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2년을 넘기면서 세계의 권력과 학자들에게 팽배했던 공포감은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많이 누그러졌다.
하지만 누구도 미끄러운 눈이 다져져 꽁꽁 언 길을 자신 있게 내딛지는 못했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은 모두 중국, 인도,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리스크가 터질까봐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달 26~30일(현지시간) 닷새간 열린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가장 주목받은 핵심은 `힘의 이동(Power Shift)`의 결과물인 `리스크의 이동(Risk Shift)`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보스 현지에서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한 하마다 주니치 도쿄대 총장은 "이집트와 튀니지 소요사태에 전 세계가 예전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미 전 세계 경제의 견인차가 이머징마켓으로 넘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동반성장`(Inclusive Growth)이라는 용어도 같은 맥락이다. 그동안 선진국들이 세계 경제를 끌어왔으니 이제는 신흥국들이 힘들어하는 선진국 경제까지 견인해달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천더밍 중국 상무부장이 "중국이 미국에서 수입하는 물량은 5년 후 지금보다 2배가 될 것"이라고 밝힌 것도 `동반성장`에 호응하겠다는 의지 표현이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세계 경제는 반쯤 차 있는 물컵(Economic glass is half full)"이라고 했다. 선진국 경제가 퇴보하고 신흥국이 치고 올라가면서 선진국 못지않게 신흥국이 글로벌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자리잡았다는 얘기다.
반면 세계 경제의 견인차가 신흥시장으로 넘어옴에 따라 신흥시장의 인플레이션 위험이 다보스포럼에서 꼽은 최대 리스크 요인으로 떠올랐다.
수실로 밤방 유도유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전 세계 인구는 올해 70억명을 넘어 2045년에는 90억명을 돌파할 것"이라며 "그중 절반이 아시아에서 거주하게 될 텐데 에너지, 식량, 원자재는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그는 통화전쟁, 무역전쟁에 이어 원자재전쟁(Commodity War)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집트나 튀니지 사태는 신흥시장에 가해지고 있는 물가 압력과 무관하지 않다.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는 "많은 국가가 인플레이션 문제가 자국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하지만 경제의 중심이 신흥시장으로 옮겨가면서 지정학적 리스크(Geopolitical Risk)와 글로벌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가 더욱 중요한 리스크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 부활 역시 다보스에서 커다란 이슈였다.
하지만 경제 부활을 외치는 정상급 인사들의 뒤편에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부 장관이 "미국이 위기의 정점을 확실히 넘겼다"고 밝혔지만 28일(현지시간) 발표된 4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기대에 못 미친 3.2%에 불과했다.
유럽 정상들이 다보스포럼에 대거 출동해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안정된 곳"(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유로화 붕괴를 좌시하지 않을 것"(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이라고 말했지만 루비니 교수는 "근본적 문제가 남아 있어 유럽 각국의 세금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보스=매일경제 임규준 부국장 기자/신현규 기자/윤원섭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