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씨앗의 자연사

씨앗의 자연사
씨앗의 자연사

‘씨앗’은 커다란 나무가 되기도 하고 한 떨기 꽃이 되기도 한다. 혹은 씨앗 자체가 알고 보니 쭉정이라 더 이상 크지 못할 때도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기대할 수 있는 씨앗은 그래서 시작, 가능성 등과 같은 희망찬 단어와 잘 어울린다.

 이 책은 조금 특별한 과학도서다. ‘씨앗’이 갖는 문학적이고 관념적인 의미가 어떻게 발굴되었는지 등을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찬찬히 소개한다. 씨앗의 진화도 함께 다룬다.

 책은 ‘사과 한가운데 숨은 씨앗은 보이지 않는 과수원’이라고 문을 연다. 이는 씨앗의 생물학적 잠재력과 그 은유적 힘을 동시에 표현한 영국 웨일스의 속담이다. 보잉 747 점보제트기 여섯 대를 합친 크기로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생명체로 자리매김한 자이언트 세쿼이아도 2000년 전에는 단지 6000분의 1g에 불과한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자랐다. 경이롭기만 하다.

 껍질 속 씨앗의 자연사는 곧 진화의 역사다. 먼지처럼 가볍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씨앗에서부터 20㎏이나 되는 쌍둥이코코넛 씨앗에 이르기까지 각각 크기가 다양한 씨앗들 속에 지구상 식물들의 복잡·정교하고 경이로운 생명의 비밀이 숨어 있다. 저자인 조나단 실버타운 영국 오픈유니버시티 생태학 교수는 특유의 통찰력으로 3억6000만년 전 시작된 씨앗식물의 탄생과 진화를 이야기한다. 이어 씨앗식물의 생식과 꽃가루받이가 다양한 이유, 식물의 자기방어, 씨앗 퍼뜨리기와 싹틔우기, 생존과 자연선택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씨앗의 다양한 크기와 수 등을 설명하면서, 씨앗에는 ‘처절한 생존의 역사’가 있다고 설명한다.

 자연 속 씨앗뿐 아니라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씨앗의 다양한 에피소드도 담았다. 커피 등 식용·기름·향수·약품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 씨앗의 다양한 이야기와 17세기 미국 동북부 뉴잉글랜드지방의 살렘에서 벌어진 마녀사냥과 라임병, 인간의 색 감각 등 의외의 이야기도 담아 독자의 흥미를 자극한다.

 과학자와 정원사로서 풍부한 경험을 갖춘 저자가 풀어낸 ‘씨앗’ 이야기를 통해 과학과 자연,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 유익하다.

 조나단 실버타운 지음. 진선미 옮김. 양문 펴냄. 1만5000원.

 

이성현기자 argo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