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설계-기관장에게 듣는다]<5>정연호 한국원자력연구원장

 정연호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 새해 원자력 수출 산업화와 미래형 원전 개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정 원장은 올해가 ‘토끼해’인 만큼 연구개발 현장에서 영특하고 민첩하면서도 부지런히 움직여 세계가 한국의 원자력계를 놀란 ‘토끼눈’으로 바라보게 하겠다는 포부의 일단을 내비쳤다.

 정 원장은 올해 최우선 과제로 일체형 원자로인 ‘스마트’(SMART)의 표준설계인가를 꼽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연내 인가를 획득하겠다는 것. 정부와의 약속 시한도 시한이지만 인가 여부는 과학기술자로서의 자존심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스마트’는 사실 설계도면부터 부품 하나하나까지 100% 국산화한 기술이다. 정 원장은 그래서 더 애착이 간다고 이야기를 건넸다.

 정 원장에게는 지난 2009년 말 큰 성과를 거둔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 수출과 관련해 올해 상세설계를 수행하고 건설허가를 신청해야 하는 일정도 빠듯하다.

 요르단 연구로의 성공적인 건설이야말로 제2, 제3의 연구로 수주 가능성을 타진하는 한편 향후 우리가 세계 시장에서 연구용 원자로의 주요 공급자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냐를 가름할 바로미터로 보고 있다. 정 원장이 한 치의 오차 없는 ‘명품 원자로’ 건설을 내건 이유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정 원장은 세계 최초의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핵연료 재처리공정) 시험시설 구축과 소듐냉각고속로(SFR) 실증로의 개념설계도 완료하고, SFR 종합실증시설 1단계의 시운전까지 올해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

 원자력 수소 분야에서는 중형 헬륨 루프 2차계통 구축과 미국 정부 기술용역 수주 등을 통해 초고온가스로 설계 기술 완성에 한발 더 가까이 간다는 복안이다.

 우리나라 원자력계 최대 현안인 한미원자력협력협정 개정과 관련해서는 후행 핵주기 관련 핵심 하드웨어 및 설계 소프트웨어 개발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고, 미래 원자력 시스템 개발의 성패를 좌우할 핵연료 및 구조 재료 개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임기가 시작된 정 원장은 향후 3년간 우수한 인력 확보와 양성을 경영의 최우선 목표로 삼을 방침이다. 이를 위해 인재 경영, 누구나 인정하는 합리적인 제도에 근거한 투명 경영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원자력이 녹색성장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연구역량을 극대화하는 방안으로는 기능그룹(Functional Group) 육성 방안을 모색한다. 또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원자력 후발국들에 대한 맞춤형 기술 공여 체제를 구축하고, 우수 인력 확보의 일환으로 여성 연구 인력의 확대도 추진한다.

 원자력연이 지난해 원자력 기술 수출로 벌어들인 수익은 총 1320만달러(약 152억원)다.

 정 원장은 올해도 수백억~수천억원에 달하는 각국의 원자로 건설 수주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했다.

 -새해 원자력연이 ‘스마트’ 원자로의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스마트’는 지난 1997년부터 개발해온 우리나라 독자적인 원자로 모델입니다. 지난해 말 교육과학기술부에 표준설계인가(SDA)를 신청했습니다. 일체형 원자로로는 세계 최초의 인허가 절차에 들어간 것입니다. 앞으로 규제 당국인 KINS(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로부터 인허가 심사를 받게 됩니다. ‘스마트’원자로의 안전성과 설계의 적합성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받을 것입니다.

 정부와 개발 완료를 약속한 시한도 올해 말입니다. 수출 경쟁이 점점 심해지는 중소형 원전 시장 선점을 위해서는 시간이라는 인자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현재 미국·러시아·아르헨티나 등이 일체형 원자로를 개발하고 있지만 2012년 상반기는 돼야 인허가 절차를 시작할 것으로 보여, 우리나라가 1년 정도 앞서가고 있습니다. 목표 대로 올해 말에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하면 새롭게 열릴 중소형 원전 세계 시장을 선점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됩니다.

 중소형 원전 시장은 2050년까지 3500억달러(약 390조원) 규모입니다. ‘스마트’ 개발을 연내에 마무리 지어 한국 원자력계의 새로운 수출 전략 상품을 완성하겠습니다.

 -‘스마트’ 원전 연구는 처음 어떤 계기로 이루어졌고, 한-연 협력 등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스마트’는 1980년대부터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추진한 한국표준형원전 원자로계통, 중수로 및 경수로 핵연료 관련 기술과 관련 인력을 사업체로 이관한 뒤인 1997년, 국가 원자력연구기관으로서 국가의 미래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고뇌하고 모색한 끝에 처음 연구개발에 착수하게 됐습니다.

 당시 사업체로 이관한 상용 원전 관련 핵심 기술들이 UAE 원전 수주의 꽃을 피웠듯, 표준설계인가 획득으로 ‘스마트’ 개발에 마침표를 찍고 지난해 구성된 ‘KEPCO 컨소시엄’과 함께 해외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지난해 착공한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 건설에선 올해 어떤 임무가 주어집니까.

 △올해 상세설계를 완성해 요르단 당국에 건설 허가를 신청합니다. 요르단 연구로는 우리가 세계 시장에서 연구로 주요 공급국으로 자리를 굳히느냐를 가늠할 시금석인 만큼, 기관의 역량을 모아 ‘명품 원자로’를 건설할 것입니다.

 지난 2009년 입찰이 진행됐다가 중단됐던 네덜란드 대형 연구로 팔라스(PALLAS) 프로젝트에 대한 입찰이 올해 재개될 가능성이 있고, 남아공·사우디아라비아 등도 연구용 원자로 신규 건설을 계획 중입니다.

 요르단서 수주 이후 이들 나라들이 먼저 한국에 문의를 해올 만큼 인지도가 높아져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 건설에 만전을 기하면서, 연구로 추가 수주를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파이로프로세싱 기술 개발과 한미 원자력협력협정 개정을 R&D 측면에서 어떻게 접목하고 접근할 예정입니까.

 △기관이 당면한 R&D 현안 중 하나가 한미원자력협력협정에 의해 제한 받고 있는 평화적 목적의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연구여건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핵확산 문제에 민감한 미국이 에너지 자원 재활용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게 하려면 어느 정도 성숙된 관련 기술을 미리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원자력연은 파이로프로세싱의 전 공정을 공학 규모의 일관 공정으로 모의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시설인 ‘PRIDE(프라이드)’ 구축을 완료하고, 파이로 관련 한미 공동연구를 재개해 기술의 타당성을 검증할 계획입니다.

 현재 연구인력 규모를 고려할 때 향후 실증 규모의 시스템 개발에 다소 어려움이 따를 수 있는 만큼, 기존의 계획 아래 기관 임무에 적합한 분야의 핵심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을 우선적으로 수행해서 임박한 협정 개정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UAE의 원전 수출을 계기로 원자력계의 인력 수급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방안은 있나요.

 △‘스마트’ 개발과 연구로 수출 등 연구개발과 사업을 수행할 인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정부에서 지난해부터 부족한 인력을 충원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과 배려를 해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연구용 원자로 추가 수주와 국내 신형 연구로 건설 등 후속 대형 사업 착수 시 인력 부족이 예상됩니다.

 정부와 꾸준히 협의하며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습니다. 전문 인력을 적기에 확보할 수 있도록 정원이나 예산 모두에서 정부가 추가적인 배려를 해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장기적인 인력 수급 측면에서 우수 인력이 연구소로 많이 오도록 하려면 기본적으로 대학교수 이상으로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고 봅니다. 주택 지원이라든지, 정년을 대학 수준으로 연장한다든지 하는 큰 틀의 변화가 절실합니다.

 원자력연은 특히 평균 연령이 47세에 달할 만큼 연구인력이 고령화돼 있어 향후 10년간 400여 명의 연구인력이 정년퇴직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에 따라 우수 인력의 경험과 자식이 사장되지 않고 전수될 수 있도록 ‘지식자원 전수 기본방향’을 수립하고 관련 규정을 신설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연구개발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기에 신진 인력의 대폭적 확보가 시급합니다.

 

 <박스>원자력연 연구용 원자로 세계시장 공략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올해 연구용 원자로 세계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다.

 지난 2009년 요르단의 5㎿급 교육 및 연구용 원자로(JRTR) 건설 수주를 계기로 자신감을 얻은 원자력연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발주가 예상되는 각국 원자로 건설 계획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1월 사업 중단이 선언된 네덜란드의 팔라스(PALLAS)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2009년 당시 우선협상대상자로 아르헨티나의 인밥(INVAP)이 선정됐으나 네덜란드 측의 사업예산 미확보 및 기술성 등의 문제로 사업 추진이 중단됐다.

 원자력연 측은 사업이 재개될 경우 다시 응찰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태국도 매력적인 시장이다. 태국은 오는 2021년까지 1000㎿급 원자로 4기를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일본원자력발전이 태국발전공사와 원전 신규도입 지원을 위한 기술협력 협정을 체결해 한발 앞서 있는 상태지만 따라잡지 못할 대상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베트남은 오는 2020년까지 장기 원자력 개발 계획에 따라 1000㎿급 원자로 2기 건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원자력연은 이에 베트남 새 연구로 건설 타당성 공동연구 등을 추진 중이다. 또 사우디아라비아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연구로 사업 지원을 요청할 정도로 적극적인데다 한국과의 관계도 원만해 해볼 만한 싸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오는 2018년 운영을 목표로 발전로 2기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이 나라 동위원소를 판매하는 ‘NPT’가 일단 한국의 연구로 관련 기술에 관심은 표명한 상태다. ‘NPT’는 동위원소의 공급 가능국 예비 결정후 국제 입찰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 원자력 인프라는 미약하지만 원전을 고려 중인 아제르바이젠도 수요자 입장을 살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젠은 연내 연구용 원자로 건설 정책을 결정할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우리나라는 아제르바이젠과 원자력기관 간 기술협력 양해각서를 교환한 상태다.

 

 <박스>정연호 원장은

 정연호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은 지난 1951년 대전에서 태어나 대전고를 나온 대전 토박이다.

 정 원장은 소탈한 성격에 동네 아저씨 같은 편안한 느낌을 줘 주위에서 따르는 사람이 많다. 의사 결정이 빠르고, 판단이 예리해 리더십 측면에서도 평가가 좋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친화형 인물로도 정평이 나있다.

 정 원장은 1975년 서울대 원자력공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에서 원자력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전형적인 원자력 통이다.

 1979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들어와 현재 32년째 근무하고 있다. 그동안 경수로핵연료개발팀장, 원자력정책연구실장, 연구관리실장 및 부장, 경수로핵연료개발부장 겸 대과제 책임자, 선임본부장 등의 보직을 두루 거쳐 2010년 11월 제18대 한국원자력연구원장에 선임됐다.

 핵연료 전문가로 1980년대 원자력 발전소 설계 기술 자립의 전환점이 된 영광원전 3, 4호기 초기노심 및 핵연료 설계를 이끌었다. 1990년대부터는 경수로 핵연료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경수로용 신형 핵연료 기술 개발을 주도한 바 있다.

 정 원장은 2003년 핵연료개발팀 근무시절 연구 5년 만에 고성능 신소재 핵연료 피복관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는데 성공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바쁜 가운데서도 정 원장은 최근 한국원자력협력재단 이사장직까지 맡아, 원자력 국제협력 및 원자력 인력양성과 교육지원 등에 몸을 아끼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