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규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56)은 실물 경제와 현장을 중시하는 기관장이다. 오랫동안 지식경제부 등 실물경제와 밀접한 분야에서 일을 해오면서 쌓아온 습성이 몸에 배어 있다. 친화력도 대단하다. 그런 박 이사장이 산업단지공단 사령탑을 맡은 지 3년째를 맞았다. 전국 산업단지의 세밀한 부분까지 챙기는 박 이사장의 신년 계획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박 이사장은 우선 산업단지를 단순히 관리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산업단지를 지방자치단체와 공동으로 적극 개발해 보겠다고 포부를 얘기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맞춤형 산업공단의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산업단지 개발을 위해 올해 초 조직을 큰 폭으로 개편했다. 보다 공격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조직의 틀을 바꾼 것. 산업단지 관리방식도 입주기업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자생적인 클러스터 사업 육성방안이 그래서 나왔다.
새해 집무실에서 만난 박 이사장에게 연초 단행한 조직 개편의 의미를 물었다.
-새해 조직 개편을 상당히 큰 폭으로 단행했는데 특별히 이유가 있으신가요.
▲산단공은 급변하는 기업 환경에 맞춰 기존의 관리기능 중심에서 벗어나 신규 전략사업을 적극 발굴하고 기업지원기관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임원급인 개발사업본부장이 구조고도화 사업과 산업단지 개발사업을 총괄 지휘토록 했습니다. 구조고도화사업처를 신설하고 산하에 민자유치센터를 설치,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사업의 정책기획과 현장 추진력을 강화한 것이지요.
또 본사에 산업단지사업처를 신설하고 본사 직할로 오송아산사업단과 원주이천사업단을 설치해 신규 산업단지 개발사업의 현장 추진기능을 강화했고 기업 지방이전 지원과 외국인 투자지역의 투자 유치, 관리지원을 위해 투자지원센터도 설치했습니다. 보다 기업 현장에 가깝게 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난해부터 QWL(Quality of Working Life) 밸리 조성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올해 중점 사업으로 추진 중인 QWL 사업 계획과 의미는 무엇인지요.
▲국내 산업단지가 당면하고 있는 주요 현안은 너무 낡았고, 생산기능 중심으로 조성되었다는 점입니다. 산업단지가 국민경제 성장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지만 수십년이 지나도록 적절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낡은 생산 공간으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지요.
일례로 반월단지는 적절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지원시설 용지가 전체의 2.5%에 불과합니다. 간이컨테이너 등 50여개에 이르는 불법 판매시설(식당) 등이 난립하고 있지요. 남동단지는 주차장 부족으로 일일 불법주차가 9000대를 넘는다고 합니다. 산업단지의 경쟁력이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낙후된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게 QWL밸리 조성의 최종 목표입니다.
기업지원시설을 늘리고 산업단지에 문화·복지·학습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제조업 중심의 입주환경도 개선해야 합니다. 제조업 중심으로 산업단지가 이뤄지다보니 혁신역량이 떨어지는 게 현실입니다. 대학·연구소 등과의 지원협력체제를 마련해 제조업체와의 교류협력 네트워크을 확대하며 혁신역량을 높여야 합니다.
-QWL밸리 조성에 관해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우선 오는 2013년까지 4개 산업단지(남동, 반월·시화, 구미, 익산)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합니다. 총 1조3700억원을 투입해 4개 단지에 민자, 지자체 사업을 포함한 총 30개 세부 사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지식산업센터, 기숙사형 오피스텔, 비즈니스센터, 보육시설, 주차장, 진입도로 등 기업지원 및 편의시설 확충 △산학융합지구 6곳 조성 △현장 중심의 산학융합형 교육 시스템 구축 △산업단지 문화·복지 프로그램 운영 △친환경 녹색산업단지 조성 등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국가산업단지에 ‘산학융합지구’ 조성도 적극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QWL밸리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산업단지의 산학연계 기능을 확충하고 산-학 간의 유기적인 인력교류 확대를 위해 산학융합의 수요가 큰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올해부터 3개의 산학융합지구를 시범 조성할 계획입니다. 지구별로 400여명의 학생, 3~4개 학과 규모의 산업단지 캠퍼스, 200여개의 기업연구소 입주가 가능하도록 2만㎡ 규모로 시범지구를 조성할 계획입니다.
산학융합지구 조성사업과 별도로 G밸리에 산학캠퍼스촌 건립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산학캠퍼스촌은 대학·중소기업연구소·생활관 등 업무 지원시설이 복합된 공간으로 교육·연구·생활이 가능하도록 할 것입니다. 현재 수요조사 및 조성계획 용역보고를 완료했으며 최종 사업계획을 확정짓고 향후 제반절차를 거쳐 올해 안으로 기본설계, 시공사 선정 등을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광역 클러스터(미니 클러스터 등) 등 산학 네트워크 프로그램은 올해 어떻게 진행됩니까.
▲현재 전국적으로 81개의 미니클러스터가 활동 중이며 여기에 무려 4600개의 기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참여 회원을 더욱 확대하고 광역권별 예산 배정으로 지역의 자율성 확대와 경쟁을 유도할 것입니다. 또 미니 클러스터(소규모 산학연 협의체) 졸업·퇴출제도를 도입, 자생적인 클러스터 활동을 촉진하겠습니다. 특히 광역별 연계 및 융합화를 촉진하는 광역권 연계사업을 활성화하고 전략적 해외시장 개척 및 해외 클러스터와의 교류협력도 확대할 계획입니다.
-최근 국가산업단지 관리방식을 입주기업의 자율 관리를 높이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요.
▲오늘날 산업단지 관리는 과거의 규제와 행정 중심에서 탈피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환경과 지원기능 확대라는 포괄적 개념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산단공도 기존의 획일적이고 규제 중심의 산업단지 관리에서 입주기업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한 수요자(입주기업) 중심의 산업단지 관리제도 전환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그동안 국가산업단지 관리방식을 놓고 논란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관리하는 권한을 정부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권한 자체의 이양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물론 산업단지 관리 분야에서 입주기업이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 일정 부분 자율권을 부여하는 방안은 필요합니다. 가령 현재 G밸리(서울디지털단지)의 경우, 각 지식산업센터 입주자협의회에 자율관리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경영자협의회·가디컴·기업인연합회 등 기업인의 요구사항을 면밀히 검토하여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산업단지 관리방식이 규제 일변도에서 업계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될 것입니다. 산단공은 올해 ‘자율성’과 ‘자생적’이라는 키워드에 보다 의미를 둬 제반 현안 과제를 추진할 것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산업단지공단의 생태산업단지 구축사업=산업단지공단이 추진 중인 생태산업단지 구축사업(EIP)은 자연생태계를 모방해 산업단지에서 발생하는 폐기물과 폐열을 다른 기업의 원료나 에너지로 재사용함으로써 자원 효율성을 높이고 오염을 최소화하는 녹색산업단지 구축사업이다.
국가 생산기반이 밀집돼 있고 에너지 다소비 공간인 산업단지를 대상으로 생태산업단지 구축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산업단지를 녹색공간으로 재탄생시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생태산업단지 사업은 폐기물 처리비용 및 생산과정에서 원료 및 에너지 효율성을 증대,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폐기물과 폐열의 배출을 최소화함으로써 환경오염 저감은 물론이고 기후변화의 원인인 온실가스 감축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시범사업이 지난해 마무리됐고 현재 2단계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거점-연계’ 형태의 광역화를 올해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기존 반월시화·울산·여수·청주·포항 5개 산업단지에서 올해는 총 38개 산업단지(거점8·연계30)로 확대됐다. 시범사업 기간 동안 39개 과제를 완료해 연간 1500억원의 경제효과 및 CO2 71만톤 저감효과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시화 염색폐수열 재활용 사업과 울산 성암소각장 사업 등이 벌써부터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시화 염색폐수열 재활용 사업은 염색공장에서 발행하는 염색폐수 열원을 회수 후 80도로 승온시켜 인근 열병합발전소(KG에너지) 보급수 열원으로 공급하는 사업으로 11월 프로젝트가 완료될 예정이다.
울산 성암소각장 사업은 쓰레기 소각장에서 얻어지는 스팀을 인근 공장(효성)에 공급해 석유에너지와 온실가스 절감 효과를 거두는 프로젝트다. 연간 약 39억원의 연료비 절감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EIP구축 사업은 오는 2015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될 예정인데 부산물교환망 구축(2011년), 청정생산체제 구축(2012년), 녹색인프라 구축(2014년) 등을 단계적 추진 전략을 내놓고 있다.
◇박봉규 이사장은=박봉규 이사장은 행시 17회로 산업자원부 무역투자실장과 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대구광역시 정무부시장을 거친 정통 산업정책, 무역투자 전문가다.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재직 시절 무역과 외국인 투자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특히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 투자 주무국장인 국제협력투자심의관으로 외환위기 극복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KOTRA에 ‘외국인 투자지원센터’와 ‘옴부즈맨 사무소’ 등을 마련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박 이사장은 해박한 실물경제 지식과 함께 항상 학습하고 토론하는 것을 즐긴다. 산단공 이사장 취임 이후 출근시간 이전에 명사초청 강연과 학습토론 등을 진행하는 ‘브라운 백(Brown Bag) 미팅’을 도입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매달 2회씩 본사와 전 지역본부 직원이 참여하는 이 미팅은 직원들의 교양강화 및 근로의욕 고취에 많은 보탬이 되고 있다.
또 조직문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공단의 위기의식을 인식시키는 한편 조직의 활로 모색을 위해 직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에 나선다. 바쁜 경영활동에도 수시로 직원들과 식사자리 등을 마련해 조직발전을 위한 의견과 아이디어 수렴에 여념이 없다. 그의 생활 신조는 논어(論語)에 나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신뢰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다. 직원과 경영진, 노와 사, 그리고 공단과 입주기업들이 상호신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항상 강조한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