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산업이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모방형 성장모델을 ‘창조형 성장모델’로 바꿔야 합니다.” 윤종용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장(66)은 새해를 맞아 전자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 우리 기업은 창조적 발상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얼마나 빠르게 초기 시장을 선점하는지가 사업 성패의 핵심 요인이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삼성전자 성공신화 주역인 윤 회장은 1966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40년 이상을 삼성에 몸담은 정통 삼성맨. 2008년 부회장을 끝으로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아직도 상임고문을 맡아 삼성을 더 큰 글로벌 기업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전자산업 여명기나 마찬가지였던 1960년대부터 전자산업에 몸 담아 세계적인 전자강국을 일군 일등공신이다. 지금도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장, ‘과학기술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한국공학한림원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윤 회장은 “삼성전자도 창립 당시 30여명에 불과했던 중소기업이었다”며 “지금과 같이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기업가 정신과 도전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경제가 도전 정신과 활력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며 “젊은 청년들이 도전하고 마음껏 뛸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2010년은 다사다난한 한 해였습니다. 미국발 서브 프라임 여파로 경기 불황의 여진이 여전했으며 국내기업도 적잖이 힘들었던 해였습니다. 전자산업도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현장에서는 실제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지난해는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다시 발생한 유럽발 금융·재정 위기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남아 있었던 한 해였습니다. 하반기 경제 성장 둔화로 메모리 반도체·LCD 패널 등 핵심 부품은 공급과잉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렇지만 디스플레이 패널·스마트폰·스마트패드(태블릿PC)·3D TV 등 첨단 IT·전자 제품이 크게 성장했으며 소프트웨어·시스템 반도체 등 우리가 취약한 분야에서도 의미있는 실적을 보이며 미래성장 가능성을 제시한 한 해였습니다. IT·전자 산업은 2010년 연간 수출 규모도 1545억달러, 무역수지 780억달러 흑자로 역대 최고기록을 달성했습니다.
반도체·디스플레이·TV 등 전자산업의 핵심품목은 주요시장인 미국과 유럽이 위축되는 상황 속에서도 시장점유율을 높이며 세계 1위를 이어 갔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은 아이폰 출시 이후 우리 업체의 빠른 대응으로 생산과 수출 모두 세 자릿수로 증가하는 고무적인 성과를 올렸습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경기전망에 대해서는 비관과 낙관이 서로 공존하는 게 현실입니다. 전자 분야를 포함해 새해 산업 경기를 어떻게 보십니까.
▲새해 전자산업은 결코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주요 시장조사 기관은 새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둔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원자재가 변동과 수급 문제, 환율 변화 등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급성장한 중국기업과 경쟁도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식경제부·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대략 새해 세계 전자시장은 3.5% 성장, 국내 전자산업은 올해 고성장에 따른 기저효과로 수출은 5.9%, 생산은 3.2% 성장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전자제품 중에서는 스마트폰이 가장 돋보인 한해였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스마트TV·스마트패드(태블릿PC) 등 다양한 신제품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올해도 주요기업이 블루오션을 개척할 신제품을 속속 준비 중입니다. 새해 떠오를 분야가 궁금합니다.
▲제품별로 보면 반도체·디스플레이는 수요 증가세가 주춤하고 단가 하락으로 성장률이 낮아지지만 가격·기술 경쟁력 우위를 바탕으로 우리 업체의 시장지배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휴대폰은 스마트폰 경쟁력이 크게 높아지면서 생산과 수출이 늘고 소프트웨어와 시스템반도체는 스마트폰·스마트패드 등 관련 제품 수요 증가와 클라우드 컴퓨팅 등 스마트워크 기반 서비스 확대로 지난해보다 더 높은 성장이 예상됩니다.
새해 전자산업 화두는 ‘스마트’와 ‘융합’입니다.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스마트TV로 촉발된 스마트 열풍은 관련 기업뿐 아니라 직접 연관이 없었던 산업과 사회 각 분야까지 영향을 주고 있으며 산업 컨버전스화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새해는 ‘스마트’를 키워드로 ‘IT융합’ 분야가 본격 성장하고 하드웨어·소프트웨어·보안 등 관련 업종도 동반성장할 것입니다.
-전자업계에선 중국이 무섭게 추격해 오고 있습니다.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도 우리에게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여전히 전자대국으로 위상을 확고하게 굳히고 있습니다. 우리기업도 이들 기업을 비교해 강점과 약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업체의 강점은 스피드 경영, 신속한 의사결정과 실행력에 있습니다. 원천기술 확보는 조금 늦었지만 추격자(Fast Follower·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빠르게 상용기술을 확보해 시장 점유율을 높여 놨습니다. 일본과 비교했을 때 부품·소재·장비 부문은 여전히 큰 기술 격차가 나고 규모 또한 영세한 수준입니다. 중국기업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와 거대한 내수시장, 정부의 대대적인 정책 지원으로 빠르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기술 격차도 줄어드는 상황입니다.
-정보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글로벌시장에서 우리 전자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글로벌 1위로 부상하기 위해 전자 분야에서 필요한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요.
▲핵심 원천기술을 미리 확보하고 창조적 발상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빠르게 초기시장을 선점하는 게 중요합니다. 중국과 같은 후발주자와 격차가 좁혀져 과거 우리의 성공 공식이었던 빠른 추격자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 핵심기술 확보, 기술 융합, 시장 예측, 적기 시장대응 등이 더욱 중요합니다. 미국 애플이 아이팟과 아이폰으로 시장의 판도를 바꾼 게 좋은 사례입니다.
우리기업은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창조형 성장으로 바꿔 나가기 위해서는 산학연 그리고 정부 부처가 모여 중장기적인 연구개발(R&D) 전략을 수립하고 긴밀한 협력과 분업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협력과 중소기업 육성 정책을 통해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시장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갖추는 게 중요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시장과 기술 흐름이 바뀌고 있습니다. 전망도 서로 엇갈리는 상황입니다. 앞으로 전자 분야에서 우리 기업이 주목해야 할 시장은 어디가 있겠습니까.
▲기존 거대 선진시장을 유지하면서도 신흥시장을 적극적으로 선점하는 게 중요합니다.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IT수요 대부분을 차지한 미국과 서유럽·일본 등 선진시장은 성장이 급격하게 둔화되거나 감소 추세입니다. 이에 비해 인구 규모가 크고 높은 경제성장률이 예상되는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와 빠른 인구 성장과 자원부국으로 경제 성장이 기대되는 MAVINS(멕시코·호주·베트남·인도네시아·나이지리아·남아공화국) 등 신흥 개도국은 선진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경기 침체율이 낮습니다. 회복 속도에서도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습니다. 우리가 이들 나라의 시장을 주도해야 합니다. 수출 중심에서 내수 중심의 성장으로 선회한 중국도 여전히 주목해야 하는 시장입니다.
-새해에도 스마트폰 열기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스마트폰의 진짜 경쟁력은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이라는 게 대세입니다. 스마트폰을 포함해 앞으로 건전한 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해 어떤 분야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지난해 스마트폰이 최대 이슈로 부상하면서 관련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했습니다. 가트너에 따르면 새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 규모는 3억7500만대로, 2010년의 2억5600만대에 비해 46%가 성장할 예정입니다. 애플 아이패드를 시작으로 삼성전자 갤럭시탭, RIM의 플레이북 등 스마트패드도 경쟁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스마트패드 그리고 스마트TV로 이어지는 ‘스마트 열풍’은 IT업계뿐 아니라 모든 산업계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통신사는 물론이고 반도체·디스플레이·게임·미디어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솔루션·콘텐츠·서비스 등 관련 산업이 동반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윤 회장님은 40년 넘게 삼성에 몸담았습니다. 그만큼 인생에서 삼성과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삼성 대표 CEO 출신으로 삼성 같은 기업이 나오기 위해서는 정부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산업계도 준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삼성전자도 창립 당시는 30여명에 불과한 작은 기업이었습니다. 라디오 하나 만들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가정신과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IMF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인해 기업가정신과 도전정신이 쇠퇴하고 창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젊은이들도 쉽고 편하게 살고자 하는 경향이 확대되면서 이공계를 기피하고 의사나 변호사 같은 자격증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경제의 도전정신과 활력이 크게 위축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미국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젊은 청년들이 창업해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정부에서는 창업 지원제도와 벤처·중소기업 대한 연구개발과 마케팅 지원, 세제 혜택 등의 지원책을 확대해야 합니다. 중소·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기술이 없으면 산업도 없고 경제·사회 발전도 요원합니다. 어릴 때부터 이공계에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관심을 유도하고 대학에서는 전공 분야에 대한 기초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사회에서는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에게 확실한 대우를 해 주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기술 중심에서 서비스와 마케팅 중심으로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습니다. 기술 제조를 기반으로 전자대국 건설에 앞장선 입장에서 시장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예측하는 지 궁금합니다.
▲2000년대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뀌면서 경쟁력의 기준도 변했습니다. 아날로그 시대 경쟁력은 기술 축적, 경험 축적, 근면성이 중요한 자원이었으나 디지털 시대는 우수한 두뇌, 창의력, 스피드였습니다. 최근 ‘제조’보다는 ‘서비스’ ‘마케팅’으로 산업 패러다임이 바뀐 건 사실이나 ‘기술’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발전은 도구의 발명과 과학기술 혁신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게다가 세계 경제가 제조업 중심에서 지식기반산업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기술은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 원천으로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가령 스마트 혁명이라고까지 불리는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열풍을 살펴보면 밑단에는 통신·디스플레이·금형 등 현존하는 최고의 기술이 집약돼 있습니다. 변변한 자원 하나 없는 우리 같은 국가에서는 기술 혁신으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로 새 시장을 만들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2011년 신묘년이 밝았습니다. 산업을 대표하는 협회장으로 전자업계 건승을 기원하는 덕담을 부탁드립니다.
▲다사다난했던 2010년이 지나고 신묘년 희망찬 새해가 활짝 열렸습니다. 올 한 해도 뜻하는 모든 소망을 이루고 발전하는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는 국내 최대 전자산업 대표 단체로 전자산업 발전을 위한 산업 지원 인프라 구축, 시장 개척과 마케팅 지원, 회원 간 친선 도모 등 전자정보통신산업의 건전한 육성과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 올해 전자산업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겠습니다.
국내를 넘어 세계 전자산업을 선도하는 대표단체로 위상을 높이고 글로벌IT 포럼, 전자산업대전, 전자의 날 유공자 포상과 같은 사업도 계속 이어 나가겠습니다. 아울려 회원사에 정직하고 협력업체에 공정하며 정부 규정을 준수하는 등 정도경영으로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겠습니다.
2011년에도 전자산업 발전을 선도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정리=
<윤종용 회장은 누구>
삼성전자 성공신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평범한 엔지니어로 출발해 글로벌기업 대표 최고경영자까지 맡으면서 샐러리맨이 직장에서 갈 수 있는 최고봉에 올랐다. 1966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1969년 자신의 전공 분야인 전자공학을 살려 삼성전자로 옮겼다. 삼성전자 도쿄지점장, 종합연구소장, 전자부문 부사장, 삼성전기·전관 사장 등을 두루 거쳐 2000년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라 2008년 퇴임할 때까지 40여년 동안 삼성에 몸담았다.
윤 회장은 특히 이병철 회장을 만나 1970년에 흑백TV를 만들고 냉장고를 수출하면서 해외 시장을 개척한 주역이다. 컬러TV를 개발하고 VTR를 맡을 당시 잠시 삼성전자를 떠났다가 이건회 회장 취임 후 다시 삼성전자에 복귀해 삼성을 글로벌기업으로 만드는 데 공헌했다. 지금도 삼성전자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한국공학한림원 회장·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장 등 아직도 왕성한 대외 활동을 벌이며 특히 지난해 한림원 석학들을 중심으로 최빈국 대한민국을 60년 만에 국민소득 2만달러 반열에 올려놓은 ‘대한민국 100대 기술과 주역’을 선정해 주목을 받았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