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설계-기관장에게 듣는다]<14>문길주 KIST 원장

[새해 새설계-기관장에게 듣는다]<14>문길주 KIST 원장

 지난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뒀다. 세계적 연구 성과를 상징한다는 NSC 논문이 2010년 한 해 동안 5편이 나왔다.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기관들이 한 해 1~2편에 불과한 것에 비교할 때 탁월하다는 평가다.

 녹색기술 분야의 연구역량을 평가하는 GATI 지수에서도 삼성, LG 등 대기업을 제외한 국내 연구기관 가운데 1위를 차지해 그 역량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문길주 원장이 생각하는 실적은 다른 것이다.

 “KIST가 개발한 영어교사 로봇이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2010년 50대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이름을 올린 것이 더 자랑스럽습니다. 로봇을 이용해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리라고는 미국인들은 결코 생각지 못했던 부분일 겁니다.”

 문 원장이 강조하는 ‘창의적 성과’를 대표하는 사례다.

 “과학기술 10대 뉴스에 KIST가 만든 주행자율 로봇 전기자동차가 올랐는데 이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남들이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만들었다는 것, 지난해 KIST가 거둔 진정한 실적 아닐까요.”

 지난해 말 취임한 문 원장은 취임 후 불과 두 달 정도가 지났지만 KIST를 변화시킬 많은 일들을 준비하고 있다.

 “잘하는 것보다는 국가미션을 하고 싶습니다. 어려운 것이라도 한번 도전해보자하는 얘기를 연구원들에게 많이 합니다.”

 그는 국가와 사회가 기댈 수 있는 연구소를 만들고 싶어 한다.

 “사실 촛불시위, 구제역, 독감 등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도 과학자들은 입을 열지 않고 연구비만 달라고 했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이럴 때 과학자들이 뛰어들 수 있어야 하고 국민들로부터 믿음을 얻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KIST의 규모와 환경도 대폭 변화시키려고 한다.

 젊고 훌륭한 과학자들이 오고 싶어 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그는 새해 누구보다 바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조직이 바뀌었습니다. 올해 조직의 운영 목표는 무엇입니까.

 ▲KIST는 머리 역할은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신중히 생각하는 것이 정책연구소입니다. 전체 정책을 하다보면 우리 분야는 물론 다른 분야도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KIST는 국내 최고 연구소가 아닌 세계적 연구소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세계적 연구소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선진 경영시스템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고, 이를 위해서 기존의 경영시스템과는 차별되는 새로운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기술정책 기능 강화를 위한 원장 직속의 기술정책연구소 신설, 조직의 창의성 극대화를 위한 창의경영팀 신설 등이 최근 조직개편의 핵심입니다.

 연구조직 개편과 관련해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연구본부 또는 센터를 탁월성 연구소로 육성, 소장에게 평가 및 연구비 배분을 위임하는 책임경영체제를 구축할 예정입니다.

 -‘할 수 있는 과제’에서 ‘해야만 하는 과제’로 연구 분야에 집중도를 높인다고 하셨는데 해야만 하는 과제란 어떤 것인가요.

 ▲출연연의 미션은 대학의 기초연구와 기업의 상용화 연구 사이의 가교 역할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KIST와 같은 출연연이 해야만 하는 연구란 남들보다 한 발 앞서 미래를 여는 프런티어 연구를 말합니다. KIST는 대학과 비교했을 때 우수 연구인력 간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고, 기업이 시작하기 어려운 미래 지향적 연구를 시도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는 곳입니다. 앞선 사고를 통해 미래를 열어가는 연구가 KIST가 ‘해야만 하는 연구’이고 올해부터 ‘해 나갈’ 연구입니다.

 -연료전지와 뇌과학 분야 외에 추가로 KIST가 집중할 연구 분야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임기 중에 5~6개의 프로그램을 선정하여 연구비를 집중 투입하고, 수행과정을 직접 챙길 예정입니다. 플래그십 프로젝트로 명명할 예정인 이 과제들은 KIST의 글로벌 리더십을 상징하는 대표적 프로젝트가 될 것입니다. 현재 뇌과학, 현실과 가상의 통합을 위한 인체감응 솔루션, 바이오닉스, 그린 에너지 뱅크 사업 등을 후보군으로 검토 중이며, 준비가 완료된 과제부터 순차적으로 시작할 계획입니다.

 지금까지는 각각의 분야에서 높은 성과를 냈는데 앞으로는 화공, 재료, 소재, 의과학 등을 같이 놓고 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의적이고 도전적 연구를 많이 강조하시는데요. 이를 장려하기 위한 정책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KIST는 그 어떤 조직보다 창의와 열정이 필요한 곳입니다. 창의와 열정 없이 남들보다 앞선 생각으로 미래를 여는 연구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실패가 두려워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조직에는 미래가 없다고 봅니다. 전략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과는 별도로 연구원들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꽃 피울 수 있는 소규모 프로젝트도 적극 지원할 생각입니다. 또 연구원들이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마련할 생각입니다.

 자율적으로 평가하고 책임도 주려고 합니다. KIST에 들어오면 정말 똑똑해진다 하는 얘길 들을 정도로 우수인력 양성에도 힘써야죠.

 -세계적 연구기관과 경쟁하기 위한 양적 성장이 필요한 시기라고 하셨는데 올해 어느 정도의 양적 성장을 목표하십니까.

 ▲양적 성장은 단기간에 이루어나가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세계적 연구기관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연구 인력과 예산 규모는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글로벌 연구소가 되기 위해서는 연구 인력의 20% 정도는 외국인 연구자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며, 글로벌 캠퍼스도 확대해 나갈 생각입니다.

 -취임 일선에 제시하신 3대 키워드 ‘미래를 여는 연구소’ ‘세계를 향한 연구소’ ‘더불어 가는 연구소’를 설명해 주신다면.

 ▲‘미래를 여는 연구소’는 앞서 말씀드린 앞선 사고로 미래를 여는 프런티어 연구를 수행해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향한 연구소’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겠다는 뜻이며, ‘더불어 가는 연구’는 개방형 R&D 플랫폼 구축을 통해 산학연이 함께 화합해 나가면서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문화를 구축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출범으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되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내부 조직문화는 어떻게 끌고 나갈 계획인지요.

 ▲KIST를 비롯한 출연연을 둘러싼 외부 환경의 변화는 위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한 혁신의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혁신의 과정 속에 출연연구소 가운데 대표성을 갖는 KIST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기꺼이 맡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과학계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일까요.

 ▲중요한 사안임은 분명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과학벨트를 만들자고 하는데 과학자들의 의견이 제일 먼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의 입에서 이런 사람이 가야하고 이런 그림 그리고 이런 데로 가야 한다고 하는 얘기가 나와야 한다. 과학자들이 모이는 기구를 만들려면 과학자들의 얘기를 들어야 합니다.

 지자체가 나서서 많은 얘기를 하는데 과연 다른 지역에 있는 과학자들이 가고 싶은 곳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과학자들이 기존의 것을 버리고 그곳에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줘야 합니다. 이런 것은 돈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닙니다. 앞으로 이런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11 중점 추진사업은>KIST의 3대 키워드, ‘미래를 여는, 세계를 향한, 더불어 가는’

 KIST는 앞으로 KIST가 지향할 키워드로 ‘미래를 여는, 세계를 향한, 더불어 가는 연구소’를 제시했다.

 오는 2016년 창립 50주년을 맞는 KIST는 이 같은 방향을 제시하고 최근 출연연 거버넌스 개편 등 과학기술계를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세계적 연구소로의 도약을 모색 중이다.

 ‘미래를 여는 연구소’는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글로벌 어젠다형 연구와 향후 20년 미래를 내다보는 프런티어형 연구에 기관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래를 위한 과제를 발굴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연구자들이 창의적 연구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자율적이고 유연한 제도를 마련해 실패를 용인하고, 도전을 장려하는 토양을 마련할 방침이다.

 ‘세계를 향한 연구소’가 되기 위해 기관 경영의 모든 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구해 글로벌 인재가 모여 글로벌 커뮤니티를 주도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세계적 연구소에 걸맞은 새로운 기관 운영 시스템을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또 세계적 연구소와 경쟁하기 위해 질적 성장에 못지않게 양적 성장을 통한 임계규모 달성도 중요하다고 보고, 연구비와 연구인력 규모를 확대해 도약을 위한 기반을 갖출 계획이다.

 ‘더불어 가는 연구소’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으로서 국내 최초의 출연연답게 타 연구주체와 조화롭게 발전해갈 수 있는 개방형 혁신체계를 구축하고, 국가 R&D 네트워크의 플랫폼을 제공하는 허브 역할을 담당할 계획이다.

 또 다양한 과학나눔 활동과 체험 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과 함께하는 연구소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도 한창이다. 당장 올해 안에 취약·소외 계층에 대한 과학나눔 캠페인 등을 전개해 나갈 예정이다.

 

 <문길주 원장은>

 KIST 문길주 원장은 1978년 캐나다 오타와대 기계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기계·환경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1984~1991년 에너지 시스템과 전기차, 무인항공기를 제작하는 미국 에어로버론먼트사와 환경 분야 연구소인 인터폴사에서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1991년 국내 환경 분야에서 연구 활동을 하기 위해 KIST 지구환경센터장으로 부임한 이후 강릉분원장, 부원장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는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장을 맡아 근무한 바 있다.

 환경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성과로 인해 지난 2005년에는 제15회 과학기술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국제 환경연구 분야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그는 국제대기보전세계대회 부회장직을 겸하고 있다.

 평소 친근하고 자상한 이미지의 문 원장은 연구원들에게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만큼은 세계를 선도할 수준까지 가야 한다는 점을 항상 주문한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