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반도체업계 2차 치킨게임…가격 1달러 붕괴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또 한 차례 구조조정 태풍이 불어닥치고 있다. D램 가격 폭락으로 대만 업체들이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일본 엘피다마저 적자에 빠졌다.

12일 국제 반도체 가격 조사업체인 D램 익스체인지는 지난달 말 0.97달러였던 DDR3 1기가비트 D램 고정거래 가격이 이달 들어 0.91달러로 더 떨어졌다고 밝혔다. 고정거래 가격은 반도체 업체들이 HP나 델처럼 대형 PC 제조업체에 공급하는 가격으로 매달 두 차례 협상을 통해 정해진다.

D램 가격은 지난해 5월 초 2.72달러로 정점에 달한 뒤 불과 8개월 만에 3분의 1 토막이 난 셈이다.

반도체 가격이 폭락하자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점유율 3위(16.2%)인 일본 엘피다가 작년 4분기에 적자로 전락했다. 일본 증권가에서는 200억엔(약 2700억원) 이상 영업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영업이익 305억엔(약 4000억원)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천양지차다.

대만 업체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작년 하반기 들어 줄줄이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3분기 적자폭은 최악인 프로모스(35억7000만 대만달러)를 비롯해 이노테라(23억3000만 대만달러) 난야(13억9000만 대만달러) 순이다.

세계 점유율 5위(4.1%)인 파워칩이 32억2000만 대만달러 흑자를 기록했지만 이는 회사 전체 수치로 D램 사업부 속내는 다르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가격이 폭락한 4분기에는 모두 큰 폭의 적자를 낸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파워칩은 공장 가동률을 대폭 낮췄으며 프로모스는 D램 생산을 거의 중단하고 다른 제품 생산 비중을 늘렸다. 엘피다도 지금 D램 가격으로는 채산성을 맞출 수 없는 만큼 조만간 감산에 들어간다.

이처럼 상황이 급속히 악화되자 일본 엘피다가 `일본ㆍ대만 연계`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카모토 유키오 엘피다 사장은 대만 파워칩ㆍ프로모스와 경영 통합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달 6~7일 대만에 들러 도와달라고 지원을 호소했다. 이달 안에 또 한 차례 대만을 방문해 대만 정부 관계자와 은행 관계자들을 만나 지원을 부탁할 계획이다. 엘피다 계획대로 대만 2개 업체와 통합이 이뤄지면 단순 합산해도 시장점유율이 16.2%에서 21.4%로 껑충 뛰게 된다.

이 때문에 반도체 업계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진 2008년 말과 2009년 초에 걸친 반도체 업계 치킨게임이 재현됐다고 분석한다. 당시 대만 반도체 업체들과 일본 엘피다는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까지 코너에 몰렸다. 실제로 2009년 1월 세계 5위 D램 반도체 업체인 독일 키몬다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파산했다. 경기 악화로 반도체 수요가 급감한 데다 가격까지 폭락해 도산한 것이다.

대만 반도체 업체도 도산 직전까지 몰리자 대만 정부가 도움을 청했고 대만 정부도 회사 통합을 추진했다가 각사 이견과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면서 흐지부지됐다.

상황이 다시 어려워지자 사카모토 엘피다 사장이 또다시 해결사로 나선 것이다. 그러나 대만 정부가 적극적 도움을 줄지는 미지수다. 이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기술력ㆍ자본 등에서 격차가 너무 벌어져 도와주더라도 대만 반도체 업체들의 자력 갱생이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경쟁사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삼성전자의 대대적인 투자다. 삼성은 올 한 해에만 반도체 시설 투자에 10조3000억원을 쏟아붓는다. 경기도 화성 16라인 건설을 비롯해 미국 오스틴공장 시스템LSI반도체, 미세공정 전환과 공정 개선에 자금을 투입할 계획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워낙 막대한 돈을 반도체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만큼 경쟁사들은 투자 여력도 없을 뿐 아니라 지레 겁을 먹고 경쟁에 나설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삼성에 의한 승자독식 구도가 굳어진 셈이다. 작년 3분기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글로벌 D램 반도체 시장점유율이 40.7%인데 앞으로 50%까지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경쟁사들은 삼성의 고부가가치화 전략도 겁낸다. 삼성은 지금도 전체 생산제품의 40%만 PC에 들어가는 범용 제품이며 나머지는 PC가 아닌 모바일ㆍ그래픽ㆍ서버용 등 프리미엄 제품이다. 앞선 기술력을 활용해 미세공정에 더욱 박차를 가해 생산성을 높이고 원가를 절감하면 일본ㆍ대만 업체들은 설 땅이 사라진다.

서원석 NH투자증권 연구위원은 "PC제조업체들이 이미 상당량의 재고를 보유 중이며 PC 수요마저 살아나지 않아 오는 3월까지는 지금처럼 낮은 D램 가격이 지속될 것이어서 대만 업체들은 더욱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매일경제 김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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