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증시 금메달은 자원부국 품에 돌아갔다. 전 세계에서 올해 증시가 가장 많이 오른 나라에 페루가 이름을 올렸다. 페루 리마지수는 12월 27일 기준으로 연초 대비 58% 상승했다. 증시 상승 원인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맞물려 있다.
페루는 은 생산량 세계 1위, 구리 3위, 금 6위다. 은값이 올해 74%나 오르고 구리와 금도 26%가량 값이 올랐으니 증시도 자연히 축제 분위기였다. 니켈 세계 생산량 1위, 동 3위인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지수도 2575에서 3625로 41% 상승했다. 이 밖에 자원이 풍부한 러시아와 인도 뭄바이지수도 각각 22.1%, 14.7% 올랐다.
같은 자원부국임에도 브라질은 오히려 1% 하락했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금융위기를 겪은 뒤 이전 주가 수준에 가장 먼저 도달한 국가가 브라질이다 보니 상대적인 숨고르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내년에는 이머징국가보다는 그동안 눌려 있던 미국 등 선진국 증시가 외려 살아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유럽 등 선진국이 위험에서 벗어나면서 이머징으로만 몰리던 자금이 골고루 증시에 스며들 것이란 분석이다.
오성진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국은 올해 1월부터 지준율 6번, 금리 2번을 올리며 증시가 위축됐다"며 "중국 긴축 기조는 내년 상반기까지 투자심리에는 부정적 영향을 주겠지만 경기 선행지수는 돌아서기 때문에 하반기부터는 3500선에 대한 반등 신호는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9%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오 센터장은 "한국 증시는 내년에도 20%가량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펀드는 주식형이 최고, 채권도 강세=국내 대표적인 간접투자 수단인 펀드는 어땠을까. 국내 주식형과 해외 주식형을 비교해봤을 때 국내 주식형의 수익률이 월등히 좋았다. 국내 주식형의 경우 17.1%의 수익률을 거뒀지만 해외 주식형 펀드는 9.3% 수익에 그쳤다.
완제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올해 글로벌 소비가 살아나면서 IT나 자동차 등에서 수혜를 누린 한국 주식시장이 좋았던 것 같다"면서 "해외 펀드 중에서는 더블딥이나 유럽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가 적은 인도나 인도네시아 펀드만 강세를 나타냈다"고 분석했다. 조 연구위원은 "펀드로 유입된 자금도 해외보다는 국내 주식형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채권 수익률도 나쁘지 않았다. 국내 주식형 펀드가 17%, 해외 주식형 펀드가 9% 수준인 데 반해 한국 3년물 채권 수익률은 7.4%에 달했다. 미국 10년물 채권 수익률도 6.8%로 높았다.
문홍철 동부증권 연구원은 "올해 채권금리가 최저 수준까지 내려가면서 채권 수익률이 높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채권 수익률은 이자수익과 금리 변화에 따른 자본수익으로 이뤄지는데 시장금리가 떨어지면 자본이익이 나기 때문이다. 연초 4.41%이던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올해 말 3.37%로 내렸다. 만일 이 채권을 사고 그대로 보유한 투자자라면 7.35%의 수익을 거뒀을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10년물 국고채 금리는 3.83%에서 3.48%로 내렸다. 금리 하락폭은 적었지만 장기 채권 성격상 수익률은 6.8%가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인상 추세로 돌아서면서 올해와 같은 채권 강세가 내년에 다시 나타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박종연 우리투자증권 채권연구원은 "이자 수익을 기대하기에는 금리 레벨대가 많이 낮아졌다"며 "더 큰 문제는 내년에 시장금리가 오를 예정이어서 자본 손실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내년 채권 투자 수익률은 별로"라고 조언했다. 우리투자증권은 내년 말 3년물 금리를 3.85%로 추정하고 있다. 만약 올해 말 금리인 3.37%가 내년에 3.85%가 될 때 얻어지는 기대수익률은 2%에 불과하다. 미국 10년물 국고채 예상 수익률은 -0.7%다.
◆원자재=은값이 금값!=올해 원자재 가격 급등은 `수요와 공급` 논리보다 `돈의 힘`에 좌우됐다.
금융위기 이후 나라마다 경기를 살리느라 중앙은행을 통해 찍어낸 유동성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겼고, 이에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실물자산인 원자재와 곡물을 구입하러 몰려들었다. BNP파리바의 스테판 브리즈 금속담당 분석가는 "원자재 가격 급등은 전적으로 투자에 관한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경제가 본격 회복 국면에 접어들진 않았지만 향후 기대감이 어느 정도 선반영된 면도 있다.
여러 품목 가운데 가장 많이 오른 것은 금도, 원유도 아닌 은이다. 은은 금처럼 귀금속이라는 인식에다 산업재로도 사용돼 크게 각광받았다.
은의 가격 상승률(73.8%)은 가장 안전한 상품으로 여겨져 온 금(26.2%)이나 제조업 전 분야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구리(26.5%) 철강(28.7%) 상승률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 온스당 은값은 30달러에 육박했다. 1400달러 안팎을 오가는 금값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투자 수익률만 놓고 보면 은값이 금값보다 낫다.
은값이 치솟으면서 세계 최대 은광 가운데 하나인 미국 아이다호의 실버밸리 은광은 은값이 5~6달러 하던 12년 전 문을 닫았으나 다시 문을 여는 등 새로운 광산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원자재와는 달리 곡물 가격은 수요 공급 논리에 의해 크게 올랐다. 지구촌 기상 이변이 지속되고, 특히 올해는 가뭄으로 공급이 부족해지자 투자 수요까지 몰려 급등했다.
커피 가격은 74%, 밀 가격은 44% 급등했다. 옥수수(48.5%)와 설탕(24.8%) 등 주요 곡물 가격이 일제히 올랐다. 밀 가격은 최대 수출국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의 가뭄이 가격 급등을 부채질했다. 남미 가뭄 등으로 미국 커피 재고가 10년 이래 최저로 떨어지는 등 전반적인 공급이 크게 부족했다.
미국 유럽 등 글로벌 경기가 내년에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하면 원유 구리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은 투자수요에다 실수요까지 몰리면서 또 한 단계 뛰어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러나 모든 원자재가 뛰어오른 대신 실수요를 반영한 선별적인 상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위크는 "경기가 회복되면 투자자들은 금 대신 은, 플래티넘 등으로 투자 대상이 순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올해 너무 많이 오른 품목은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제기된다. 넘치는 유동성에 근거한 새로운 돈이 계속 들어오지 않으면 실수요가 아닌 투자에 의한 상승은 한순간에 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곡물 가격 역시 중국 인도 성장과 이상기온이 지속되면 장기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워낙 수요 공급 예측이 어려워 한순간에 급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매일경제 황형규 기자/이덕주 기자/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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