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사 직원 A씨. 이번주 초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4억원으로 1억원을 더 올려달라"는 전화를 불쑥 받았다.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은 A씨는 급전을 마련할 길이 없어 은행대출과 함께 수년째 가입한 주식형 펀드 환매를 고려 중이다. A씨는 "1억원을 올려주지 않으면 막무가내로 전세계약을 깨겠다는데 어떡하느냐"며 "주변에 전세금 폭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펀드를 깨거나 주식을 팔려는 지인들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전세금 폭등에 개미투자자들은 울상이다.
코스피가 2100 고지를 넘어 쾌속 순항 중이지만 동참하기는커녕 보유한 펀드나 주식마저 울며 겨자 먹기로 팔아야 할 처지에 놓인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여의도나 강남엔 교육과 직장 문제로 다른 지역의 살던 집을 전세 놓고, 전세로 이사온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원래 있던 집 전세금을 올려봐야 지금 살고 있는 집 전세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모자란 돈을 구하려면 예금이든 펀드든 뭐라도 깨야 한다.
집 있는 직장인들은 그나마 형편이 낫다. 도미노 폭탄을 맞은 집 없는 개미투자자들은 울고 싶은 데 뺨 맞은 격이다.
회사원 B씨는 "3년 동안 가입한 적립식 펀드를 더 묻어두고 싶은데 전세금 내려면 어쩔 수 없이 환매해야 할 상황"이라고 한숨지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번지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금 총액은 최근 2년간 무려 40조원이 늘었다. 전세금 급등은 서민들에게 `급전`을 요구한다는 면에서 주택 매매값 상승보다 단기적으로 살림살이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전세금 폭등은 주식 시장의 개인투자자 중에서 `부자와 개미` 간 양극화를 부채질하기도 한다. 최근 증시로 되돌아온 개인들은 `자문형 랩`에 억원대 이상 여윳돈을 맡길 만한 거액 자산가들이 많다는 분석이다. 전세금 폭등과는 무관한 부류라는 얘기다.
전세금 걱정에 시름하는 서민에게 "개인들이 돌아왔다"는 뉴스는 "기관이나 외국인 큰손이 돌아왔다"는 말처럼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코스피가 2000에 오르는 동안 외국인과 대형주에 밀려 철저히 소외됐던 많은 개미들이 2000을 넘어서자 또다시 전세금 급등이라는 복병을 만나 소주 한잔에 위로를 받아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였다.
[매일경제 황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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