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안전자산으로 간주되면서 최근 6개월간 고공 행진을 거듭해 왔던 엔화 시세가 추세적인 약세 기조로 반전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경제의 회복 기조와 이로 인한 달러 매수 추세, 중동발 정정 불안이 일단락된 데 따른 리스크 자산 재투자 움직임, 일본의 신용등급 강등과 경기 재침체 등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도쿄 금융시장에서는 "엔화값의 기조적인 약세 전환을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면서도 최근 시장 분위기를 감안하면 달러당 85엔대 진입도 곧 가시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작년 말 역대 전고점(79.75엔) 돌파를 시도했던 엔화 강세(달러 약세) 분위기가 상당 부분 완화된 셈이다.
일본 엔화는 주초인 14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주말 종가보다 0.32엔 하락한 83.17엔에 거래를 마쳤다. 사흘 연속 하락이다. 100엔당 원화값 역시 1350.32에 장을 마감했다.
앞서 열린 뉴욕 시장에서도 엔화값은 83엔대 중반까지 하락하며 최근 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시세를 기록했다.
우에노 다이사쿠 외환닷컴종합연구소 사장은 "미국의 추가 양적완화 정책이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 경기 호전 지표들이 더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3개월 이내에 엔화값이 달러당 85엔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특히 일본에서 경기 재침체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는 점도 엔화의 약세 반전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일본 내각부는 지난해 10~12월 국내총생산(GDP)의 실질 성장률이 전기 대비 -0.3%를 나타냈고 연율로는 -1.1%를 기록했다고 14일 발표했다. 일본의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전환한 것은 2009년 7~9월 이후 5분기 만에 처음이다.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2010년도 실질GDP는 총 5조4742억달러로 중국(5조8786억달러)에 비해 4000억달러가량 적었다. 이로써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경제대국 2위에 올라섰고 일본은 3위로 한 단계 밀려난 것으로 공식 집계됐다. 일본이 실질GDP 기준으로 세계 2위에서 밀려난 것은 1968년 이후 42년 만에 처음이다.
일본 중앙은행은 14일부터 이틀간 금융정책결정회의를 개최하고 최근 실물경기와 금융시장 동향을 점검한 뒤 15일 오후 제로금리 지속 여부를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일본은 지난해 9월 추가 경기 하락을 차단하기 위해 4년3개월 만에 다시 제로금리를 도입했고 총 30조엔 규모의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달러 대비 엔화 약세가 원화 환율에 미치는 영향도 관심거리다. 달러화에 대한 엔화 약세, 원화 강세는 한국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엔화 약세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며 "1차 저항선이 달러당 82.8엔이었다면 85.9엔이 2차 저항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국제자본의 전반적인 이동 방향이 `엔화 매도, 달러 매입` 쪽으로 흐른다고 봐야 한다"며 "일본 유럽에 비해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회복세를 보이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엔화 약세 분위기가 일시적일지, 장기간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원ㆍ엔 환율의 방향도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 외은 지점 딜러는 "아직까지 엔ㆍ달러 환율이 원ㆍ엔 환율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까지 일본 내에서 와타나베 부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징후는 없다"면서도 "향후 엔화 약세가 추세로 굳어지면 엔ㆍ캐리 트레이드(제로금리인 일본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나라의 주식 채권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가 늘어날수 있다"고 말했다.
■ <용어설명>
▷와타나베 부인:해외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일본의 주부 외환투자자들을 비유하는 말이다.
[도쿄=매일경제 채수환 특파원/서울=매일경제 이진우 기자/손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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