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통신료 인하 줄다리기 누가 맞나

정부의 가격인하 압박에 졸지에 불공정거래 주범으로 몰린 정유사와 통신사, 대형 유통업체들 분위기가 벌집 쑤신 듯하다. 정부는 기름값과 통신비를 콕 찍어 물가잡기에 총력전을 펴고 있지만 업체의 반발로 파열음이 일고 있다. 업체들은 더 이상 내릴 여력이 없다며 계속 버티기 작전을 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기름값이다.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가격이 묘하다"고까지 했지만 지금까지 요지부동이다. 정부와 업계 간 물가 책임 공방이 점입가경으로 펼쳐지고 있다.

◆정유업계, 유류세부터 내려라=정유업계에 대한 정부 불신감은 대단하다. 국제 유가가 오를 때는 정유사들이 국내 기름값을 크게 올리는 반면 유가가 내릴 때는 찔끔 인하하는 방식을 통해 자기이익만 챙기고 서민물가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대놓고 압박하고 있다. 반면 정유사들은 휘발유 값을 결정하는 것은 국제유가와 환율이라는 외생변수에 좌우되는 만큼 다른 제품보다 가격 결정이 자의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며 버티고 있다. 정부 물가대책 협조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또 영업이익률이 2~3%대로 낮은 상태에서 정제마진을 추가로 낮추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국내 10대 제조업체 평균 영업이익률은 7.61%(2009년)로 정유사들보다 높다. 대신 정유업계는 정부가 유류세부터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유사 이익을 줄여봐야 소비자들이 체감하기도 힘든 만큼 기름값의 절반을 차지하는 세금을 인하하는 것이 먼저라는 얘기다.

◆통신업계, 인하 여력 없다=정부의 통신비에 대한 인식도 석유제품 못지않게 부정적이다. 그동안 통신산업의 생산성 향상에 비해 가격 하락이 미진하다는 것이다. 물건도 많이 사면 깎아주듯이 오래 쓰면 깎아줘야 한다는 것이 정부 인식이다.

하지만 통신업계는 `인위적인` 요금 할인 요구는 부당하다는 입장을 서슴지 않고 있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지난해 초단위 과금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결합상품 할인제 도입으로 1인당 통신비가 오히려 감소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올해 `통신재판매(MVNO)` 제도로 제4이통사가 등장하면 요금 인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올 초 정부에서 스마트폰 정액 요금제의 음성통화 한도를 20분 늘려 주라는 요구도 받은 바 있다고 털어놨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확대로 작년부터 데이터 폭증이 엄청나게 일어나 4세대 LTE(롱텀에볼루션) 투자를 빨리 단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요금 인하 요구는 네트워크 투자 의지를 꺾을 뿐"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통신업계는 요금인가제 폐지는 1위 사업자의 지배력을 높여줄 뿐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위 사업자 SK텔레콤이 후발 사업자(KT, LG유플러스)에 비해 경쟁력이 월등하기 때문에 통신요금을 임의로 조정할 경우 후발 사업자의 존립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업체 판매수수료 충돌=대형 유통업체와 정부 간 파열음도 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유통업체의 판매수수료를 6월부터 공개하겠다고 하자 업체가 반발하고 나섰고 이에 공정위가 재반박하는 등 사태가 커지고 있다. 유통업체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마저 보이고 있다. 백화점업계 반발이 더 심한 분위기다.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수수료는 기업의 원가와 마찬가지인데 공개하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한 백화점 임원은 "협력업체에 대한 마케팅ㆍ교육비용 등이 포함돼 수수료가 아닌 일종의 투자비용"이라고 항변했다.

공정위는 대형 유통업체가 반발하고 있지만 현장 실태조사에서 중소 납품업체의 가장 큰 불만과 민원이 판매수수료 공개로 나온 만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실명은 거론하지 않고 수수료 범위만 공개하는 것으로 영업비밀사항은 아니라고 재반박했다.

[매일경제 전병득 기자/김병호 기자/황시영 기자/차윤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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