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용기자의 책 다시 보기] 영국 기업사, 1650~2000

영국 기업사, 1650~2000
영국 기업사, 1650~2000

 단어 몇 개에 오래 붙들렸다. 제1부 제1장부터다. 먼저 ‘차터드(chartered).’ 형용사. 특허·면허를 받은, 공인된, 천하가 다 아는. 전세 낸, 용선 계약을 한. ‘차터드’는 16~17세기 유럽 여러 나라의 왕실로부터 권리·특권·의무·판매지역을 명시한 증서를 받은 회사(company)의 그림씨였다.

 ‘스테이플(staple).’ 명사. 주요 산물. 주요소, 주성분. 원료, 재료, 소재. 양모(羊毛)·목화 따위의 섬유, 그 품질·길이 따위의 품등과 표준 길이. 특정 상품의 매입·수출이 공인된 장소, 상거래 중심지. 형용사. 한 지방의 산물 중에서 주요한, 중요한. 수요·거래가 많은. 동사. 양모 따위를 길이·품질에 따라 분류하다, 선별하다. “1314년부터 (영국) 왕실은 양모 무역을 통제하고 수출업자에 대한 징세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특별히 지정한 시장(그 시장을 ‘스테이플’이라 불렀다)에서만 수출용 양모를 거래하게 했다(26쪽).” 그리하여 ‘스테이플러(stapler)’는 양모 선별공이나 양모 중개인을 뜻하게 된 모양이다.

 17세기 들어 서인도제도와 북미 신대륙이 중요해지자 영국 왕실은 “무역과 식민화의 이중 목적을 가지고 칙허회사(chartered company)들을 인가했다.” 1606년 이후에 설립된 버지니아, 매사추세츠베이와 같은 회사는 식지 주민의 정착 문제에도 직접 관여(31쪽)할 정도였다.

 그리고 ‘동인도회사.’ 17세기에 유럽 각국이 인도·동남아시아와 무역하기 위해 동인도에 세운 무역 독점 회사. 영국의 것은 나중에 인도를 식민지화하는 정치적 성격을 띠었으며, 네덜란드의 것은 자바 섬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프랑스의 것은 인도 지배에 적극적이었으나 영국과의 경쟁에서 패했다.

 영국이 인도에서 프랑스를 몰아낸 뒤인 1757년 동인도회사는 벵골지방의 자유통상권을 얻었고, 1765년에는 징세권까지 따냈다. “징세는 행정적 지배와 무력행사를 수반하는 일이었으므로, 실질적인 의미에서 식민 통치였다. 이제 동인도회사는 더 이상 일개 무역상사가 아니라 자체 군대까지 보유한 실질적 지배세력이었다. 1757년부터 1773년까지 동인도회사의 주주총회가 인도 정책을 좌우했다.(42쪽)”

 기업은 그렇게 본디부터 권력(왕실)에 기대 호가호위했다. 실속을 채운 것은 물론이었고.

 ‘더비(derby).’ 명사. 더비 경마. 런던 근교 엡솜다운스에서 매년 열린다. 일반적으로 대경마. 참가가 자유로운 레이스, 경주. 경기. 영국 잉글랜드 중부에 자리 잡은 도시 ‘더비(Derby)’는 1720년께 시작한 1차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다. 셰필드, 리버풀, 맨체스터, 브래드퍼드, 리즈, 요크 등이 더비로부터 자동차로 한두 시간 거리(48쪽)다. 이후 산업 혁명의 기잡이였던 영국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 속에 자유무역체계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다.

 역사이기에 시선을 붙드는 단어가 많다. 17~18세기 스태퍼드셔 도업(陶業)계의 기린아 조사야 웨지우드의 외손자가 ‘찰스 다윈(63쪽)’이었다. “산업외교의 등장은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의 힘이 더 이상 경제적 균형을 이룰 수 없다는 정부 차원의 각성을 의미(157쪽)”했다. 1870년대부터 국가 전략으로 ‘보호무역정책’을 쓴 미국·독일·일본이 큰 수익을 내자 ‘자유무역정책’을 채택(108쪽)한 영국의 고민이 깊었다. 결국 19세기 중반에 등장한 영국 경제의 자유무역체계는 1932년에 ‘관세를 다시 도입’하면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당시 영국은 이미 경제 선진국 반열에 들었기에, 쉽게…, ‘사다리’를 걷어찼다.

 김헌숙 지음. 주영사 펴냄.

 eylee@etnews.co.kr

영국 기업사, 1650~2000
영국 기업사, 1650~2000