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을 통해 새롭게 도래할 시대를 ‘지식정보시대’로 정의하고 재택근무와 전자정보화 가정을 말할 때만 해도, 1984년 윌리엄 깁슨이 공상과학소설 ‘뉴 로맨서’에서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개념을 언급할 때만 해도, 1988년 마크 와이저가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제시할 때만 해도, 1989년 월드와이드웹(www)이 개발될 때만 해도….
많은 사람이 이 꿈 같은 이야기에 ‘과연’이라 했다. 그런데 어떤가.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의 신기(神技)가 컴퓨터라는 물건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이것이 인터넷이라는 ‘길’과 합세하더니 어느새 꿈 같은 이야기는 현실이 됐다. 말도 되지 않을 법했던 재택근무가 현실화되고, 컴퓨터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날로 늘고 있다.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이상한 공간에 기대어 가정과 길거리에서 컴퓨터와 대화하며 일하는 사람,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날로 늘고 있다. 바야흐로 컴퓨터와 네트워크가 연출하는 꿈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처음에는 이 낯선 환경에 거부감을 가진 이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사람이 이 낯선 세상에 동화되기를 희망하는 게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독서도 그렇다. 전자책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은 전자책을 책으로 보기에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문과 달리 사람들은 ‘전자독서’라 불리는 낯선 독서환경에 빠른 속도로 동화됐다. 외려 종이책을 읽는 것을 낯설어하는 사람도 생겼다. 독서 패러다임에 변화가 오는 것이다.
전자책에 무엇이 있기에 오랜 세월 습관화된 종이책 독서를 위협하는 것일까. 전자책 등장 이전, 지식과 정보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식은 문자에 집중됐다. 종이 미디어의 한계 때문이다. 하지만, 전자책이 등장하면서 지식과 정보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식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컴퓨터라는 물건이 지식과 정보를 문자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음성·소리·그림·영상 등 다양한 미디어 요소를 통한 표현·전달을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일궈낸 다양성은 문자 책(텍스트)에 머물던 책의 모습을 오디오 책·비디오 책·멀티미디어 책 등 여러 모습으로 다각화시켰고, 더불어 독서환경도 읽는 독서·듣는 독서·보는 독서로 다각화됐다. 미디어 융합의 자유로움이라는 컴퓨터 저작도구의 특성이 만들어낸 결과다.
어디 그뿐인가. 휴대 단말기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디지털도서관으로 불리는 정보원에 유무선으로 자유로이 접근해 실시간 독서 실행을 가능케 했다. 종이책 독서환경에서 전자책 독서 환경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래는 어떨까.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옮겨가는 사람들은 현재보다는 미래에 더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패러다임이 전자책과 전자독서로 흐른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발걸음을 전자책으로 옮기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종이독서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로 전자책을 전달받아 종이에 인쇄해 책을 읽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독서가’도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는 독서 흐름이 전환돼도 이런 독자를 배려해야 한다. 종이독서 환경과 전자독서 환경을 함께 배려하는 사회가 미래에도 계속되길 기대하는 마음이다.
이종문 경성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jmlee@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