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대니얼 벨의 `기술 혁명`

 “세계는 지금 돌이킬 수 없는 제3의 기술혁명을 맞고 있으며 얼마나 확산될 것인지는 각 사회의 경제여건과 정치적 안정에 달려 있다. 제3의 기술혁명은 이전의 두 기술혁명이 산업화에 미친 영향보다 훨씬 큰 영향을 줄 것이다. (각 국가는) 변화를 수용하고 순조로운 이행을 위한 사회적 토대를 창출하는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1990년 7월의 어느 날, 한국을 찾아온 일흔의 노교수는 ‘제3의 기술혁명’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정보통신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당시는 민주화의 열망이 국내외 곳곳에서 터져 나오던 시기였다. 유럽에서는 동독과 서독 통일이 초읽기에 들어갔으며 소련은 새 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흐름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 역시 1987년 민주항쟁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처럼 정치 제도를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던 그때, 기술 혁명이란 말은 모두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를 염원하는 욕구를 수용하는 일만으로도 벅찬 정책 입안자에게 기술혁명 토대를 구축하는 정책을 수립하라는 목소리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노교수는 한국까지 방문해 그 생경한 이론을 주창했다. 그가 바로 지난달 25일(현지시각) 별세한 대니얼 벨 미국 하버드대 교수다.

 

 ◇탈산업사회를 준비하라=벨 교수는 앨빈 토플러, 피터 드러커 등과 더불어 미래학자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1960년 출간된 저서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그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벨 교수는 이 책에서 “사회주의 이념이 주도하는 세계가 곧 끝날 것”이라고 주장해 주목을 받았다. 1973년에는 ‘후기 산업사회의 도래’로 또 한 번 파장을 일으켰다. 산업 사회 이후의 모습이 분명하지 않은 시기에 정보화시대를 예견한 것이다. 벨 교수는 인류가 이룩한 사회의 발전상을 전산업사회-산업사회-탈산업사회로 구분했다. 전산업사회에서 인류가 농업이나 어업 등에 의지했다면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중심축이 자본과 노동으로 이동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세계는 정보와 지식을 기반으로 한 사회로 변화하는데 이 사회가 바로 탈산업사회다. 분업과 대량생산으로 지탱되던 사회는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네트워킹으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이는 인구 팽창, 농촌의 도시화, 인구의 도시집중 등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라는 것이 벨 교수의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그의 이론에 대해 ‘사회 전체 영역이 탈산업사회로 획일적인 변화를 거친다’는 뜻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그는 기술 결정론적 낙관주의자라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산업사회가 경제의 농업 부문을 제거하지 않았듯 탈산업사회도 산업사회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또 1999년 내놓은 개정판에는 “나는 기술결정론자가 아니다. 왜냐면 모든 기술이 항상 사회를 틀 지우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은 변동의 중요한 도구다. 기술이 사회 변화를 결정짓지는 않지만 수단과 가능성을 제공한다”며 자신을 향한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국내 IT 발전 기틀 마련=1990년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는 벨 교수를 초청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항쟁 이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임금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저임금 수출로 버텨온 체계의 이점은 조만간 상실할 수순에 놓여 있었다. 따라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벨 교수의 주장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요구를 반영하듯 벨 교수는 우리나라에 제3의 기술혁명을 주목하라고 주문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제3의 기술혁명이란 증기력의 도입과 전기·화학의 혁신에 이어 당시 선진국 중심으로 확산되던 컴퓨터와 통신 및 이들의 결합에 의한 정보통신의 혁명을 말한다. 그는 새로운 혁명을 가능케 하는 4가지 기술혁신으로 △모든 전기·기계 시스템의 전자화 △전도 장치나 전파변환장치의 소형화 △정보가 2진수의 숫자로 표시되는 디지털화 △사용자가 다양한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소프트웨어를 들었다.

 벨 교수는 “(신기술은) 하이테크라는 말이 암시하듯 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관계를 재조직하는 총체적인 변동을 불러올 것”이라며 다음 세대에서는 우리 모두가 컴퓨터에 파묻혀 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이론을 반영하듯 우리나라는 정보기술(IT)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CDMA·LTE 등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기술이다. 인터넷 인프라 역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달라진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당시로서는 먼 미래의 일로만 여겨졌던 ‘스마트워크’는 거의 일상이 돼가고 있다. 사람들은 손안의 PC라고 불리는 스마트폰을 들고 이동 중에 이메일을 확인하고 업무를 처리한다. 영상통화 등의 발달로 지구 반대편과도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벨 교수는 역기능도 제시했다. 특히 그는 통신 혁명의 신속성이 인간 행위의 규모를 변화시키기 때문에 세계는 점점 더 불안정한 성격의 상호의존적 국제경쟁체제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따라서 어느 한 부문에 충격이나 혼란이 생기면 다른 모든 부문이 즉각적인 여파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근 트위터를 통해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간 이집트 사태 등으로 그의 이론은 어느 정도 실현된 셈이다. 지구 반대편 국가의 경제 위기가 순식간에 우리나라의 주가와 경제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논쟁거리를 던지다=벨 교수는 미국 내 신보수주의자로 분류된다. 그는 ‘이데올로기의 종언’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복지국가의 용인, 권력의 분권화, 다원적 정치체제에 대한 합의가 이데올로기 시대의 종언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 책에서 “‘산업이 발달할수록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이 첨예해진다’는 사회주의 이론은 맞지 않으며 오히려 산업화가 진행할수록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관계가 극복된다”고 내다봤다. 이후 탈이념, 기술 중시 등 그가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통해 주창한 내용은 신보수주의자에게 하나의 지침이 됐다. 피터 드러커의 ‘자본가 없는 자본주의’와 같은 주장 역시 그들이 바라본 장밋빛 미래 중 하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21세기인 지금에 와서도 실업률 상승, 대량 실직 사태 등은 각국의 골칫거리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그만큼 고용 증가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IT 중심으로 빠르게 체질 변환을 이뤄냈지만 ‘고용 없는 성장’인 탓에 많은 이들이 그 과실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보가 중요 요소로 부각되면서 정보 집중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정보 집중이 일부 계층에게만 부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그는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이론은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려는 이들에게 앞으로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으로 보인다.

박창규기자 k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