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이슈]북극진동

 지난 16일 부산 용호동 이기대 바닷가. 96년 만의 기록적인 한파가 엄습하면서 짜디 짠 바닷물이 얼어붙었다. 평소라면 인파로 붐빌 새벽 6시 남포동 자갈치시장도 한산한 모습이다. 실외 가판 상인들의 소형 수족관이 얼어붙어 장사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부산의 최저기온은 영하 12.8도. 지난 1915년 영하 14도까지 내려간 이래 부산 기온 관측사상 가장 추운 날씨로 기록됐다.

 ◇온난화가 한반도를 춥게 만든다?=지구온난화로 갈수록 지구가 더워진다는데 한반도에는 혹한이 몰아치고 있다. 온난화 양상이 바뀌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지구온난화 허구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온난화가 몇몇 환경주의자가 만들어낸 허무맹랑한 이론이었던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번 한파 역시 지구온난화의 산물이다. 역설적이지만 온난화로 북극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냉기가 중위도 지역까지 침범해 내려왔다는 설명이다. 이른바 ‘북극진동’ 현상이다.

 북극진동은 북극과 중위도(북위45도) 지방 사이의 기압차가 줄었다가 늘어나기를 반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기압차에 따라 찬 공기가 마치 진동하는 것처럼 위도가 낮은 지역으로 내려왔다가 올라가기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즉 북극의 기온이 떨어져 극지방의 기압이 올라가면 북극진동 지수도 올라가고 중위도에 속한 한반도 기온은 높아진다. 반대로 북극 기온이 올라가면 기압은 내려가면서 북극진동 지수가 낮아진다. 지금과 같은 기온 강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북극진동 현상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북극진동은 북반구 북위 60도 이상의 고위도 해면기압과 중위도 해면기압을 측정해 차이를 계산한다. 0을 기준으로 -5~+5사이 값으로 나타낸다.

 ‘북극지수와 한반도의 기상 인자와의 상관성 분석(박재환, 2010)’에 따르면 지난 2009년 12월 북극진동 지수는 -4를 기록해 195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한반도에는 지난 2009년 연말부터 2010년 연초까지 기록적인 폭설이 관측되기도 했다.

 이처럼 전에 없는 한파는 중위도 지역 대부분 국가에서 기록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11월 최저기온이 영하 18도로 떨어졌고, 중국 남북부 역시 평년보다 10도 낮은 영하 45도까지 내려갔다.

 이 같은 북극진동을 유발하는 지구온난화는 예년과 같은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는 역사상 가장 따뜻한 해 중의 하나로 기록됐을 정도다.

 최근 미국 국립설빙자료센터(NSIDC)는 북극해의 지난달 얼음 면적이 지난 1979년 이래 가장 작은 1200만㎢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동부 시베리아 기온은 평년보다 6~10도 높았고, 캐나다 북극도 평년보다 6도 이상 높게 나타났다. 앞으로도 북극진동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는 이유다.

 여기에다 몽골 전역이 눈에 뒤덮인 것도 올 겨울 추위에 한 몫하고 있다. 폭설을 맞은 몽골의 대평원이 햇빛을 반사해 찬 시베리아 고기압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시베리아 고기압은 매년 겨울 한반도에 찬 공기를 몰고 오는 주범이다. 올해는 한층 더 차가워진 공기로 한반도를 괴롭히고 있다. 현재 시베리아·몽골지역 상층 기류 온도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간 것으로 관측됐다.

 ◇북극진동만 문제인가=지난해와 올해 북극진동이 약화되면서 기록적 한파와 폭설이 기록됐지만, 한반도 이상기후는 꽤 오랜 시간 지속 중이다. ‘한국의 이상기온 변화와 그 요인에 관한 연구(허인혜, 2005)’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부분 관측 지점에서 여름철 이상고온 빈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겨울철 이상저온 빈도는 감소하고 있다.

 특히 도시화 경향이 반영된 지난 30년(1970~2000)간 변화에서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이 같은 경향이 뚜렷했다. 지난 1950년부터 1979년까지 서울과 인천의 여름철 이상고온 일수는 각각 1.1일과 1.4일이었으나 1970~1999년 사이에는 2.1일, 2.3일 수준으로 증가했다. 겨울철 이상저온 현상에서는 서울이 1.4일에서 0.7일로 줄어들었고, 인천은 3.7일에서 2.3일로 감소했다.

 이는 기상재해로 인한 연간 재산 피해액 추산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기상재해에 따른 우리나라 연평균 재산피해액은 약 2조3000억원으로 1990년대(약 7000억원)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1916년 이래 기상재해에 따른 연간 재산 피해액이 가장 컸던 10번 중 6번이 2001년 이후에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해와 올해 두드러진 경향을 보이는 북극진동과 별개로 한반도 전체가 온난화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와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다.

 특히 지난해는 기상관측 사상 한반도 이상 기후가 가장 두드러진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기상청과 녹색성장위원회는 ‘2010 이상기후 특별보고서’에서 “2010년은 ‘기후변화 종합세트’라고 할 만큼 다양하고 강도 높은 이상기후 현상이 한반도를 강타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올해 첫 이상기후로 ‘눈 폭탄’을 꼽았다. 지난해 1월 4일 서울에 25.8㎝의 눈이 쏟아져 신적설(새로 내린 눈) 관측을 시작한 1937년 이래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만 한파·폭설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2조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3월 하순부터 4월 말까지는 이상저온이 덮쳐 4월 평균기온이 37년 만에 가장 낮았다. 봄철(3~5월) 일조시간도 평년보다 153.6시간 적었다.

 ‘서늘한 봄’이 지나자 여름에는 폭염과 열대야가 찾아왔다. 6~8월에는 92일 중 81일의 전국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았다. 가을에는 기록적인 ‘물 폭탄’이 강타했다. 추석 연휴 첫날인 9월 21일 서울에 259.5㎜(역대 2위)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광화문을 비롯한 시내 곳곳이 물바다가 됐다. ‘봄의 불청객’으로 알려진 황사가 가을인 11월 한반도를 엄습하기도 했다. 11월11일 서울의 황사 농도는 1191㎍/㎥을 기록해 가을철 최고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상기후는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었다. 파키스탄에서는 7월 4일간 내린 비로 지난 1929년 이래 최악의 집중호우 피해를 입었다. 이재민만 약 2000만명이 발생했으며 국토의 20%가 침수됐다. 재산 피해만도 150억달러에 달했다. 중국에서는 6월에 내린 13일간의 폭우로 381명이 사망하고 약 15조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해수면 온도의 급격한 변화를 의미하는 ‘엘니뇨’ ‘라니냐’ 현상도 여전히 지구의 이상기후를 부추기고 있다. 지난 2009년 12월 한 지역의 월평균 해수면 온도 편차가 +1.8도로서 지난 1997년 11월의 +2.8도 이후 가장 강한 엘니뇨가 발생했다. 지난해 6월부터는 해수면 온도 편차가 -0.4도 이하로 떨어진 이후 9월 -1.6도까지 급격하게 하락했다. 엘니뇨가 라니냐로 급선회하면서 기후 이변을 초래했다는 설명이다.

 

 ◇북극진동(Arctic Oscillation)=북극에 있는 찬 공기의 소용돌이(제트기류)가 수십 일 또는 수십 년 주기로 강약을 되풀이하는 현상. 북극의 기온이 상승하면 찬 공기 소용돌이가 약해지고 북극 지역의 찬 공기가 아래로 남하해 한반도를 포함한 중위도 지역에 한파가 온다. 북극진동이 강하면 양의 값, 약하면 음의 값으로 지수를 표시한다. 현재 마이너스 상태다.

안석현기자 ahngija@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