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훈련 과학화 시급

 #지난해 5월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 한가운데서 폭탄을 탑재한 차량이 발견됐다. 뉴욕시 응급재난본부는 당황하지 않았다. 방재요원들이 도로·군중 통제, 시민 대피, 폭발물 제거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안전하게 폭탄 탑재 차량을 제거했다. 뉴욕시는 사건을 처리한 뒤 “9·11 테러 이후 거의 매일 가상지휘통제 시뮬레이터로 훈련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뉴욕 폭탄차량 소동이 일어난 지 3개월 뒤 부산 해운대 38층 오피스텔에서 불이 났다. 소방대원들이 긴급 출동했지만, 생소한 고층화재에 허둥대는 사이 3층에서 시작된 화재는 30분 만에 옥상까지 번졌다. 무려 5시간의 소동 끝에 진압된 화재는 54억8000만원에 달하는 재산피해를 냈다. 소방관 5명도 부상을 입었다. 입주민들은 “소방관들이 화재 초기에 건물유리를 깨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고층화재·폭설·홍수·산불 등 대형 재난 사고가 잇따르면서 우리 재난당국의 원시적인 재난 훈련체계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 주말 강원도 폭설로 수백대의 차량이 30시간 이상 고립되는 등 지구온난화에 따른 자연 재해도 빈발하지만 국내 재난 훈련체계는 대부분 1970~1980년대식 이론교육에 머물러 실제상황 대응에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14일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국내에 각종 화재에 대비해 실전처럼 훈련할 수 있는 첨단 시뮬레이터가 갖춰진 곳은 중앙소방학교 한 곳에 불과하다. 매년 1000명 안팎의 경력 소방관이 소방학교에 입교해 단기 코스로 시뮬레이터 실전훈련을 받고 있지만 전국 소방관 2만6000여명 가운데 3%만 ‘혜택’을 누리고 있다.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 1~2년에 한 차례가량 모의 건물을 세워놓고 실전훈련을 펼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이벤트로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선 한 소방관은 “실전훈련을 하려면 30~40대의 소방차와 300~400명의 소방관이 투입되기 때문에 소요 경비가 엄청나고 현장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꺼리는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거의 이론교육으로 갈음하고 실제 상황을 훈련처럼 대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첨단 시뮬레이터 도입을 통한 상시 재난훈련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높다.

 미국의 경우 9·11 테러 이후 뉴욕시 재난관리본부를 비롯해 LA항만관리본부, 내슈빌공항 등 20여개 재난당국에서 첨단 시뮬레이터를 도입, 상시 교육을 강화하는 추세다. 유럽에도 폴란드 경찰학교, 영국 국제소방훈련센터, 네덜란드 국립안정청 등에서 재난 훈련용 시뮬레이터를 잇따라 도입했다.

 국내에서도 재난 사고가 잦은 지방 소방당국을 중심으로 훈련용 시뮬레이터 도입을 추진했으나 번번이 예산 확보가 어려워 좌절되는 상황이다.

 임동권 소방방재청 안전기준계장은 “중앙소방학교에 시뮬레이터를 운영한 결과, 실전대응 능력이 10% 이상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몇몇 시도에서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도입을 추진했으나 국비 지원이 안 되는 시뮬레이터 가격이 6억~9억원에 달해 지자체 예산편성 과정에서 대부분 탈락했다”고 말했다.

 정찬권 숭실대 교수는 “국방부의 경우 매년 수십억원의 예산을 국비로 책정해 군사용 시뮬레이터를 도입한다”며 “최근 지구온난화로 초대형 재난이 잇따르면서 선진국은 국가 재난관리를 국가 안보개념으로 보고 대처능력을 키우는 상황이어서 우리나라도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 차원의 국비 지원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