇 달 후 수주 계약서는 종잇조각이 돼버렸다. 여기서 안 사장의 위기관리 능력이 빛을 발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신용을 바탕으로 자금을 마련했다. 호황기에도 위험에 철저히 대비했기 때문에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삼성전자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중소기업을 경영해보니 삼성 같은 회사가 얼마나 대단한지 깨닫게 됩니다. 직장 생활을 하며 배운 위기관리 능력이 나도 모르는 사이 체득돼 있더군요.”

 그는 삼성전자에서도 톡톡 튀는 직원이었다. 똑똑하지만,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인사고과는 항상 최상 등급이었다.

 “회사 내에 설계 표준이 있는데, 오류를 발견해 수정을 요구했죠. 그랬더니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며 아주 싫어하더군요. 욕도 많이 먹고, 싸움도 많이 했어요.”

 크루셜텍을 창업한 지 10년이 됐다. 사회생활의 절반을 샐러리맨으로 살았고, 나머지는 회사 오너로 살았다. 어려운 고비도 많았다. 외환위기(IMF), IT버블, 금융위기 세 번의 큰일을 겪었다.

 “10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남들이 100년 동안 경험할 법한 일들을 겪었어요.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으니 오히려 다행이죠.”

 크루셜텍은 옵티컬트랙패드(OTP)로 유명해진 기업이다. PC용 마우스를 작게 만들어서 휴대폰에 내장하면 좋겠다는 개념은 누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해외 대기업들도 이를 구현하는데 실패했다. 개념에 대한 특허는 많았지만, 실질적으로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 특허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럼에도 안 사장은 나중을 위해 특허 분석을 철저히 했다. 그는 삼성전자·럭스텍에 있을 때부터 특허의 달인이었다. 그가 등록한 특허만도 수십건에 달한다. 특허를 어떻게 만들고, 특허로 기술을 방어하는지 몸에 벤 사람이다.

 그래서 안 사장은 OTP를 개발할 때부터 기존 특허를 철저하게 피해서 설계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 설화부터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은 투영되죠.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야 라이트 형제가 비로소 비행기를 구현해내죠. 누구나 생각은 했지만, 아무도 구현하지 못했던 제품이 바로 OTP라고 생각합니다.”

 OTP를 개발한 후 또 한 번 큰 모험을 시도한다. 성공하려면 ‘호랑이 입에 손을 집어넣자’는 생각으로 7년 전 미국 애질런트테크를 찾아갔다. 처음에는 코웃음 치던 애질런트도 안 사장의 열정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결국 크루셜텍은 제품 개발과 생산을 담당하고, 영업은 애질런트가 맡기로 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6개월 동안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크루셜텍만큼 애질런트는 열정이 없었다.

 안 사장은 계약을 접고, 독자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2006년 삼성전자에 처음 제품을 납품한 데 이어 일본 샤프, HP 스마트폰 등에 공급했다. 무엇보다 2008년에 하반기부터 블랙베리에 OTP를 공급하면서 소위 대박이 터졌다.

 “스마트폰 성장에 따라 OTP 시장도 급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피처폰·스마트TV·소형PC 등에도 OTP가 점점 채택되기 시작했어요. 세상에 인풋 솔루션 없는 전자제품은 없습니다. SW·알고리듬·UI 등 핵심 영역에 기술 역량을 집중해 나갈 겁니다.”

 기술력 있는 국내외 기업들의 인수합병에 관심이 많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회사들을 인수합병해 외형 성장과 질적 성장을 동시에 달성할 계획이다. 미국의 UI 시스템 반도체 회사와 많은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크루셜텍은 미국 기업들이 무시 못할 정도의 회사가 됐다.

 “언젠가는 크루셜텍을 독일의 히든 챔피언 기업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싶습니다.”

 

 <안건준 대표이사 약력>

 1984~1991 부산대학교 기계공학과 학사

 1996~1998 경북대학교(원) 정밀기계공학전공 석사

 1990~1997 삼성전자㈜ 연구소 선임연구원

 1997~2001 ㈜럭스텍 기술이사/CTO

 2001~현재 크루셜텍㈜ 대표이사

 

 <회사 소개 및 현황>

 크루셜텍(대표 안건준)은 2001년 4월 설립된 광학기술 기반의 입력 솔루션 기업으로 세계 최초로 개발한 옵티컬트랙패드(OTP)를 비롯해 LED 플래시 모듈과 PL렌즈를 생산, 공급하고 있다.

 초기 주력 사업은 LED 플래시모듈이었으나, 4년간 100억원의 개발비를 투자해 2006년 세계 최초로 OTP를 개발하면서 이 부문이 주력 사업이 됐다. 단순히 OTP 모듈만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사의 요구에 맞춰 알고리듬 SW를 제공하고 있다. 내구성이 뛰어난 다양한 디자인의 완제품까지 자체 생산하는 설비와 인력을 갖추고 있다.

 OTP로 세계 시장점유율 95%를 장악하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는 물론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2위인 RIM과 4위인 HTC 등 세계 대부분의 휴대폰 업체를 고객사로 보유하고 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kr

[글로벌 IT CEO]안건준 크루셜텍 사장(11월 지경부장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