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안정이 더 걱정?

요즘 외환시장을 보면 장하다는 느낌이 든다. 연평도 사격훈련에도 끄떡없었다고 해서 증시의 강한 내성이 화제지만 사실 외환 쪽이 요즘엔 한 수 위다. 증시는 장중 등락이 심했다. 이에 비하면 요즘 외환시장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연평도 사격훈련뿐인가. 외화 차입에 세금을 매기겠다고 한 것도 악재라면 악재인데 달러당 원화값은 여전히 안정적으로 움직인다. 작은 악재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던 과거 모습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한마디로 서울 외환시장이 대외 리스크에 둔감해졌다.

정부로서는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게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환율이 리스크에 강한 내성을 보이자 정부 안에서는 오히려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환율 하락(원화값 강세) 압력이 얼마나 강하기에 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튀어오르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느냐"는 놀라움이 배어나오고 있다. 환율 변동성이 줄어든 것까지는 좋았지만 내년에 원화값이 강세로 돌아설 것을 생각하면 걱정이 더 앞선다는 뜻이다.

외환딜러들 얘기를 들어보면 최근 원화값 움직임을 통해 내년 흐름을 어느 정도는 읽어낼 수 있다. 은행세와 연평도 사격훈련이 외환시장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원화값이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쯤 되면 정책 당국자들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는 이른바 ’최중경 라인(달러당 1140원)’ 돌파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올해 들어 세 차례나 시도했음에도 깨지 못한 난공불락인 ’달러당 1100원’도 조만간 깨질지 모른다.

가뜩이나 내년에는 자동차와 반도체 수출이 다소 부진해질 듯해 걱정인데 환율이 이러니 겁이 날 만도 하다. 이래 가지고 5% 내외로 공언한 내년 성장률이 가당키나 할까. 그렇다고 주요 20개국(G20) 트로이카 의장국 처지에서 대놓고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도 없다. 선물환 규제,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은행세 부과로도 안 된다면 당국은 이제 무슨 카드를 더 꺼내들어야 할까.

[매일경제 정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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