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벤처`脫코리아` 러시

스마트폰용 안테나 제조업체 A사 김석희 사장은 지난주 연구실 임원, 직원 3명과 함께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4세대(G) 이동통신용 안테나를 개발하기 위해서다. 스웨덴에서는 4G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가 이미 시작됐지만 한국에선 일러야 올 3분기께 시작되기 때문에 제품 테스트를 위해 출장을 빈번하게 다녀야 했다.

김 사장은 "세계 시장은 이미 LTE로 가고 있고 4G 스마트폰도 벌써 출시되고 있기 때문에 제때 제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돈을 들여서라도 테스트를 해야 한다"며 "한국에서는 현재로선 불가능해 아예 연구실 일부를 스웨덴으로 옮길까 고민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한때 글로벌 IT 테스트베드(실험대)로 각광받아 온 한국에서 부품 및 서비스 업체들의 `탈코리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4G 서비스가 1년 이상 늦어져 국내에서는 테스트조차 할 수 없는 데다 각종 `전봇대 규제`로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 서비스를 시작하는 게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탈코리아`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방송통신위원회는 와이브로(모바일 와이맥스) 기술에만 집착해 LTE 주파수 할당을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늦게 했다. 지난해 4월에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에 LTE 주파수 등을 할당했으며 실제 주파수를 사용할 수 있는 시기는 일러야 오는 7월이다.

반면 스웨덴은 2008년 말, 미국과 일본은 지난해 말에 LTE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업자들도 보조금 경쟁에만 매몰돼 신규 서비스를 위한 투자를 게을리했다.

통신 3사의 투자비 대비 마케팅비는 2007년 151.1%에서 2008년 165.5%, 2009년 205.3%로 매년 증가한 반면 투자비는 3조5866억원(2007년)에서 3조179억원(2009년)으로 크게 줄었다.

정태명 성균관대 교수는 "통신사들이 3G 투자에 대한 수익 환수 때문에 4G 서비스를 게을리했고 정부도 정책 판단을 잘못해 투자를 독려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며 "4G에 맞는 새로운 부품과 서비스가 지연되고 벤처업체들이 생겨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터넷 및 게임 벤처회사들은 불필요한 규제 때문에 `탈코리아` 러시를 이루고 있다.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안드로이드마켓에 게임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게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여전히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폰용 모바일 게임과 페이스북용 소셜 게임을 전문으로 개발하는 벤처회사 파프리카랩은 한국에선 서비스를 하지 않고 있다. 아이폰용 게임 2개, 페이스북 소셜 게임 1개를 출시했으며 지금 준비 중인 2개가량의 게임은 모두 해외용 게임으로 국내에서는 서비스하지 않을 계획이다.

김동신 대표는 "앞으로도 현재 같은 비즈니스 환경이면 국내에서 서비스할 계획이 없다"며 "해외 시장이 더 크고 국내보다 더 쉽게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필수적인 벤처기업 입장에서 굳이 국내 시장에 들어가려 애를 써야 할 이유가 없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규제 때문에 국내 서비스가 늦어지고 경쟁력이 떨어지자 이용자들은 해외 서비스에서 답을 찾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트위터 이용자 수는 1년 전 대비 1833%, 페이스북 이용자 수는 1년 전 대비 3125% 증가했다. 국내 서비스인 미투데이는 286% 증가했고, 싸이월드는 방문자 수에서는 증가했으나 페이지뷰에서 전년 동기 대비 33.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안드로이드마켓에 `앵그리버드`와 같은 글로벌 히트 게임이나 서비스가 없기 때문에 이용자들 사이에선 아예 미국 계정(계좌) 개설 붐이 일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한국 계정에는 쓸 만한 앱이 없기 때문에 미국 계정을 개설하고 현지 은행 계좌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는 글이 넘쳐난다.

권기덕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동통신망과 단말기, 서비스가 맞물려서 가는 게 글로벌 트렌드인데 한국은 각종 규제가 여전히 살아 있고 정책도 실기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용어설명 >

테스트베드(Test-bed) : 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이나 제품을 상업화하기에 앞서 품질 문제점 등을 사전에 점검해 볼 수 있는 소규모 생산라인이나 시험시스템을 말한다.

[손재권 기자 / 최순욱 기자 / 김명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