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5000억원이나 들이는데 과학(연구)도 제대로 못하고 외국인(과학자)도 안 오면 어떡합니까? 그래서 나서기로 했습니다."(김제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ㆍ사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입지 선정을 둘러싸고 정치인들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연일 "어디 어디로 가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유명 과학자들이 "주인공인 우리 의견을 들어달라"며 입지 선정에 적극 개입하기로 했다.
김제완 명예교수(1993년 대한민국과학기술상)를 중심으로 노태원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2010 국가과학자), 노정혜 서울대 생명과학과 교수(2006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 금종해 고등과학원 부원장(2008 한국과학상), 이영욱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한국인 첫 미 NASA 허블펠로) 등 대표적 과학자 10여 명은 27일 오전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 모여 `과학벨트 입지`에 대한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이번 과학자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김제완 교수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과 지자체들의 과학벨트 설전에 대해 "정치인은 빠지고 과학자들이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글로벌 과학거점을 조성하기 위한 과학벨트 조건에 대해 의견을 모아 그 내용을 정부에 전달할 예정인데 특히 첫 모임 뒤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참여 과학자 수를 확대하고 입지조건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최적 후보 지역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입지 선정을 위한 주요 원칙으로 △과학벨트에서 무엇을 연구해야 과학자들에게 매력적인 프로젝트가 될 수 있는가 △외국 과학자들이 거주하고 연구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들었다.
김 교수는 또 "외국 과학자들이 한국에 와서 6개월 이상 머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계획대로 국제적 연구소로 성장하려면 외국 연구자들이 쉽게 올 수 있어야 한다. 또 음식을 먹을 곳도 많아야 하고 음악당 등 취미생활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3조5000억원을 투자해 조성하는 과학벨트에는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가 들어서며 연구원은 약 3000명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정부는 전체 연구원 중 30%는 외국인으로 채운다는 계획이다. 과학벨트가 벤치마킹하는 대상 중 하나인 일본 이화학연구소(리켄) 외국인 연구자 비율이 약 30%다. 또 스위스에 있는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는 매년 1만명에 가까운 연구자들이 연구소를 찾아 명실상부한 입자물리 메카로 자리 잡고 있다.
김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양성자가속기 입지 선정을 위한 용지선정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경주에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을 짓기로 하면서 보상 차원에서 경주로 결정된 것"이라고 회고했다.
과학자들 모임과 관련해 채영복 전 과학기술부 장관은 "(입지 선정은)과학자들에게 맡기고 과학자들이 책임지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과학벨트를 조성할 때 과학기술 진흥에 무게를 둘 것인가 아니면 지역균형발전에 둘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 필요하다"며 "글로벌 과학거점을 만들려면 외국인들이 가족과 함께 와서 장기간 체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하고 주변에 대학도 많아야 한다"고 말했다.
홍승우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는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
RN)는 스위스 제네바 도심에서 10㎞ 정도 떨어져 있고 공항에서도 차로 15분밖에 걸리지 않아 과학자들이 쉽게 오갈 수 있고 거주 환경도 우수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민경찬 과실련(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상임대표(연세대 수학과 교수)도 조만간 과학기술인들의 뜻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하겠다는 계획이다.
[심시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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