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신년기획]글로벌 IT CEO 좌담회

 지난해 우리나라의 수출을 견인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IT·자동차 부문이다. 특히 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폰 등 부문의 폭발적인 성장은 우리나라를 세계적인 IT 강국으로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일부 품목과 대기업 위주의 국내 IT 산업 구조는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국내 IT업계에 박태환·김연아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급 CEO를 육성하기 위해 지식경제부가 주최하고, KOTRA·ETRI·전자신문사가 공동 주관하는 ‘글로벌 IT CEO’ 상이 제정됐다. 해외 시장 개척에 나름 성공을 거둔 역대 글로벌 IT CEO 수상자들로부터 내년 경기 전망 및 성장 전략을 들어봤다.

 

 ◆참석자

 △문수동 블루버드소프트 전무

 △이재원 슈프리마 사장

 △안건준 크루셜텍 사장

 △황해령 루트로닉 사장

 △사회 : 홍승모 전자신문 전자담당(부장)

 

 ◇사회(홍승모 부장)=벤처는 성공 가능성보다 실패의 확률이 더 높은 냉혹한 경영환경이다. 여기 계신 분들은 벤처 기업인으로서 성공을 거뒀고, 해외 시장 개척의 공로를 인정받아 글로벌 IT CEO로 선정돼 상도 받았다. 각자의 성공 노하우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이재원 슈프리마 사장=한꺼번에 큰 성공을 바라기 보다는 처음부터 작은 성공을 일궈내는데 집중했다.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나중 큰 성공을 달성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한 방의 꿈’을 가지고 창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결코 쉽지 않다. 작은 이익을 만들어 기업이 선순환 고리를 이어가게 해야 한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시내를 이루고 바다를 이룬다. 해외 시장 진출도 국내 시장을 기반으로 착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문수동 블루버드소프트 전무=이장원 블루버드소프트 사장이 부득이하게 참석 못해 대신 오게 된 점 양해를 구한다. 우리 회사는 기업용 PDA 제조업체다. 세트제품이기 때문에 해외 시장 개척이 무척 힘들었다. 갖은 유혹을 뿌리치고 꿋꿋하게 우리 브랜드를 지켜나간 것이 나중에 큰 힘을 발휘했다. 빨리 가려고 서두르는 것보다는 멀리가기 위해서 움츠려 힘을 모으는 지혜가 중요하다. 이 때 얻은 교훈은 지금도 유효하다.

 ◇안건준 크루셜텍 사장=벤처가 상당한 위험을 수반하지만, 준비하지 않은 채 기업을 시작하는 것은 ‘죄악’이다. 벤처로 실패할 수는 있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은 실패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사장은 직원 가족들의 생계까지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그래서 호황에도 불황에도 경영자는 항상 준비를 해야 한다. 실례로 크루셜텍은 창업 직후 IT거품 붕괴를 맞이했다. 그러나 세계 시장 흐름을 읽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 찾아 나섰다. 그게 나름 주효했다.

 ◇황해령 루트로닉 사장=기회는 항상 우리 주변에 있다. 다만 이런 기회는 포장돼 있기 때문에 쉽사리 알아보는 사람이 적다. 루트로닉은 외산 레이저 의료장비를 국산화해 자리를 잡은 기업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쉽게 성공한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엄청난 인고의 노력들이 있었다. 물론 실패도 많았다. 나는 실패를 통해 내공을 쌓고, 스스로의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데 집중했다. 그게 지금 성과의 원인이다.

 ◇사회=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생경영, 동반성장에 대한 이슈가 사회 전반에 확산됐다. 그런데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와 닿지 않는 것 같다. 일례로 일부 대기업이 중소 팹리스 업체 핵심인력의 절반 이상을 데려간 사례도 있었다. 규제·자금 등 여러 분야에서 정부에 바라는 점들을 기탄없이 말해 달라.

 ◇황해령=대기업들이 ‘큰 그림’을 보고 사업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작은 기회만 있어도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탈하는 게 문제다. 결코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언론도 문제가 많다. 대기업 연봉을 줄세워 기사화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을 거다. 이런 기사들이 대기업에 가지 않으면 실패자라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아닌가. 대기업에 대한 공정거래법 규제도 좀 더 강화돼야 한다.

 ◇안건준=대기업, 중소기업 개념을 규정하고 분류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대기업 아니면 중소기업 밖에 없는가. ‘흑백논리’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단 두 가지 종류로 나누는 것은 국내 기업 저변을 너무 과소평가 하는 거다.

 현장에서 느끼기에는 대기업의 인력 빼가기도 가장 큰 문제다. 우리 회사 연구소는 병역특례 업체로 혜택을 받는다. 그런데 1년 6개월이 지나면 특례 인력이 이직할 수 있다. 대기업들이 이런 인력들만 노리고 뽑아간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타격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 연구원 양성소인가. 중소기업이 망하지 않는 한 특례 인력을 대기업에서 뽑아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황해령=중소기업에서 유출된 인력이 대기업에서 동일한 업종에서 같은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문제다. 중소기업 기술이 유출될 수밖에 없다.

 ◇이재원=대기업이 중소기업 인력을 뽑아갈 때 이적료 형태의 금액을 부과하는 것도 생각해 볼만하다. 실질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연봉, 복리후생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고급 인력을 붙잡아 두기 굉장히 힘든 현실이다. 중소기업 연구원들에게 소득세 혜택을 주는 방안도 정부 측에서 검토했으면 좋겠다.

 ◇사회=여기에 있는 분들이 운영하고 있는 기업은 중소기업 중 나름 스타기업이다. 핵심 인력 유출을 막는 나름의 방안들은 뭐가 있는가.

 ◇이재원=다른 중소기업과 달리 슈프리마 만의 새로운 솔루션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창업 때 6명의 고급인력과 함께 시작했고, 그들과 함께 가고 있다. 코스닥시장 등록 후 재무상태가 좋아지면서 대기업 인력이 오히려 우리 회사에 입사하는 경우도 생겼다.

 ◇안건준=대기업과 ‘머니게임’을 할 수 없다. 다만 회사 측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혜택을 직원들에게 주려고 한다. 일례로 크루셜텍 상장 후 우리 사주만으로 수 억원을 번 직원도 있다. 직원들 대부분이 15배 정도의 대박을 냈다. 창업 후 함께 고생하고 노력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주주들을 설득하는 게 힘들었지만, 직원들에게도 분명히 회사 성장의 과실이 돌아가야 한다. 이런 점을 직원들이 알아주는 것 같다.

 ◇황해령=우리 회사는 이직률이 2%에 불과하다. 경영진과 임직원간 ‘신뢰’가 제일 중요하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면서 신뢰를 쌓아간다면 핵심 인력들도 이직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전자신문을 읽는 독자 중 기업독자 다음으로 많은 게 대학생들이다. 창업을 고민하는 후배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조언 하나씩 부탁한다.

 ◇안건준=최근 대학생 기자와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취업이 힘들다고 창업을 도피처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창업도 경험과 실력이라는 기반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최소한 5년 동안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한 후에 창업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더 클 거다.

 ◇황해령=안 사장님 말에 동감한다. 창업이라는 게 겉보기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실제로 굉장히 힘든 분야다. 창업을 준비한다면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실무 전반을 경험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사회=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심지어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학생일 때 창업했다. 굳이 창업 전에 취업을 유도하는 이유는.

 ◇이재원=단언컨대 구글·페이스북 창업자가 한국에서 사업했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경영 환경은 완전히 다르다. 단순 비교는 위험하다. 한국은 제조 기반의 IT가 발전한 국가다. 반면 미국은 오래 전부터 SW 경쟁력을 육성해왔고, 인프라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영어권 국가에서 창업하면 세계 시장 접근이 훨씬 유리하다. 직장 생활 경험이 있다면 창업 후 아웃소싱 등으로 쉽게 자리 잡을 수도 있다.

 ◇문수동=“창업하기 위해서 중소기업에 취직할 겁니다”라고 하는 사람을 뽑을 기업은 없다.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젊은이들이 현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창업의 기회도 잡을 수 있다.

 ◇사회=그러고 보니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대부분이 직장 생활 후 창업 한 경우다.

 ◇이재원=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보다는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창업을 권하고 싶다. 우리나라 기업 환경에서는 이런 인력들의 창업 성공 가능성이 더 크다.

 ◇황해령=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후 창업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아지면, 사회적으로도 실패에 대한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여러분들은 해외 시장 진출을 통해 오늘의 성과를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중소기업이 해외 시장 진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가.

 ◇안건준=언어 문제로 해외 진출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세계화’라고 하면 언어, 특히 영어에 한정해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고정관념은 분명 잘못된 거다. 미국에 있는 거지를 아무도 세계화 시대의 인재라고 말하지 않는다. 세계 시장에 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전자신문 등 언론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세계화될 수 있다. 중소기업은 우선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세계로 나가 적극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황해령=세계는 이미 평평해졌다. 언어는 기본이고,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마케팅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화 시대의 인재 양성이라고 하면 기술 분야에만 너무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문수동=해외 시장 개척에는 기업의 철학도 중요하다. 우리 회사는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했다. 시간이 걸려도 우리 회사 브랜드를 지키겠다는 경영자와 임직원의 철학이 있었다.

 ◇이재원=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라는 말을 하고 싶다. 세계 방방곡곡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참가해 많은 고객을 만나야 한다. 작은 바이어들을 한 둘씩 확보하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길을 닦아야 한다. 한 번에 큰 거래를 성사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사회=올해는 세계 각국들이 적극적으로 경기 부양에 나서면서 IT시장 상황이 나름 호황이었다. 내년에는 선진국들이 재무건전성 압박으로 인해 올해와 같은 양적 완화 정책을 진행하지 못할 것 같다. 올해보다는 내년이 힘들다는 전망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문수동=내년에는 유럽·북미 시장이 쉽지 않아 질 거다. 다만 중국·아시아 등 신흥시장의 성장세는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산업용 PDA 업계는 중국 시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 중동·아프리카 등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한 국가들의 등장도 관심 깊게 보고 있다.

 ◇이재원=북미·유럽·일본 등 선진국 시장은 부진하겠지만,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를 중심으로 한 신흥시장은 여전히 성장할 거다. 특히 신흥시장의 공공부문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 신흥시장 공공부문을 감안하면, 보안 업계는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좋을 것이라고 본다.

 ◇황해령=의료기기는 신약 개발과 비슷한 시장이다. 기존 산업 흐름과는 차이가 있다. 새로운 치료기법을 개발해 신제품을 출시하면, 전에 없던 블루오션이 창출되는 것이다. 즉 기술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불황에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좋을 거란 희망이 보인다.

 ◇안건준=전체적인 경기보다는 글로벌 기업간 ‘빅뱅’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년에도 노키아 등 기존 휴대폰 업체들의 약세, 애플·림 등 순수 스마트폰 업체들의 약진이 두드러질 것이다. 이런 흐름에 맞춰 영업 전략을 짜야 한다. 기존 휴대폰 업체가 약해지면, 그들과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협력을 강화해 상황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리=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